[사즉생과 '뉴삼성' (1)] 이재용 회장 '제2 프랑크푸르트 선언' 외친 이유

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3.24 05:00 ㅣ 수정 : 2025.03.24 05:00

이재용 회장, 삼성 경영진에 '죽느냐 사느냐에 직면' 쓴소리
‘삼성다움 복원’ 교육에서 "모든 분야 기술 경쟁력 훼손” 질타
반도체 시장 불확실성과 AI 패권전쟁 격화 따른 위기감 반영
삼성,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려...TV·가전·스마트폰도 안심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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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반도체 불황과 시작된 ‘삼성전자 위기론(論)’은 그냥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었다. 반도체 시장 변화 흐름을 제때 읽지 못해 불거진 기술 경쟁력 악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가 맞물려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회사의 위기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바꾸게 만들었다.  이재용 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던진 첫 메시지는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 먹으면 산다는 뜻)'이다.  이재용 회장은 회사 경영진에게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라는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스투데이>는 달라진 그와 함께 삼성의 반도체 업계 위상 회복과 업계 맹주 탈환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3회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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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과 관련해 1·2심이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이재용 회장은 대개 연초 국내외 사업장을 돌며 바쁜 현장경영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나 검찰 상고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과 위기론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 회장이 경영진을 향해 “삼성, 죽느냐 사느냐에 직면”이라며 이례적으로 강한  ‘쓴소리’를 쏟아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직면한 현재 위기 상황이 자칫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최근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한 점은 그나마 위안이다.  

 

업계는 '사즉생(死卽生·죽기로 마음 먹으면 산다)'을 외치며 독해진 이 회장의 위기의식과 반도체 업황 회복이 맞물려 올해 상반기에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지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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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2년 9월 10일 멕시코 삼성엔지니어링 도스보카스 정유공장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24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 전 계열사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진행하는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18일 영상 메시지 형식을 빌려 경영진의 철저한 반성과 사즉생의 각오를 당부했다.

 

이 회장은 "21세기를 이끌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가운데 24개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새로운 혁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다"라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며 "모든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보기 어렵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라고 질타했다.

 

이 회장은 "위기 때마다 작동해온 삼성 고유의 회복력은 보이지 않는다"라며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 문제에 직면했으며 경영진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강인하기로 유명했던 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과 달리 이 회장은 평소 온화함과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이처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배경에는 현재 삼성이 직면한 위기가 생존을 우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투데이>에 “그동안 유연하고 온화한 리더십으로 알려진 이재용 회장이 경영진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번 행보는 단순한 말잔치가 아니라 내부 위기감과 절박함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김대종 교수는 “특히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AI(인공지능) 산업 패권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의 기술 리더십을 어떻게 회복하고 공고하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과제”라며 “‘사즉생’이라는 표현은 기존 관성을 깨고 과감한 혁신과 의사결정을 실행하라는 압박이며 그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이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식의 전폭적인 혁신을 강조했다면 이재용 회장은 평소 포용적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어 왔다”며 “이번에는 이 회장조차 위기 타개를 위해 보다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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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실제 삼성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는 HBM(고(高)대역폭메모리) 수요 증가에 적기 대응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의 지난해 연간 실적은 매출 111조1000억원과 영업이익 15조1000억원이다.

 

이에 비해 반도체 경쟁업체 SK 하이닉스의 지난해 연간 실적은 매출 66조1930억원과 영업이익 23조4673억원이다. 매출은 삼성전자가 더 많지만 영업이익은 SK하이닉스가 앞섰다. 이는 SK하이닉스가 HBM으로 더 남는 장사를 했다는 얘기다. 

 

TV, 가전, 스마트폰 등도 안심할 수 없다. 

 

스마트폰·TV·가전 사업을 맡고 있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액 174조9000억원과 영업이익 12조4000억원이다. 이는 DX사업 부문이 2023년에 비해 매출액은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3%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스마트폰은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데 따른 효과도 줄어들었다"라며 "TV 시장은 수요 정체와 업체 간 경쟁 심화, 가전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에 따른 경쟁 심화와 마케팅 비용, 물류비 상승 영향을 받았다"라고 풀이했다.

 

TV 부문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2024년 글로벌 TV 시장점유율이 매출 기준 28.3%를 기록해 19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TV 시장점유율을 최근 5년 간 살펴보면 △2019년 30.9% △2020년 31.9% △2021년 29.5% △2022년 29.7% △2023년 30.1%로 갈수록 줄어드는 모습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상위권을 지키고 있지만 TV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TV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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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1993년 6월 7일 이른바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 삼성]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이번 일침을 ‘제2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준하는 발언이라는 평가한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삼성 수뇌부를 소집해 신경영을 선언한 사건이다.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명언을 남기며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질(質) 위주의 경영 변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 사건은 이후 삼성그룹 전반의 체질을 바꿨고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밑거름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2025년은 대외적으로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이 예상된다"라며 "지정학적 리스크,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등 복합 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회장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술 투자, 조직 혁신, 글로벌 파트너십 등 주요 경영전략에 대해 결단과 책임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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