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23년 10월 3일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가 당시 '친윤 핵심'이었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김 후보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우리나라에 신흥 최대 종교가 있다. ‘태초에 부정선거가 있었다’라고 말한다. 부정선거라는 사탄이 있으며 이를 조종하는 것이 북한이고, 악마의 전사들이 북한의 해커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야당은 악마들의 부정선거로 다수당이 된 반국가세력이다. 이 황당한 주장을 믿고 청년들이 개종을 하는가 하면, 전국에서 버스로 성도를 태극기 집회 현장에 실어 나르는 교회들이 있다.
이 종교의 또 다른 믿음은 미국과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다. 뉴라이트는 일본 식민지가 우리나라를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이 종교의 보편적 믿음은 미국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구세주이다. 그래서 성조기를 들고 다닌다. 악의 축은 북한과 중국이며, 선의 축은 미국(일본)이다. 악의 근원과 성전을 치러야 하고 지금은 부정선거와 싸우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믿음의 결정판에 등장한 인물이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전광훈 목사와 극우유튜브 사이에서 산발적으로 퍼져있던 이 믿음의 절대적 신봉자였다. 윤석열은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기 위하여 두 명을 주목했다. 한 명은 2022년 대선캠프에서 사이버보안정책 공약을 만들었던 백종욱 가천대 교수다. 다른 한 명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검 감찰본부에 의해서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해임된 김태우 검찰수사관(청와대 민정 파견)이었다.
윤석열은 북한의 해킹을 통한 선거 개입을 입증하기 위하여 2022년 6월,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백종욱을 국정원 3차장에 임명한다. 1차장은 해외 대북 정보 수집 분석, 2차장은 국내 방첩 업무, 3차장은 대북공작과 과학 산업 사이버 업무를 담당한다. 백종욱은 그 전에 국정원에서 국가사이버안전센터장을 맡았었다.
백종욱은 3차장에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2023년 7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를 합동점검기관으로 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보안점검에 들어간다. 윤석열은 부정선거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0.73% P가 아니라 더 큰 차이로 승리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입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중간평가가 될 2024년 총선에서도 부정선거만 없으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보안점검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 즈음에 아주 중요한 정치이벤트가 생겼다. 2023년 10월 10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이다. 승패에 무관심한 듯 치르면 될 강서구청장 선거였다. 어느 쪽이 이기든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을 1개 기초단체장 선거였다. 갑자기 정권심판선거로 발전했다. 윤석열이 판을 키웠다.
윤석열과 김태우와는 검찰 시절에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었다. 해임이 된 후 그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조국 스나이퍼’로 활동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 들어와서는 당시 캠프의 전반적인 기조에 맞춰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퍼트렸다. 보수유튜버들과 윤석열을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윤석열 입장에서는 정말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다.
김태우는 2022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나가 강서구청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이미 이때 1심에서는 청와대 재직 시의 공무상 비밀 누설혐의가 인정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공천을 했는데 당선된 지 1년이 채 안되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2023년 5월 18일)이 나서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윤석열은 그를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사면했다. 사면권 남용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당에 압력을 행사하여 그가 10월 보궐선거에서 공천을 받게 했다.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가 국민 혈세 40억 원을 들여 치러지는 보궐선거 후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전투표가 부정선거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윤석열은 관외투표가 없는 강서구청장 선거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정권 출범부터 인기가 없었던 윤석열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이 무렵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강서구정창 보궐선거의 사전 투표율은 22.64%로 역대 재보궐 사전투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정원은 중앙선관위에 대한 보안점검 결과를 원래 9월에 발표하려 했으나 이미지 처리 등 기술적인 문제로 10월 6일로 발표를 미뤘다. 국정원은 윤석열에게 “선관위 점검 결과 선거 조작 또는 해킹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라고 입맛에 맞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윤석열에게 발표를 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건의했다. 선거 개입으로 비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10월 9일 보궐선거 하루 전에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해킹 가능하다”고 선거 전날 발표하라... 국정원, 尹 지시로 선관위 점검 결과 미뤘다. 한국일보 2024년 12월 19일) 윤석열은 사전 투표에 대한 보수층의 불신과 우려를 부추기고 여권지지층의 본투표 참여를 높이려는 정략적 의도로 택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대와 달리 참패로 끝났다. 김태우는 39.37%를 얻는데 그쳐 17.5% 차이로 크게 졌다. 정권이 심판받은 결과가 되었고 지도부가 총사퇴했으며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 비대위원장으로 등판했다.
문제는 국정원의 선관위 보안 점검 결과 발표가 왜곡 조작되었다는 점이다. 합동점검 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과 사전 협의 없이 국정원 독단으로 발표했다. 중앙선관위는 발표 내용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국정원은 “해킹으로 투표 분류 결과를 바꿀 수 있다”, “해커가 내부망까지 침입할 수 있었다”라고 발표했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조선일보 등에 며칠 전에 미리 흘리기도 했다.
사실은 이렇다. 국정원은 중앙선관위 서버를 뚫을 수 없었다. 서버접속계정, 권한, 주소, 취약점을 미리 건네받아 해킹을 시도했으나 안 됐다. 이런 조건에서도 실패하자 기존 보안시스템을 작동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가상해킹을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사전 협의 없이 불법프로그램을 심었다. 선관위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국정원 발표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과거 선거에 해킹을 통한 결과값의 왜곡이 있었냐고 질문하자 기술적으로 보안이 취약했다는 것이지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을 돌렸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면 입증 책임과 정치적 책임이 원체 큰 사안이다. 국정원 입장에서도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당장 내일 실시되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해킹에 대한 대책이 있냐고 기자들이 물었다. 국정원은 “용역업체가 원격지원을 한다면 길은 열려있다. 다만 선관위 입장에서도 이번 점검 결과에 대해 우리 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취약점이 있도록 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교주 윤석열과 국민 눈치를 보느라고 이런저런 마사지를 이중삼중으로 했다.
국정원의 보안점검 결과가 전부 허당인 것만은 아니었다. 북한이 선관위 직원의 e메일을 해킹해서 대외비를 포함한 일부 업무자료가 유출되는 보안시스템의 취약점이 확인되었다. 투개표와는 직접 연관이 없는 사안이다. 선관위는 이를 개선하여 2024년 총선에 대비했다고 했다.
윤석열은 “선거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윤석열과 별도로 만나거나 통화하는 수준의 전직 국정원 간부는 익명을 전제로 “대통령은 국정원이 수집하고 검증한 정보는 믿지 않았다. 그 분 머릿속은 유튜브 뿐이었다”라고 말했다.(뉴스타파) 윤석열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에도 부정선거 음모론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변론 과정에서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라고 했다. 계엄령을 발동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비유를 인용해서 해킹을 통한 개표 결과값의 조작 주장에 대해 비판을 해 본다. 실제 개표 결과는 달이다. 그것을 전산에 입력하여 합산하고 발표하는 것은 그림자이다. 호수 위에 비친 달그림자는 파도를 일으켜 변형할 수 있다. 하지만 달이라는 실체가 있다. 개표 현장에 분류되어 있는 개표용지가 있는데 전산에서 조작한다고 해서 누가 그 결과를 믿겠는가. 축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인터넷에 스코아를 다르게 올리거나 엉터리중계를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달그림자는 파도를 타고 바뀌지만 달은 바뀌지 않는다. 결과값을 바꾸는 해킹도 불가능하지만, 바꾼다고 해서 실체적 진실을 바꿀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