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어퍼컷을 날리고 폭탄주를 돌리던 윤석열은 2022년 3월10일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첫 5년만에 정권교체였다. 유권자들이 두 번은 정권을 맡긴다는 진보 보수 10년 주기설이 깨졌다. 윤석열이 48.56%를 얻어 47.83%를 얻은 이재명을 0.73% 차이로 따돌렸다. 두 후보 간 격차는 24만 여표로 역대 대선 최소 득표차를 기록했다.
윤석열은 3월10일 새벽에 “이번 승리는 국민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헌법정신과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며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이재명 심상정 두 후보께 감사드린다. 경쟁은 일단 끝났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국민과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은 “당선인께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축하인사를 했다
두달 후 5월10일 취임사에서는 통합 등의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은 취임사에서 ‘통합’이 빠진 이유에 대해 “그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벌써 교만해진 것일까. 그 이후 이재명은 온갖 사법리스크에 시달려야 했다. 그 중에서도 0.73% 차이로 패배한 후보의 다음 선거 공민권을 박탈하려는 선거법 위반 기소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부정선거를 엄단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비례의 원칙이 있다. 선거법에서는 금품살포 매수 이해유도 등을 중대범죄로 본다. 당선목적의 허위사실 유포, 그것도 기억에 관한 것을 갖고 공민권을 박탈하는 예가 거의 없다.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절반을 대표했고, 0.73% 차이로 진 후보의 공민권을 박탈하는 것이 과연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성찰적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의 취임사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포함해 ‘자유’가 35회로 가장 많았다.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한다며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반지성주의’라고 했다. 그가 직접 취임사에 집어넣은 단어라고 한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
취임사에서 가장 튀고 주목되는 부분은 반지성주의이다.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이라고 하여 민주당을 사실상 반지성주의 집단으로 규정했다. 윤석열 정부의 정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협치 소통 대화 통합과 같은 고전적 정치의 공식이 취임사에서 사라졌다.
이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웠습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 자유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됩니다.”
무슨 얘기인지 알 수가 없다. 동어반복이고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이 모호하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연설은 가장 중요한 정치 수단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초안을 읽어보고는 단 몇 문장만 고치는데, 수정한 부분이 제목으로 보도되는 것으로 보고 비서관들이 감탄했다고 한다. ‘감각의 김영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몇차례에 걸쳐 깨알같이 수정을 거듭하여 깊이있는 문장을 만들었다. ‘논리의 김대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 방식의 독회를 좋아했다. 토론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구술하는 방식으로 호소력있는 연설문을 만들었다. ‘호소의 노무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감성적인 문장을 좋아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감성의 문재인’이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는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날 TV조선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경향신문 기자였다. 김민배 TV조선 대표는 취임사를 들으면서 “국정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2년 후면 큰 위기에 빠질 것 같다. 위기의 단초는 대일관계에서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12.3 비상계엄 직후에 쓴 ‘용산의 장군들’이 출처)
윤석열은 충암고 1년 선배인 김민배 대표를 평소에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고, 자신이 집권하면 중용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 수십년 간 역대 정권의 흥망을 지켜 본 김민배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미래를 불길하게 내다보았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법무법인 로배스 대표변호사)은 “검사는 과거를 캐는 직업이고 정치인은 미래를 도모한다”며 검사 출신 대통령 윤석열에게 정치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비극은 여기서 잉태되었다고 했다.(중앙일보 2025년 1월 3일 인터뷰기사)
검사정치의 폐해를 한 문장으로 가장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검사의 눈에는 상대방이 유죄냐, 무죄냐만 보인다. 과거만 보인다. 정치의 영역은 다르다. 정답이 없다. 여야간에 합의하는 것이 답이다. 교과서에도 없는 답이다. 흑과 백으로만 세상을 보는 검찰이 정치를 하기 힘든 이유이다.
다만 검사가 정치권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주목을 받는다. 여야 간에 정쟁은 주로 상대방의 약점을 갖고 물고 뜯는 것이다. 선거에서 네거티브는 정보와 기획과 전술의 바탕 위에서 치러진다. 검투사들에게 유리하다. 특수부 공안부 출신 검사들이 빛을 보는 이유다. 대부분 국민의힘으로 들어가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이다. 해결자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시장 도지사가 되어서도 늘 정쟁에 끼어든다. 주목받고 싶은 관종이 되어버린다.
김후곤 변호사의 검사정치 폐해를 계속 들어보자 “검찰총장 출신이 곧바로 대통령이 순간 되는 검찰과 정치 사이의 벽이 허물어졌다. 대통령은 인사로 검찰을 장악할 수 있다. 검찰조직은 정치적 도구 또는 권력 투쟁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이런 구조 아래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국민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반대세력은 더 거세게 검찰을 공격함으로써 검찰이 권력 투쟁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정권과 정치검사는 이재명과 민주당을 계속해서 옥죄어갔고, 민주당은 특검으로 맞섰다. 그리고 윤석열이 최종적으로 빚은 자충수로 탄핵을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