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실록, 초현실 비상계엄 (3)] 윤석열과 조선일보 사주의 만남

민병두 입력 : 2025.02.21 07:01 ㅣ 수정 : 2025.02.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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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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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와 2015년 9월 4일 중국 상하이 한 호텔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상하이 방문 동포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연합뉴스 / 사진편집=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조선일보 사주를 만났다. 조선일보 일가는 평안도 사람이고, 반공의식이 아주 투철하다”

 

윤석열은 2000년 3월 대검 부장검사들과 회식을 하면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만난 얘기도 털어놓았다. 그가 조선일보 사주를 만났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박상기 당시 법무장관도 여러 경로로 사실 확인을 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그는 거침없이 회동한 사실을 측근들에게 공개했다.

 

1933년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와 1954년부터 1964년까지 조선일보를 경영한 방일영, 1964년부터 1993년까지 조선일보를 경영한 방우영 모두 평안북도 출신이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조선일보를 경영하고 있는 방상훈은 1948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나 평안도 출신인 방일영의 아들이다.

 

윤석열은  검사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수언론 사주를 만났다. 편집국장이나 사회부장이 아니고 사주를 만나서 대화를 한 것인데 두가지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하나는 이해충돌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기간(2017년 5월-209년 7월) 조선일보 관련 고소 고발 사건이 많았다. 고 장자연 씨 사건도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재수사에 들어갔다.  윤석열이 피의자로 입건될 수 있는 이해당사자와 만난 것으로 윤리규정에 위반한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방상훈과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2002년에 1년 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일한 적이 있다. 이때 태평양의 형사팀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탈세 횡령등의 혐의에 대해 변호를 맡고 있었다. 직접 담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그가 다른 꿈을 꾸고 있어서 이같은 만남을 하지 않았겠냐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한 간부(이동한 사회부장)이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에게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말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날 회동은 큰 꿈을 가진 윤석열의 검언유착의 단초로 보일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실제로 윤석열이 정치에 몸을 담그기로 하고, 검찰총장직을 그만둔 날, TV조선은 그를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와 오버랩시키면서 이렇게 예찬했다.

 

“구름과 바람은,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풍운조화를 불러옵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은 따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풍운아 윤석열이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나섰습니다...그가 다음 발을 어디로 내디디든, 검사로서 보여줬던 용기가 빛을 발할 것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이 정권 들어 더 커진, 정의와 공정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을 풀어준다면 더 좋겠습니다. 겨울 나무가 끝끝내 꽃 피는 봄 나무로 서듯 말입니다. 3월5일 앵커의 시선은 ‘범이 내려온다’였습니다”(2021년 3월 5일. TV조선 앵커의 시선 중에서)

 

응원도 이런 응원이 없었다. 극찬도 이런 극찬이 없다. 편파도 이런 편파가 없었다. 언론에서 할 수 있는 금도를 넘어섰다. 나중에 윤석열은 이 이미지를 차용하여 “범 내려온다, 석열이가 내려온다”는 동영상 이미지를 만들었다. 대호(大虎)는 윤석열의 별칭이다. 언론판 대호프로젝트를 보는 것 같았다.

 

다시 윤석열의 2020년 3월 회식 자리로 돌아가보자. 윤석열은  "평안도 출신의 결속력은 아주 대단하다. 평안도 출신 사람들은 같은 평안도 출신인 이영희 기자에 대해 진실을 보도한 기자일 뿐 빨갱이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등의 저서로 1970-80년대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보수의 시각에서 보면 ‘빨갱이의 원조’인데 평안도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방상훈의 평안도 사람 자랑을 들은 듯하다. 

 

이날 회식 자리 마지막에 윤석열은 "검찰 역사는 빨갱이 색출의 역사다."라고 했다. 평생을 특수부에서 일한 윤석열은 늘 공개적인 자리에서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날은 검찰의 임무를 다르게 규정한 것이다. 윤석열은 해방 정국에서 오제도 검사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공안 관련 자료를 찾아 검찰 도서관에 비치하였다고 말했다.

 

이날의 대화를 기록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이렇게 기록했다. “빨갱이 색출은 공안부 검사들의 역할이었는데, 특수부의 수장격인 윤석열 검찰총장에게서 빨갱이 색출의 역사라는 말이 나와 생경했다. 만일 조선일보 사주가 반공의식이 투철하다면, 조선일보 사주와 공감하는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을 것이고, 조선일보 사주로부터 반공의식에 관한 일종의 점검과 교양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론을 해 본다. 그리하여 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에 있을 때든,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을 때든 자주 사용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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