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과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당시 쿠데타 주역 중의 한 명이었던 차지철 대위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지지 시가행진을 바라보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 편집=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김용현은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나 인수위에서 압도적인 그립감을 보였다고 한다. 기수와 서열이 분명한 예비역 사회인데 그가 얘기하면 모두가 집중할 정도로 장악력이 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윤석열과 충암고 선후배라는 점, 윤석열의 신임이 두터웠다는 점등이 작용했다.
김용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경호처의 권력화, 비대화이다. 경호처의 인건비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17%(2022년-2025년) 급증했다. 직원도 60명이나 늘어났다. 직원 758명의 인건비는 635억원으로 1인당 연봉이 8,400만원에 달했다.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특별활동비는 14억5천만원 늘어난 82억원에 달했다. 예산은 970억원에서 1,391억원으로 늘어났는데 예산증가율은 43.4%로 정부 총지출 증가율 11.5%의 4배에 달했다. (한국일보 ‘고재학의 경제이슈 분석’에서)
"내가 차지철이요"
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대통령 경호처장(차관급) 시절 공식 회의 석상에서 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업무 수행을 위해 경찰, 검찰은 물론 소방, 합참, 외교부 등 유관기관을 불러 모아 연 안전 대책 회의 자리에서의 일이었습니다. 한 참석자는 "김용현 처장이 뜬금없이 자신이 차지철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며 "위세를 과시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다들 실세라고 하니까 표현을 못했을 뿐 황당해 했다"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군 출신으로서 차지철의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 그가 농담으로라도 차지철을 자부한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였습니다.( MBC뉴스 "내가 차지철" 자부했던 김용현, 핵심 실세서 내란 혐의자로 추락한 이유 [국회M부스] 2024년 12월28일)
차지철이 누구인가? 박정희의 절대신임을 얻었던 집권 말기의 경호실장(장관급)이다. 전두환 노태우도 그 앞에서는 설설 기었다.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사퇴한 박종규의 후임경호실장이 되었다. 수도경비사령부 설치령을 개정 (사령관은 특정경비구역과 관련된 작전활동에 대하여는 대통령 경호실장의 통제를 받는다)하여 군을 그의 통제 밑에 두었다.
차지철은 유신독재를 무너뜨리는 신호탄이 되었던 부산마산민주항쟁을 총칼로 진압하자는 주장을 할 정도로 강경파였다. 박정희에게는 절대 충성을 바쳤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유신체제의 심장을 쏜 김재규가 1979년 10월26일 밤, 차지철에게 먼저 총을 겨누며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시니 올바로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김용현이 첫 번째 사고를 친 것은 경호처장 취임 6개월이 채 안된 경호처법 시행령 개정안(2022년 11월 9일)이다, 시행령 개정안에 조항 하나가 신설되었다.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과 경찰 등에 대해 지휘 감독권을 행사한다”- 바로 이 조항이 큰 논란을 낳았다.
차지철이 죽은 후 1980년 경호실법 시행령이 개정된 바 있다. 차지철은 경호실장이 수도경비사령관을 통제한다고 고쳤는데, 다시 이를 협의하여야 한다로 바꾸었다. 이를 42년만에 다시 차지철 시대로 역행하려고 한 것이다. 이 조항이 신설되면 앞으로는 소속 부대나 경찰 지휘 계통을 거치지 않고, 경호처장이 직접 지휘권을 갖게 된다. 경호처 소속 인력은 총 700여 명인데 여기에 22경찰경호대, 101경비단, 202경비단 등 경찰 인력이 약 1,300명 정도 된다. 거기에 더해서 군도 55경비단, 33군사경찰경호대 1,000여 명 정도가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관저의 내외곽 경호를 담당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대로 된다면 3,000명이 넘는 연대급 병력을 경호처장이 지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쿠데타의 예고편이었다. 쿠데타를 할 수 있도록 진지를 안정적으로 두축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의도하는 대로 시행령이 바뀌었다면 윤석열이 한남동 관저에서 농성전을 하고 있을 때 경찰과 군 병력을 동원하여 공수처와 경찰기동대의 진입을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기에 경찰과 군 병력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경호처의 협조 요청을 거부할 수 있었다.
시행령 개정 움직임에 민주당 등 야당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군의 지휘체제를 문란시킬 수 있다", “과거 유신시대보다 더 강한 조항이 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호위사령부와 같이 비춰질 수 있고,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의 근위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군이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돼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대통령의 개인 사병화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현은 국방부청사로 이전한 대통령실이나 외무장관 관사로 이전한 대통령 관저가 주변에 노출되어 있어 경호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권한 강화는 오해이고, 매우 제한적인 경호 활동에 대해서만 지휘 감독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야당의 반발로 시행령 개정안은 경호처장의 지휘 감독 대신에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한다로 수정하여 2023년 5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어차피 협의는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체면치레를 했다.
김용현 경호처장 시절에는 강성희 진보당 국회의원이 전라북도 특별자치도 출범식(2024년 1월)에서 윤석열에게 “국정기조를 바꾸십시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연구개발예산을 복원하라”고 한 것에 대해 과잉 경호를 했다.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고나간 것에 대해 “독재시대에나 있을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입틀막 정권이라는 수식어가 만들어졌다.
2024년 10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박선원 민주당 의원이 김용현을 차지철 같다고 비꼬자 “저는 그 발가락에도 못 따라간다”며 감사하다, 고맙다고 비아냥 거리는 답변을 했다. 이에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12.12 쿠데타의 사실상 원인 제공자인 차지철을 존경하냐,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하냐”고 질책하자 “(차지철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자꾸 날 차지철에 비유하냐. 더는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차지철이 롤 모델이었는데, 그와 같은 평판이 도는 것을 싫어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