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실록, 초현실 비상계엄 (23)] 명태균의 황금폰, 윤석열 내란을 결심
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개인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를 바꾼다. 악인을 만나면 악인이 되고, 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은 운명을 예비한다. 2012년을 끝으로 정치 인생을 마무리 한 줄 알았던 김영선 전 국회의원과 2013년 여론조사회사 좋은날리서치(후에 미래한국연구소가 됨)를 개업한 명태균이 만났다.
전직 의원(15·16·17·18대 4선) 김영선은 여기에서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여론조사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정치와도 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불우한 시절을 보냈지만 머리가 명석하고 신기가 있는 명태균은 김영선과의 만남을 통해 ‘보수의 막후 설계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명태균은 범상치 않은 화법을 구사했다고 한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명태균을 봤던 한 인사에 따르면 그는 대뜸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면 누가 이길까요”라고 질문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동화를 생각하면서 대답을 만드는데, 명태균은 “바다에서 시합하면 거북이가 이긴다”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토끼와 거북이, 누가 이길까요...여권 빅샷들 홀린 명태균 화법. 중앙일보 2024년 10월 16일) 판을 바꾸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홀리기 시작한다.
김영선이 다리를 놓게 되어서 명태균은 김종인 이준석 홍준표 김진태 오세훈 등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자칭 ‘지리산 도사’는 2022년 대선에서 판을 바꾸는 방법으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 방법은 여론조사 마사지이다. 명태균은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 표본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윤석열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서 후보로 지명되는데 일조했다. 김건희는 명태균을 의지했고, 그에게 “충성”한다는 인사말 형식의 답변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윤석열은 2024년 총선에서 참패한 뒤,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회견 이후 1년 9개월이다 . 명품백 수수에 대해 사과했다. 윤석열은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건희특검은 거부했다. ‘사과’라고 써놓고 ‘특검거부’라고 읽었다. “특검을 거부하는 사람이 바로 범인”이라는 과거 그의 발언이 소환되었다.
2023년 말 명품백 수수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두문불출하던 김건희. 윤석열의 사과 발언으로 면죄부를 얻었다고 판단했는지 칩거 153일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앞으로 닥칠 운명을 모르는지 다시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2024년 5월 16일 한국을 방문한 캄보디아 총리 부부와 오찬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7월 3일에는 서울 시청역 교통사고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7월25일에는 검찰이 경호처 관할 건물을 방문하여 김건희를 조사했다. 5월에 명품백 수수 사건 관련 전담 수사팀이 꾸려진지 3개월만의 일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고발 건으로 수사 배당된지 4년 3개월만이다. 사상 초유의 영부인 방문조사으로 ’황제조사‘ 논란이 일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패싱당했다. 그리고는 완전한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 김건희는 수사를 받기 전 “검사님들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송구하다. 심려를 끼쳐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역시 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국민 사과를 검사 앞에서 비공개로 한다는 비범한 발상은 김건희 아니면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다.
뉴스토마토가 9월 5일, 명태균 게이트 첫 보도를 했다. 김건희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김영선이 지역구인 경남 창원의창에서 컷오프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 김건희는 텔레그람으로 김영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험지 출마를 명분으로 하여 지역구를 경남 김해로 옮기라고 제안했다. 5선중진이 당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했다. 컷오프 공개되기 전에 그렇개 하면 구제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윤석열이 김해 선거를 위한 맞춤형 공약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김영선은 그대로 따랐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다. 열받은 김영선이 김건희의 공천 개입을 폭로하는 조건으로 이준석 등을 만나 비례공천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김건희와 주고받은 문자가 알려졌고 뉴스토마토가 이를 보도했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이다. 박근혜도 공천개입으로 사법처리된 바 있다. 공무원의 정치 중립 위반이다.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는 방아쇠같은 보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패한 공천 개입 정도로 비쳐졌다. 훗날 이 보도가 소총에서 대포로, 대포에서 핵폭탄으로 커질 것을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김건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9월 10일 마포대교 현장에서 공무원들을 만나 자살 예방 조치 등을 보고받고 지시했다. 교통 통제도 했다. 좋은 사진 연출도 했다. 인생은 즐거웠다. 이명박이 2007년 대선 당시, BBK연루 의혹아 커질 때마다 비보이 등과 만나 춤을 추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과 비슷했다. 의혹에서 거리를 두는 방법은 딴청을 피우는 것이다.
그런데 역효과가 났다. 언론에서는 ‘통치자 같은 행보’라고 비꼬았고, 권력서열 1위로 공식 데뷔했다고 비판했다. 정치 9단이라 불리우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의 백담사행을 제안했다. 스스로 유배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했다. 뉴스에서 사라져야 국민이 용납하고, 윤석열도 제 위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의원이 이런 제안을 하자 소록도 자원봉사 등 비슷한 제안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언론인 김대중은 조선일보 9월 10일자 칼럼에서 김건희 문제에 대한 윤석열의 진솔한 대국민사과를 촉구했다. 박정훈 논설실장은 “크고 작은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김건희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인상이 굳어졌다. 불길하고 또 불길하다”고 했다. 추석(9월17일) 전후 윤석열의 국정 지지도가 20%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동훈이 국민의힘 대표가 되고 윤석열과 독대를 여러 번 요청했다. 윤석열과 10월 21일 만났다. 제로콜라를 마시면서 80분간 대화했다. 윤석열이 한쪽에 앉고 맞은편에 정진석 비서실장과 한동훈이 나란히 앉았다. 자리 배치를 보면 비서 대우를 한 것이다. 회동에 앞서 10월 17일 한동훈은 김건희의 대외 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 협조 등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윤석열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9월 19일 뉴스토마토의 2보가 결정적이었다.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 정치 낭인으로 10년을 동가식 서가숙하던 김영선이 경남 창원의창에 전략 공천되었다.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 뉴스토마토는 명태균의 녹음을 공개했다. “사모(김건희)하고 전화해가. 대통령 전화해갖고. 대통령은 ‘나는 김영선이라 했는데’ 이라대. 그래서 윤상현이 끝났어” 윤상현은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명태균은 이준석과 카카오톡 대화에서 “윤 대통령 전화가 왔다. 윤상현 의원에게 전화해 김영선으로 전략 공천 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중에 민주당이 입수 공개(10월31일)한 윤석열 김건희와 명태균의 통화 녹취록을 통해서 이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2022년 5월 9일 대통령 취임 하루 전날 윤석열과 명태균이 통화를 했다. 명태균은 김영선을 공천하기로 했다는 윤석열의 통보를 받았다.
윤석열 : 공관위(공천관리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
명태균 : 진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건희가 “아니 오빠, 명 선생 그거 처리 안했어? 명 선생이 아침에 놀라셔서 전화 오게 만드는 게 이게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녹음도 공개됐다. 명태균이 자신의 무용담을 전하는 과정에서 말한 내용이다. 명태균은 이 통화에서 “(윤석열) 전화 끊자마자 바로 지 마누라(김건희)한테 전화 왔어. ‘선생님, 윤상현한테 전화했습니다. 보안 유지하시고 취임식 오십시오”라고 김건희가 말했다고 전했다.
전후 맥락을 정리하면 이렇다. 명태균이 김건희한테 전화로 김영선 전략공천 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묻고 재차 부탁했다. 이때 김건희가 윤석열에게 아직도 처리 못했냐고 다그친다. 윤석열은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명했지만 윤상현이 결국 수용한다. 윤석열은 명태균에게 전화를 걸어 생색을 낸다. 김건희도 생색에 합류한다. 명태균에게 전화를 해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전한다.
결국 김영선은 당선이 되었다. 5선 중진이 되어 국회부의장에 도전하려고도 했고,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에 문제가 없다며 수산시상을 다니면서 바닷고기를 담궈둔 바닷물을 마시기도 했다. 아직 원전수가 방류되기 전이다.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다. 명태균은 윤석열이 후보가 되도록 여론조사 마사지를 했다. 여론조사는 윤석열 부부에게도 전달이 됐다. 공직선거법상 선거비용으로 회계보고에 포함시켜야 하는 여론조사 비용을 누락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자금법 위반에도 해당된다. 윤석열이 당선되자 명태균은 빚 독촉을 한다. 3억7500만원에 달하는 조사비용을 김건희에게 요구한다. 김건희는 명태균의 동업자인 김영선에게 받으라고 김영선을 공천했다. 명태균은 이를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김영선은 당선후 선거비용(1억2000만원) 보전을 받아서 명태균에게 전했다. 명태균은 김영선에게 자신의 은혜를 평생 잊지 말라고 반협박을 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김영선이 세비의 절반을 매달 명태균에게 보내는 반팅을 했다. 아직 3억7500만원 전부를 돌려받지 못했다. 김영선이 한 번은 더 당선되어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김영선이 22대 선거에서 컷오프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렸다. 김건희가 깜짝 놀랐다. 김영선도 놀리고 명태균도 아연실색했다. 셋이 합동작전을 통해 지역구 이동을 통한 기사회생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말을 듣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영선은 친정인 국민의힘에게 한 방을 먹여야겠다고 작심했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떠들다가 온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김영선 명태균이 교도소로 가고 김건희 윤석열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민주당이 윤석열 탄핵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탄핵 사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명태균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취임 하루 전인 당선자 시절 있었던 일이라서 탄핵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직자가 되기로 한 때부터를 임기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11월 1일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김건희가 대통령 배우자 역할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84%에 달했다. 엠브레인퍼블릭 등이 합동으로 실시하는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김건희가 대외 활동을 중단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73%가 찬성, 2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건희가 여론조사의 소재가 되었다. 윤석열 직무 긍정율은 19%로 취임 후 최저치, 부정률 72%는 최고치를 나타냈다.
11월 4일 한동훈은 지도부회의에서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 협조 등 기존의 3대 조치에 더해서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감찰관 도입을 제안했다. 윤석열은 한때 한동훈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점차 한동훈은 ‘눈엣가시’가 되어갔다.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게 되면 김건희에 대한 감찰에 바로 착수하게 된다. 대통령실은 한동훈의 정체성이 의심된다며 크게 반발했다.
11월 7일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기자회견을 열어 거짓말을 했다. 명태균게이트에 대해 입을 열었다. “누구 공천 주라고 얘기한 적 없다…오랫만에 몇 달만에 (명태균 전화가 왔길래) 서운한 감정이 있을 것 같아서 고생했다”고 “한마디 한 것이 전부다”라고 또 거짓말을 했다. 화를 불렀다.
창원지검은 명태균의 황금폰에서 김건희와 나눈 SNS 메시지를 분석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280개의 대화, 107쪽 분량이다. 대검과 법무부에 보고가 되었다. 윤석열에게도 전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탄핵 시한 폭탄의 초침이 재깍재깍 돌아가고 있었다. 윤석열의 심장에서는 쿵쾅쿵쾅 소리가 울렸다. 불안했다. 불길하고 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명태균은 2024년 10월 8일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는 상황에서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 아직 내가 있던 일의 20분의 1도 안나왔다. 내가 입을 열면 정권이 뒤집어진다”고 했다. 윤석열의 예언은 적중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김용현 공소장에는 11월 24일 윤석열이 감사원장 검사 탄핵 등과 명태균게이트를 얘기하며 비상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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