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신원식 전 국방부장관.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윤석열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했다. 연간 의대생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그의 의료개혁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김건희 리스크는 시시각각 그 강도가 다르게 다가왔다. 김건희는 매일 악몽을 꾸는 듯 했다.
2023년 12월 윤석열은 신원식 국방장관, 조태용 국정원장, 김용현 경호처장, 여인형 국군방첩대장을 한남동 관저로 불렀다. 윤석열은 “어려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비상조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화두를 던졌다. 검찰의 공소장에 드러난 첫 번째 모의였다.
정보기관장과 대통령의 독대는 권력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유혹이다. 자칫하면 정적을 사찰하고 제거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 때는 중앙정보부장(안전기획부장)을 통해 정치를 관리해왔다. 윤석열이 저녁 술자리에 정보기관장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는 것은, 그가 이런 문제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 통수권자인 그가 심지어 국방장관까지 이 모임에 불렀다. 작정을 하고 불러모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밀실정치의 상징인 안가(안전 가옥)를 없애고, 김대중 대통령 때는 ‘독대 매뉴얼’을 만들었다.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보고를 하지 않도록 했다. 1998년 야당이 제기하는 지역편중인사 논란에 대한 대응 보고서를 국정원이 만든 것이 문제가 되자 취한 조치였다. 국정원장 보고 시에는 외교안보수석이 배석토록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장 대면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원장 독대를 즐겼다.
2024년 총선 전망이 밝지 않았다. 그 해 3월 삼청동 안가로 그들을 다시 불렀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200석을 넘겨 단독으로 개헌을 하거나, 대통령 탄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윤석열이 자초한 일이었다.
두려움과 망상에 젖은 윤석열은 “정상적인 정치 상황으로 가기 굉장히 어려워졌다, 비상한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7차 변론에서 신원식이 밝힌 내용이다. 윤석열과 김용현의 공소장에는 더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윤석열은 시국상황이 걱정된다고 하면서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나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군이 나서야 하지 않느냐, 군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반국가세력을 정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헌법 가치와 헌정 질서를 갖추어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나는 대통령이 끝날 때까지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주목되는 것은 2023년 12월 관저 모임 때와 달리 김용현 경호처장이 적극 동조했다.
윤석열이 위기감을 한 시간 가까이 토로하며 비상조치 필요성을 언급하자 국방부 장관이었던 신원식은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 조태용 국정원장도 만류했다. 조태용은 훗날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그날 그런 대화가 오고갔다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조태용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행동이다. 얽혀들려고 하지 않고 계엄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윤석열이 계엄령을 발동하면서 조태용을 건너뛰고 홍장원 국정원 1차장에게 직접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그의 성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신원식은 모임이 파한 후에 김용현 경호처장과 여인형 방첩대장을 모았다. 한남동에 있는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차를 마셨다. 신원식은 김용현에게 “유의 깊게 모셔라”, “대통령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비상한 조치)을 혹시라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하인 우리의 도리”, "그런 말씀은 아무리 술자리라도 사람들한테 하는 게 좋지 않겠다“고 당부했다.
신원식은 국방부 장관인 자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계엄령을 발동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형식상 계엄령 발동 건의는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할 수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윤석열이 계엄령 발동을 하지 않게 할 요량으로 김용현 경호처장에게 당부했다.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하시려면 제 입장이 중요하다는 생각 하에, 조금 예의에 벗어나지만 경호처장에게 제 뜻을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했다"(헌법재판소 진술) 계엄에 반대한 신원식은 8월에 경질되었다. 국방부 장관이 된 지 채 1년이 안되었다.
윤석열은 이날 모임에 대해 정반대의 진술을 했다. 거짓말이었다. 윤석열은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서 “호주 호위함 수주 얘기를 하면서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비상한 조치를 얘기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고, 엉뚱한 얘기로 추궁을 피해갔다.
윤석열은 “제 기억에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의 호위함 수주를 위해서 호주 대사로 보냈는데, ‘런종섭’이라며 인격 모욕을 당하고 사직했다. 결국에는 고위직의 활동이 부족해 호주 호위함 수주를 못받았다. 사실 우리한테는 한·호 해군 협력상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럴만한 상황에 처해져서 아마 그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화가 많이 났던 것 같고…”라고 말했다.
호주는 2024년 2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1차 후보군(롱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방산업계와 정부 당국은 한국이 호주 호위함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고 자신감에 넘쳐있을 때였다. 윤석열이 3월에 화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업체는 2024년 11월, 숏리스트에서 탈락했다. 8개월이나 앞당겨 화를 냈다는 것이다. 말이 안되는 말이다.
헌법재판소를 모욕하는 진술이었다. 윤석열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자주 하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4명을 추려놓고 면접을 했다. 그 당시에는 검찰개혁에 관한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검찰 출신인 다른 경쟁자들은 친정을 의식해서 조심스러운 단계적인 접근을 자신의 소신으로 피력했다. 윤석열만이 즉각적인 개혁에 찬성했다. 거짓말이었다.
윤석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21년 12월 KBS 2TV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했다. 어릴 때 콩서리를 하고 집에 들어왔다가 아버지한테 고무호스로 종아리를 맞았다고 했다. 대학 때는 공부 안 하고, 술 마시고 밤 늦게 들어오다가 고무호스로 맞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그런 일을 갖고 고무호스로 때렸다고 하는 말이 믿겨지지 않는다. 아마도 거짓말로 변명을 한 것이 아버지의 화를 돋군 것이 아니냐는 추론을 해 본다.
윤석열은 그 후 5, 6월 경에 삼청동 안가로 김용현과 여인형을 불렀다. 이른바 충암파의 회동이었다. 윤석열은 이날도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며 계엄 논의를 했다. 윤석열의 공소장은 ‘1. 사건관계인들의 신분 및 지위’로 시작한다. 각인에 대해서는 인물의 학력으로 시작하여 경력을 나열한 후, 죄목을 특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윤석열은 1979.2 경 충암고등학교를 제8회로 졸업하였고...”, “국방장관 김용현은 1978.2 경 충암고등학교를 제7회롤 졸업하였고...”,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은 1988.2 경 충암고등학교를 제17회로 졸업하였고...”로 각각 시작한다. 충암고가 공소장의 출발이다.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은 제12회다. 이상민은 2024년 3월,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방첩사를 방문했다.
여인형의 수행 부관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박세현 고검장) 조사에서, 여인형이 2024년 상반기에 두차례 만취하여 윤석열을 언급했다고 진술했다. 여인형은 3월 한남동 관저, 5월경 삼청동 안가, 6월17일 삼청동 안가에서 세차례 윤석열과 술을 마셨다.
부관은 “대통령을 만난 자리로 추정되는 모임이 끝난 뒤 돌아가는 차안에서 사령관이 만취해서 욕하고 소리 지르며 ‘내가 대통령 들이받았다, 난 충심에서 말했다”고 했다. 다음 날, 술이 깨서는 부관에게 “어제 내가 무슨 말을 했냐”며 보안을 잘 지키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여인형은 헌법재판소에 나와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였다고 했다. 술이 취하지 않고서는 용기를 낼 수 없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술에 취해 무릎을 꿇다시피 하면서 계엄을 반대했다고 했다,
그는 수차례 회동에서 “계엄은 안된다. 군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간인 상대 데모 진압 훈련도 이뤄지지 않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용기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중앙지역군사법원 공판 준비기일(2024년 12월 14일)에 출석하여 “비상계엄이 적법한지 위법한지 그 순간에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군인으로서 명령을 이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계엄이 위법하다고 윤석열에게 말한 바 있다. 이미 충암파라는 운명의 배에 탑승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윤석열은 술자리에서 정치권 인사에 대한 품평을 자주 했다고 한다. 비상대권을 사용하면 이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훗날 계엄령이 발동되고 김용현이 여인형에게 체포 대상 14명의 명단을 불러주었다. 여인형은 검찰에서 진술하면서 "윤석열이 만날 때 마다 부정적인 말씀을 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명단이 익숙하다는 취지였다.
“당적이 없는데 민주당에 편파적으로 국회 운영을 한다”(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대표와 가깝고, 대통령을 상대로 정치적인 공격을 많이 한 ‘종북 주사파의 핵심’이다”(김민석 최고위원) ”젊었을 때 (재벌) 회장 집을 쳐들어가서 처벌받은 전과가 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을 하냐“(이학영 국회부의장)
김민석 의원은 NL(민족해방)계 주사파가 운동권에 들어오기 전에 학생운동을 했다. 사실 관계가 틀리다. 이학영 의원은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같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에 관련되었다. 그는 훗날 선거공보에 ”이학영은 강도입니다.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아오려던 강도입니다. 이학영은 도둑입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민들의 마음에서 근심을 훔쳐간 도둑입니다. 피로 얼룩진 그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민국은 민주화 유공자 자격을 수여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여인형은 수사기관에서 체포명단의 시작은 윤석열이었다고 진술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4명을 특정하여 체포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직후 장관님(김용현)으로부터 처음 들었던 것이 맞습니다. 다만, 대통령께서 평소에 인물들에 대해 자주 품평회를 많이 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대통령께서 비상대권, 비상조치권을 사용해야 한다는 언급을 하시면서 비상대권, 비상조치권을 사용하면 이 사람들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