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실록, 초현실 비상계엄 (19)] 윤석열의 격노에 숨겨진 비밀, ‘돌아오지 못한 해병’ 사건의 전말

민병두 입력 : 2025.03.09 06:28 ㅣ 수정 : 2025.03.0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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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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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월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윤석열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여러 번 격노했다. 그가 격노하면 주변이 얼어붙었다. 절대 군주가 대로한 순간, 대통령실과 그 주변에서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했다.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면서 벌벌 기었다. 12.3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날의 국무회의 풍경이 그랬다. 두세 명이 그저 “주상 전하, 통촉하여 주십시오”라는 사극 대사 수준의 읍소를 했을 뿐이다.

 

이에 앞서 2023년 7월 31일 윤석열이 격노했다. 그는 회의 도중에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대로했다고 한다. 꽃 다운 청춘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를 은폐해 국민들의 분노를 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는 일에 해병대가 동원되었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급류에 들어갔다. 매뉴얼에 없는 일이다. 수색을 하던 중에 채수근 상병이 휩쓸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다. 지휘 책임에 대한 즉각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은 임성근 해병 1사단장 등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송치하겠다고 보고했다. 7월 30일이었다. 사망의 범죄에 이르게 한 원인이 있는 범죄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경찰이나 검찰에 이첩해야 한다는 법령에 따른 적절한 조치였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도 동의했다. 다음 날인 31일에 언론 발표도 지시했다. 그 사이에 김계환 사령관이 임성근 사단장에게 알려주었고, 임성근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31일 윤석열이 격노하고, 우즈베키스탄에 가있는 이종섭 국방장관과 세 차례 통화하면서 사건의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윤석열은 왜 격노했을까? 이 사건의 핵심이다. 작전을 수행하다가 벌어진 사병의 죽음을 갖고 지휘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윤석열이 생각해서일까? 아니다.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이 법리를 잘 알아서 과실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다. 

 

윤석열은 그렇게 보이도록 화를 내는 연기를 했던 것이다. VIP(김건희)의 로비가 있다고 보아야 사건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국정농단이다. 윤석열을 탄핵할 수 있는 범죄다. 윤석열은 이 격노가 자신의 탄핵사유에 해당할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했던 듯하다. 그렇게 연기를 하면 다 속아 넘어갈 줄 알았다. ‘돌아오지 못한 해병’을 쓴 구용회 CBS논설위원은 이 사건을 “진실과 격노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서 드러났다. 김건희가 막대한 이득을 본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주범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그 고리이다. 김건희는 그에게 자신의 계좌를 일임했다. 이종호 등이 만든 ‘멋쟁해병’이라는 단톡방이 있다. 단톡방에서는 임성근이 사단장으로 있는 1사단 초대 골프 등의 얘기가 있었다. 이종호는 단톡방에 함께 있었던 공익제보자 A 변호사와의 통화에서 “내가 VIP에게 얘기를 하겠다. 원래 그거 별 3개 달아주려고 했던 거잖아”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임성근 사단장은 당시 별 2개, 소장이었다.

 

범죄자가 뒤바뀌었다. 정의를 추구하던 박정훈 대령이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되었다. 해병전우회가 들고일어났다. 빨간 장미는 그와 연대하고 투쟁하는 상징이 되었다. 시민단체가 나서서 공수처에 고발을 했다. 이종섭 국방장관 등이 수사 대상이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은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내보냈다. 출국금지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하고, 심지어 법무부는 출국금지까지 해제했다.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이종섭은 자진 귀국하고 대사직도 그만두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2대 총선을 ‘신 한일전’이라고 수차례 규정했다. 정권이 한일 관계에서 저지른 잘못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대형 총선이슈가 터졌다. ‘신 한일전’에서 ‘도주 대사’로 이슈가 전환되었다. 심지어 호주 언론에서도 범법자를 대사로 내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정훈 대령은 보직 해임되고 항명 수괴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어명이오“ 이 한마디에 진실이 거짓이 되었다. 진짜 정의는 가짜 정의가 되고, 가짜 정의는 진짜 정의로 둔갑하였다. 박정훈 대령은 매일 아침 8시, 해병대 사령부 외딴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는 이 시간을 두고 ”말할 사람 없어 구름과 대화하고 돌과도 대화했다“고 기억했다.

 

신기선 시인은 ’ 격노‘라는 시를 발표했다. ”각하께서 격노하시었다 / 병사 1명이 죽었다고 사단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 각하께서 격노하시었다. / 해병대 빨간 난닝구 잘 보이라고 / 구명조끼마저도 입히지말고 / 미친듯 불어난 급류 속으로 / 병사를 수장시킨 사단장....채 상병을 살려내라.! / 채 상병을 살려내라!/20살 꽃같은 나이에 /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복무 중 / 수색작업에 동원되어 순직한 채수근 해병대원을 살려내라.!..“

 

외동아들을 잃은 고 채수근 상병의 어머니는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편지(2024년 6월11일)를 썼다. 7월19일이면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1주기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수사에 진전이 없고 엄마의 입장에서 염려가 되고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그날 물속에 투입을 시키지 않아야 될 상황인데 투입을 지시했을 때 구명조끼는 왜 입히지 않은 채 실종자 수색을 하라고 지시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고 꼭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저희 아들은 아토피가 있어 수영도 못하고 해병대 훈련받을 때 몇 번 강습받은 게 전부인 것으로 압니다. 수영 여부를 확인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끝까지 해병대 간다고 했을 때 말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큽니다. 어떻게 얻은 아이이고 얼마나 자존감이 높은 아들이었는데 안일한 군 지휘관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저의 아들이 희생이 되어 힘듦과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보고 싶고 체취를 느끼고 싶고, 식탁에 앉아 대면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모든 게 허망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직도 저희 아들이 이 세상 어디엔가 숨을 쉬고 있는 것만 같아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고 저희는 죽을힘을 다해 하루하루 사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습니다. 저희에겐 하나뿐인 외동입니다. 이 슬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얼마나 힘듦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활짝 웃으며 들어올 것만 아들! 또 장마철이 다가옵니다. 저희와 약속했던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수립하셔서 다시는 우리 장병들에게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주시고, 수근이가 좋아했던 해병대로 다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2025년 1월 9일 군사법원은 30분에 걸쳐 판결문을 읽은 뒤 박정훈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정훈 대령은 항명수괴의 혐의에서 벗어났고, 윤석열은 내란수괴로 기소되었다. 운명이 바뀌었다. 그 순간 박정훈 대령의 어머니 김봉순 씨는 ”앉아있는데 몸이 공중에 뜨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고 채수근 상병의 가족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했다. 

 

윤석열이 탄핵이 되지 않았으면 이 기적 같은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군사법원은 인사권자가 국방장관이다. 국방장관에 대한 항명죄를 무죄로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법원의 판결은 12.3 비상계엄과 같은 사건에서 상명하복을 해야 하는 군인들의 선택에 중요한 잣대를 제공했다. ’법을 준수하는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결정이었다. 여기에서 법을 준수하는 명령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은 지체 없이 경찰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12.3 비상계엄에서는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이 재판은 군대 내에서도 비상한 관심이었다. 어떤 명령이 위법이고 정당한지를 갈라주었기 때문이다. 

 

송원근 원불교 인권위원회 교무는 ”애초에 박정훈 대령 같은 지휘관들이 더 많았다면 12.3 내란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했다. 그는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 날 있었던 무죄 판결 촉구 집회에서 ”불의한 지휘관들로 가득 차있는 군대에서 박정훈 대령이 항명죄로 처벌받는다면 정치군인들이 더욱 득세할 것이고 제2, 제3의 김용현 여인형 같은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정훈 대령은 지난 3월 7일 해병대 인사근무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2023년 5월 양평고속도로 계획 변경, 7월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중단,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11월 김건희 명품백 수수 등 윤석열 정권은 망해가는 길을 가고 있었다. ”모든 길은 김건희로, 모든 의혹은 김건희로.“ 비아냥과 경종이 울렸지만 '조선 제일의 사랑꾼' 윤석열은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까지 ’채상병 특검법‘ 저지에 나섰다. 민주당은 세 차례에 걸쳐 특검법을 제출했으나 윤석열은 세 차례 거부했다. 

 

사단장 한 명을 보호하는데 정권의 명운을 건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 "거기에는 늘 김건희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절대지존 김건희에 대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총선 후에는 문제 삼을 듯한 발언을 했다. 윤석열은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불길한 예감을 가졌던 듯 하다. 그 해 12월 처음으로 계엄을 모의하는 모임을 가졌다.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계엄의 첫 단추를 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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