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류는 이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형성과 고착화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 유무에 따라 국가 간 이주를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노동력뿐만이 아니라 인구 절벽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에 그간 외국 인력 도입 현황을 돌아보고 향후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1980년 후반부터 국내 인력난이 심화되며 외국인 불법 취업자가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 정책을 수립했다. [사진=미드저니 / Made by A.I]
[뉴스투데이=이연복 더나은내일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1961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득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피해로 인해 82달러(1961년)를 기록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원조에 의존, 폐허 복구와 생계를 유지하는 최빈국에 속했었다. 지하자원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만, 뚜렷한 사계절과 맑은 물이 풍부한 강산에 의지하며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을 간직하고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은 국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근면・성실・협동 정신은 국가 재건의 원동력이 됐다. 정부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실천과 새마을 운동의 성공적인 정착이 이를 입증한다. 일할 기회가 있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뿐 아니라 타국에 나가 외화를 획득했고 정부는 이를 담보로 차관을 도입해 경제발전의 마중물로 활용했다.
이로 인해 중화학 공업국으로의 도약, IT와 반도체 산업으로 진출 등으로 국가의 경제발전은 세계를 경악시켰다. 1988년도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 1996년 OECD 가입은 빈민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입증했다. 선진국의 지원을 받던 우리나라는 빈민국과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나라로 도약한 것이다.
한 세대(30년 기준)가 지난 1991년도에 1인당 국민소득이 7105달러(1961년 82달러)로 86.6배 성장했고 두 세대가 지난 2021년도에는 3만2886달러로 401배가 성장했다. 이는 60년 만에 401배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작년(2024년) 기준 3만6624달러로 일본을 제쳤고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기준 세계 6위의 상위권에 진입했다.
이러한 성장이 인구의 이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내 일자리가 부족하고 저임금 시대에 국가 주도로 자국민을 타국으로 송출했으나 국내 일자리가 증가하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1990년에 중단됐다. 거꾸로 부족 인력을 타국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실정이 되면서 ‘외국인 산업연수 제도(System for Training Aliens)’가 1993년에 도입됐다.
외국인 산업연수 제도는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를 초청해 선진 기술・기능을 연마시킨 후 자국에 돌아가 활용토록 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자료=이연복 더나은내일협동조사 이사장 / 그래프=뉴스투데이]
■ 공식적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 도입의 출발
1980년 후반부터 △구직자의 중소기업 근로 기피 △해당 지역의 취업 대상 근로자 부족 △상대적 저임금 △열약한 작업환경 등으로 중소・영세업체의 인력난이 심화됐다. 이를 계기로 외국인 불법 취업자가 증가했다. 정부는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외국인력 도입정책을 수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연수 초청단체로 지정했으며 담배제조업, 출판업, 기록 매체복제업을 제외한 모든 중소제조업체에 적용했다. 초청 대상국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네팔, 태국, 이란, 카자흐스탄, 몽골 등 14개국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대내・외적인 문제점이 노출됐다. 이를 살펴보면, 연수제도의 취지에 어긋났다. 당초 부족 인력 충당 목적으로 주로 3D 단순 업종에 종사토록 했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부재하여 훈련생들에게 실망감을 줬다. 연수생의 근로조건이 불법체류 근로자보다 낮아 처우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유사한 일을 하면서 불법체류 근로자보다 처우가 열약하고 불법체류 근로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불법 직업알선업체의 난립으로 연수생들의 불법체류를 유도했다. 또, 일부 국가의 송출기관에서 교육비・출국절차비 등의 명목으로 연수생들로부터 과다한 수수료를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연수생 초청 업무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독점하고 선발 업무를 외국의 송출업체에 일임함으로써 연수기관과 연수생과의 이해관계가 사전조율이 되지 않아 이탈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우리나라의 대외협력관계에서 외교적・대외적인 부담으로 작용될 우려가 있었다.
E-9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 도입 절차 [자료=이연복 더나은내일협동조사 이사장]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4년 8월17일 고용허가제(EPS: Employment Permit System,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를 도입했다. 이로써 1993년도에 도입된 외국인 산업연수제도는 13년(2006년까지 병행)에 거친 노정을 끝마치게 된다. 고용허가제는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와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제도이다.
이는 1963년도에 체결된 한·독 양국 정부 간의 ‘서독파견 한국 광부 임시고용계획(각서)’과 유사하다. 우리나라 정부와 송출국 정부 간의 양해각서를 체결해 정부가 직접 수행하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관련 법령 등을 내국인 근로자와 동등하게 적용해 도입・송출업무의 공정성을 확보한 지구촌에서 유일한 제도이다.
이 제도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비전문 취업(E-9)자와 방문 취업(H-2)자를 말하며 E-9 비자 취업자는 필리핀 등 17개 송출국가의 근로자이고 H-2 비자 취업자는 만 25세 이상의 중국・구소련 국적의 동포나 가족 등의 근로자이다. 이들에게는 전문가 비자와 달리 직종(직업)이 아닌 업종으로 구분해 취업을 허용한다.
E-9 비자는 제조업을 제외한 업종(소수업종)의 경우 도입 규모가 적다는 점, 업종 특성상 일부 국가에서의 도입은 곤란한 점, 국가별로 사업주 선호도 차이 등을 고려해 소수업종 특화국가를 운영하고 H-2 비자는 E-9 비자가 허용하는 모든 업종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업종과 사업장 규모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 고용 가능 인원이 다르다.
고용허가제의 절차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 결정부터 귀국 지원까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E-9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 도입 절차와 H-2 방문 외국인 근로자 도입 절차는 차이가 있다.
이연복 더나은내일협동조합 이사장 프로필 ▶ 1979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전신 한국기술검정공단에 입사해 40여 년 간 인적자원개발 분야에서 일했으며,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정보화지원국장, 글로벌일자리지원국장, 직업능력국장 및 국제인력본부 본부장을 역임했다. 고졸 출신 직업인으로 시작해 산업경영공학 박사까지 취득했고 소신과 끈기로 한 분야를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