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눈]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上)
[기사요약]
흔히 집안일로 불리는 가사노동,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일종의 경제적 행위
가사노동은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을 뒷받침.. 우리 사회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 수행
가사노동은 현재 GDP에 반영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가치 가지고 있어..
게리 베커의 ‘가계생산이론’ - 가사노동을 생산활동 측면에서 바라보고, 가사노동의 화폐가치 측정의 이론적 근거 마련
‘가계생산이론’ 계기로 가사노동의 가치평가 문제가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관심 분야로 부각
과거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당연히 여성이 할 일로 여겨졌고, 그에 대한 경제적 가치도 인정받지 못했었다. 세상이 바뀌어 오늘날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사노동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녀 모두 함께 분담해야 하는 일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사회 일각에서는 가사노동에 대해 가부장적 시각을 지니고 있고, 특히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폄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가사노동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특히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우리나라 가사노동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범식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가사노동은 흔히 집안일로 불린다. 과거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당연히 여성이 할 일로 여겨지거나 그 가치가 폄하되어왔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사노동은 남녀 모두 함께 분담해야 하는 일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가부장적 유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실정이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과거와 달리 이제는 집안일을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세탁기와 건조기 등이 다 해주는데 뭐가 힘드냐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 가사노동은 소중한 경제활동,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평가절하
필자가 평소 존경하는 분의 부인이 손목 골절상을 입어서 한동안 집안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은 어쩔 수 없이 집안일을 맡아 해야만 했다.
그때 그분이 사석에서 “늘 불평 없이 잘해주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막상 내가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해보니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동안 집안일에 가치를 크게 두지 않았는데 부인에게 집안일의 가치에 맞게 돈을 준다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집안일을 힘닿는 데로 함께 해야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사노동은 경제적·사회적으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사노동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으로 일종의 경제적 행위로 볼 수 있다.
현재 가사노동이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 이는 주부가 하던 일을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돈을 준다고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가사노동은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을 뒷받침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군가의 가사노동이 있어서 가족 구성원들은 건강을 지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가족은 구성원 간 접촉 빈도가 높은 가운데 가장 강한 유대감과 신뢰감을 느끼는 1차 사회집단이다. 이를 통해 가족 구성원들은 인격적 측면에서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이러한 학습 과정은 향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디딤돌 역할을 한다.
•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 게리 베커의 ‘가계생산이론’으로 뒷받침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문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일부 학자들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게리 베커(Gary Becker)를 들 수 있다. 게리 베커는 과거 경제학이 다루지 않았던 인간행동과 사회현상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 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게리 베커는 ‘가계생산이론(household production theory)’이라는 새로운 소비자행동이론을 제시했는데, 그의 이론은 가사노동의 화폐가치 측정에 관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계생산이론’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계는 전통적인 소비자행동이론에서 소비의 주체로 보지만, ‘가계생산이론’에서는 생산의 주체로 본다. 일반적으로 가계의 효용은 소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가계에 최종적으로 효용을 주는 것은 시장에서 구매한 상품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주부가 집에서 불고기를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시장에서 산 소고기, 당면 등은 불고기를 만드는 생산요소가 되어 주부가 투입한 노동력과 요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최종 소비상품이 바로 불고기이다. 즉, 가계는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활동을 하는 경제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계가 생산하는 최종 소비상품의 생산요소는 시장에서 판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을 하는 주부의 시간도 포함된다.
게리 베커는 주부의 총 시간 중 가사노동과 여가 활동에 투입된 시간은 시장을 통해서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그 교환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가사노동시간이 늘어나면 노동시장에서의 생산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소득도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가사노동의 기회비용은 주부가 노동시장의 생산활동에 참여할 때 받을 수 있는 잠재소득(potential income)으로 보았다.
김애실(1985)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라는 논문에서 게리 베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첫째, 게리 베커는 가계효용함수와 가계생산함수에 관한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적인 미시경제이론의 한계에서 벗어난 가계의사결정이론을 발전시켰다.
둘째, 순수한 소비활동으로 간주되어 GNP(Gross National Product) 계정에서 제외되고 있는 가사노동을 가계생산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보게 했다.
셋째, 가사노동의 가치평가 문제를 경제학자들의 관심 분야로 이끌었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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