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눈] 한국경제의 경기순환, 어떻게 변해왔나? (6)
[기사요약]
제6순환기 - OECD 가입과 IMF 구제금융,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사건 통해 빛과 어둠 교차
무리한 외채 조달과 부실 경영으로 대기업들이 연이어 도산,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 붕괴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전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등 외환위기에 빠져..
IMF 구제금융 요청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개혁 진행.. 1998년은 한국경제 역사상 가장 혹독하고 어려운 시기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국민의 열정과 저력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
경기는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중심으로 바다의 파도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이를 경기순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경기순환은 경제라는 바다에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계, 기업, 그리고 정부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는 이러한 주기적인 환경변화 속에서 적합한 방법으로 헤엄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을 구분하지 못한 채 무작정 수영을 시도하면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현재 경기국면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지혜로운 대비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과거 한국경제에서 나타난 경기순환의 양상과 주요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1972년 3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한국경제에서 발생한 총 11차례의 경기순환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범식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제6순환기는 1993년 1월부터 1998년 8월까지의 경기순환을 의미한다.
당시 경기 확장국면(1993년 1월~1996년 3월)은 38개월 동안 지속했으며, 이후 수축국면(1996년 3월~1998년 8월)은 29개월 동안 이어졌다.
제6순환기의 확장국면 지속 기간은 한국 경기순환의 평균 확장기(33개월)보다 길었지만, 수축국면도 평균 수축기(20개월)보다 9개월 더 길었다. 특히, 이 시기의 수축국면은 역대 한국 경기순환 중 가장 긴 기간이었다.
• 제6순환기: OECD 가입과 IMF 구제금융 등.. 빛과 어둠이 교차
이 시기는 1993년 2월 출범한 문민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1993~1997)’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 정부는 경제 활력 증진과 체질 강화를 위해 단기적으로 ‘신경제 100일 계획’을 시행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등의 경제 개혁과 함께 성장잠재력 강화, 국제화·개방화 등을 골자로 하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에 참여하며 국제 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국내 진출을 허용했고, 1996년에는 소위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던 OECD에 가입하는 등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규제가 완화되자 국내 금융기업들은 해외에서 단기외채를 조달한 후 이를 국내기업에 대출해 이윤을 창출했고, 기업들도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 사업을 확장했다.
당시 한국경제는 엔화 강세에 따른 수출의 가격 경쟁력 회복과 반도체 호황의 영향으로 전기·전자제품을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1993년 64MD램에 이어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우위를 확보했다.
또한, 자본자유화로 인해 외국자본 차입을 통한 설비투자가 확대되었으며, 민간소비도 높은 임금 상승에 따른 가처분소득 증가, 특별소비세 인하, 시장개방으로 인한 소비자 선택 폭 확대 등의 요인으로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경제성장률은 1992년 6.4%에서 1993년 7.0%로 상승한 데 이어, 1994년과 1995년에는 9%대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했다.
< 제6순환기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추이 >

그러나 이후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의 가격 경쟁력 약화와 주력제품의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인해 수출 부진이 지속되었으며, 대규모 투자로 인해 외채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무리한 외채 조달과 부실 경영으로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삼미, 진로, 대농, 한신, 기아 등 대기업들이 연이어 도산하면서, 한국경제에서 불문율로 여겨졌던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무너졌다. 금융기관들도 막대한 부실채권으로 인해 재무 건전성이 크게 악화했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의 외환위기가 한국으로 전이되면서 대외신인도가 하락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해외 결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결국 외환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외채 규모는 과도했지만, 외환보유고가 부족해 외환시장이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환율은 급등했다.
결국 정부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국가 부도 사태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이후 IMF 요구에 따라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대한제국 시기의 국채보상운동처럼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이 확산했다.
그러나 1998년은 한국경제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기였다. 경제성장률은 -4.9%로 급락했고, 실업자는 사상 최대인 149만명에 달했으며, 소비자물가는 7%대로 급등했다.
< 제6순환기의 실업률과 실업자수 추이 >

제6순환기는 OECD 가입과 IMF 구제금융이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사건을 통해 명암이 엇갈린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한국경제는 1993~94년(엔고 호황), 1994~95년(반도체 호황) 등 몇 차례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정부와 기업 모두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실물 부문의 과잉투자와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견제할 금융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특히, 낙후된 금융산업으로 인해 금융기관들은 책임경영과 신용평가 능력이 부족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다.
당시 정부 역시 잦은 경제 각료 교체로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했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1998년은 한국경제 역사상 가장 혹독하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국민의 열정과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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