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눈] 한국경제의 경기순환, 어떻게 변해왔나? (4)
[기사요약]
제3순환기 - 스태그플레이션 극복하고 경제의 안정과 균형 회복한 시기로 평가
특히, 고성장 중심 경제 운영에서 벗어나 경제 안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를 위해 물가안정, 긴축재정 강력히 추진
제4순환기 - 198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3저 현상’, 한국경제 성장에 큰 역할.. 사상 처음 무역수지 흑자도 달성
1987년 6월,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 있어.. 이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 쟁취, 이는 경제 정책과 사회 구조에도 큰 영향
경기는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추세를 중심으로 바다의 파도처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이를 경기순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경기순환은 경제라는 바다에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계, 기업, 그리고 정부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는 이러한 주기적인 환경변화 속에서 적합한 방법으로 헤엄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을 구분하지 못한 채 무작정 수영을 시도하면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현재 경기국면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지혜로운 대비와 행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과거 한국경제에서 나타난 경기순환의 양상과 주요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1972년 3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한국경제에서 발생한 총 11차례의 경기순환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범식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제3순환기는 1980년 9월부터 1985년 9월까지 지속했다.
이 시기 한국경제는 제2차 오일쇼크의 후유증과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1982년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으로 공영토건과 일신제강 등 중견기업이 도산하면서 자금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에 따라 당시 경제 정책은 고도성장보다 안정과 균형 발전에 중점을 두었다. 다행히 세계경기 회복에 힘입어 제조업 생산과 수출이 증가했고, 물가안정 정책을 추진한 결과, 고물가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 제3순환기: 경기회복과 물가안정 달성 등 스태그플레이션 극복
경기 확장국면(1980년 9월~1984년 2월)은 한국 경기순환의 평균 확장기(33개월)보다 긴 41개월 동안 지속했다.
이는 세계경기 회복, 원/달러 환율 상승, 그리고 정부의 수출장려 정책 등의 영향으로 수출이 증가하고 소비가 확대되면서 경제 회복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시중자금 경색 완화대책을 마련하고, 균형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했다.
< 제3순환기와 제4순환기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추이 >

1980년 한국경제는 -1.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졌으나, 수출과 민간소비 증가에 힘입어 1981년과 1982년에는 각각 7.4%, 8.5%로 회복되었으며, 1983년에는 13.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0년 28.7%에 달했으나, 1981년 21.4%, 1982년 7.2%, 1983년 3.4%로 계속 둔화하면서 물가가 크게 안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와 주요 국가들의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경기는 19개월간의 수축국면(1984년 2월~1985년 9월)에 접어들었다.
주요 수출시장이었던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984년 7.2%에서 1985년 4.2%로 떨어지면서 우리나라 수출증가율도 1984년 19.6%에서 1985년 3.6%로 급감했다.
또한, 정부는 무리한 투자 확대를 지양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추진했으며, 이로 인해 국내 경기도 위축되었다.

제3순환기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경제의 안정과 균형을 회복한 시기로 평가된다. 특히, 고성장 중심의 경제 운영에서 벗어나 경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물가안정, 그리고 긴축재정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리고 경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 육성과 산업구조조정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한국경제 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였다.
그러나 높은 수출 의존도로 인해 대외 환경변화에 취약하다는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외수와 내수의 균형 발전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 시기이기도 하다.
• 제4순환기: 3저 호황 속에 대통령 직선제 등 정치적 전환기 맞아..
제4순환기는 1985년 9월부터 1989년 7월까지 지속했다.
이 시기의 경기 확장국면(1985년 9월~1988년 1월)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라는 세 가지 유리한 외부 경제 환경이 동시에 작용한 ‘3저 호황’이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유가 하락으로 인해 원유 수입 비용이 감소했고, 이는 제조원가를 낮추어 물가안정에 기여했다.
또한,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추진한 1985년 플라자 합의는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며 주요국 통화 대비 가치 하락을 초래했다.

그 결과, 일본 엔화 가치가 크게 상승하면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도 상승했으나, 일본 엔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오르면서 우리나라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요인 덕분에 우리나라는 1986년 사상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인하하면서 국제금리도 동반 하락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외채부담이 감소했고, 설비투자도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우호적인 대외환경에 힘입어 경제성장률은 1985년 7.9%에서 1986년과 1987년에 각각 11.5%, 12.9%로 상승했다.
그러나 노사분규 격화, 부동산 가격 및 임금 상승 등으로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물가도 급등하면서 경기는 수축국면(1988년 1월~1989년 7월)에 접어들었다.
소비자물가는 1987년 3.0%에서 1988년 7.1%로 급등했다. 다만, 민간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 등이 견조한 증가세를 보이며 경기 위축을 일부 상쇄했다.
< 제3순환기와 제4순환기의 무역수지 추이 >

제4순환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3저 현상’이 한국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시기였다.
경제적 요인 외에도, 1987년 6월에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이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등 민주주의의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는 경제 정책과 사회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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