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가 시장금리 하락세에 맞춰 연 3%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은행들은 당장 자금 조달 부담이 크지 않은 만큼 현재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면서 수신고 조절에 나설 전망이다.
21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50~3.60%로 집계됐다. 국민·신한·하나은행이 연 3.50%를 제공하고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은 각각 3.55%, 연 3.60%를 적용 중이다.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지난해 11월께 연 4%가 붕괴된 이후 완만한 하락세를 보인 뒤 최근 몇 개월간 뚜렷한 등락 없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신규 취급액 기준 가중평균금리는 올 1월 3.65%에서 2월 3.63%, 3월 3.61%로 연일 하락했다.
연내 주요국 기준금리 인하 전망에 따른 채권금리 하락이 정기예금 금리를 끌어내렸다는 평가다. 은행은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해 10월 말 연 4.1%에서 지난달 초 연 3.7%선까지 떨어진 뒤 최근 연 3.5~3.6% 수준을 횡보하고 있다.
최근 은행에 시중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점도 정기예금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요인이다. 은행은 주로 예·적금과 은행채 등을 통해 자금을 채운 뒤 대출을 내줘 수익을 얻는데, 현재 수신고가 예전보다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16조3371억원으로 올 1월 말(590조7120억원) 대비 25조6251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수시입출금식통장(파킹통장) 등을 포함하는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0~1%대에 불과해 대표적인 저원가성 예금으로 꼽힌다.
은행 입장에선 큰 이자 지출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셈이다. 자금 조달 상황이 악화되면 정기예금 금리 인상 등을 통해 자금 유치에 나서겠지만, 현재 수신고를 봤을 때 무리하게 영업에 나설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 카카오뱅크의 1년 만기 정기예금은 현재 연 3.30%까지 주저앉았다. 통상 인터넷전문은행은 비대면 영업으로 절감한 비용을 금융상품에 반영해 금리 경쟁력을 갖추는데 오히려 시장 평균보다 낮은 수신금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뱅크의 올 1분기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30조1000억원으로 전분기(26조1000억원) 대비 4조원 늘었다. 특히 수신 잔액에서 저원가성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 1분기 56.8%로 은행권 평균(약 395)을 크게 상회했다. 카카오뱅크 역시 정기예금 금리 인상으로 이자 비용 지출을 늘릴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은행들이 무리하게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면 차주의 이자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신규 취급액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국내 8개 은행이 취급한 수신 상품 금리에 따라 등락하는데, 정기예금 비중이 70%를 넘는다.
신규 취급액 코픽스는 지난달 기준 3.54%로 5개월 연속 하락세가 이어졌다. 이 같은 흐름은 정기예금과 은행채 금리 하락세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은행의 조달 비용이 증가할 경우 코픽스가 다시 오르고 대출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수신금리가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긴 했지만 대출금리도 상당폭 인하됐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따른 결과라고 보면 된다”며 “하반기 채권금리가 어떤 수준을 보이느냐에 따라 금리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