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교영 기자 입력 : 2025.01.14 05:00 ㅣ 수정 : 2025.01.15 07:15
고려아연, 23일 임시 주총에 집중투표제 도입 카드 '만지작' 헤지펀드, 집중투표제 악용해 단기수익 거둘 가능성 있어 영풍·MBK "소수주주 영풍 측 이사 이사회 진입 막기위한 횡포" 고려아연 "영풍·MBK, 집중투표제 도입 필요성 모르는 '아전인수' 극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고려아연이 오는 23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안건 중 하나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내세운 가운데 이를 두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영풍·MBK 연합이 날선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집중투표제가 소수주주 의결권이 사표가 되지 않고 이들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영풍·MBK 연합은 최윤범 회장 자리 보전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 도입에 재계와 정부도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데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도 '반대' 권고를 내 양측 공방전을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 정부, 집중투표제 도입 신중한 입장…최 회장 '우군' 한화·LG는?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2인 이상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한 주식 1주 당 선임 예정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개별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할 때 과반 이상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의결권을 모아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할 수 있어 소수주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한 이사회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어 대표적인 글로벌 의결권 자문 기관인 글래스루이스와 ISS 등도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지배구조 불안정과 외부 세력 경영 개입 확대 우려 등으로 도입에 신중한 상황이다.
실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 더 많은 것으로 안다”며 “집중투표제 도입은 여건 조성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계 역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도입 취지와 다르게 소수 주주는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하기 어렵고 헤지펀드들이 단기수익을 올리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경제단체는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 권리 확대 취지로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자 부작용을 거론하며 반대했다.
최윤범 회장 측 우군으로 분류되는 한화와 LG 등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한화그룹과 LG화학은 고려아연 지분을 각각 7.75%, 1.89% 보유한 주주이자 한경협 회원사이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만약 이들이 이번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표를 던지면 추후 자사 정관에도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수 있어 고심이 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해 10월 2일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교영 기자]
■ ISS '반대' vs 서스틴베스트 '찬성'…의결권 자문사 의견도 엇갈려
이처럼 고려아연과 영풍·MBK 연합이 집중투표제를 두고 날선 공방을 이어가는 가운데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가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를 권고해 영풍·MBK 연합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에 맞서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 서스틴베스트는 찬성을 권고해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도입을 놓고 의결권 자문사 의견도 엇갈렸다.
ISS는 지난 9일 기관투자자들에게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은 의안 분석 보고서를 발송했다.
ISS는 “일반적으로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에게 혜택이 가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번 경우에는 MBK·영풍 측에서 추구하는 개혁을 희석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안건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ISS는 “현 경영진 최윤범 회장 측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임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영풍·MBK가 추진하는 이사회 개편이 약화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ISS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7명에 대해 전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이사 수 19명 상한 안건과 관련해 “이사 수 상한이 이사회 변화를 막는 것이라는 영풍·MBK입장에 공감한다”면서도 “이 안건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사회 규모가 과도하게 확대돼 의사결정이 마비되고 기능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찬성했다.
반면 또다른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집중투표제와 이사 수 상한 설정 등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제안한 안건에 모두 찬성할 것을 권고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집중투표제에 대해 “소수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경영 투명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판단돼 찬성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사 수를 19인 이하로 제한하는 안건에 대해서도 “이사 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이사 개개인 책임과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며 “의견 조율이 어려워지면 이사회 운영의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찬성 의견을 표명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지난달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회복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MBK파트너스]
■ '본래 취지' 잃어…영풍·MBK 연합 가처분 신청으로 맞서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이 소수주주 권익보호를 보호할 수 없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MBK 파트너스는 지난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더라도 소수주주 권익보호는 커녕 고려아연 주총에서 소수주주를 위한 신규이사 선임 자체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특정 소수주주가 1명의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보유 주식 수에 대한 공식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및 이사 수 상한제가 소수주주를 위한 신규이사 선임 자체를 무력화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MBK 파트너스는 법조계 의견을 인용해 “고려아연 지분 구성을 봤을 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오히려 일반 소수주주 측 이사 선임이 불가능하다”며 “소수주주 권리가 역으로 침해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지어 이번 23일 임시 주총에서 일반 소수주주들은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 제안을 감춰 이사 후보 추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며 “최 회장은 자기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 상법도 위반하고 주주평등 원칙도 무시하며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것”이라고 덧붙였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최 회장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며 집중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최 회장 측이 대주주로 있는 서린상사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추가했다며 이율배반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영풍·MBK 연합은 “서린상사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한 것은 소수주주 영풍측 이사를 한명이라도 이사회에 진입시키지 않기 위한 최 회장 측 횡포”라며 “소수주주 보호취지를 몰각하고 오로지 자신의 자리보전만을 위해 (같은 사안을) 배제하기도 도입을 추진하기도 하며 제도를 악용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라고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영풍·MBK 연합이 케이지트레이딩(옛 서린상사)이 비상장사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숨기며 시가총액 19위(1월 10일 기준) 고려아연과 동일선상에서 집중투표제를 거론하고 있다”며 “집중투표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시장·소액주주 의도나 목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말그대로 ‘아전인수’ 해석의 극치”라고 팽팽히 맞섰다.
실제 '헤이홀더'와 '액트' 등 소액주주연대는 잇따라 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했다.
헤이홀더는 "고려아연이 꺼내든 집중투표제 카드는 매울 훌륭한 선택으로 평가된다"며 "집중투표제 외에 이사회 상한 수 설정과 액면분할, 소수주주 보호 명문화, 사외이사의 의장 선임과 분기 배당 도입 등도 소액주주들이 반복해 상장기업에 주장한 사안"이라고 반색했다.
액트는 "집중투표제는 오래전부터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대표적 제도”라며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수 있다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입장을 드러냈다.
한편 영풍·MBK 연합은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는 제2호, 제3호 의안상정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오는 17일 첫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