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4.09.03 10:47 ㅣ 수정 : 2024.09.03 10:47
재활기간 동안 못이룬 군생활의 아쉬움을 대대장 취임 후 원없이 바쁘게 달려 잠수하라는 조언을 명심했지만,낭중지추(囊中之錐) 때문에 ‘난득호도(難得糊塗)’ 무너져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매년 10월1일 즈음에 대대에서 연례적으로 준비하는 ‘국군의 날’ 행사는 큰 보람을 느끼게 한다. 믿음의 집 뇌성마비자와 희망원 고아들, 보이스카웃단원들 그리고 지역 기관장들을 초청해서 민관군이 하나가 되는 행사를 치루었다.
국군의 날처럼 민관군초청 행사외에도 지역 기관장들과는 주기적으로 모임을 했다. 특히 지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변종석 청원군수와는 형제나 부자(父子)처럼 더욱 각별하게 지냈다.
변 군수는 필자보다도 나이가 20세 정도 많고 운동을 좋아하며 적극적인 성격이라 지역 주민들의 인기가 높았다. 필자는 대대장 재임기간동안 명절이 되면 군납양부 한병을 들고 군수의 자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는 더많은 선물도 받아오곤 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런데 변 군수는 과거 5공화국 시절 삼청교육대가 운용될 때 축구선수로 지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경찰에 밉보여 삼청교육대 대상으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당시 대대장이 경찰서를 찾아와 변 군수를 보증하며 꺼내주어 위기를 모면한 덕택에 우리 군에 항상 감사해하며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또한 서부경찰서장인 한진희 총경(훗날 서울경찰청장 역임)은 청주에 혼자 내려와 살고 있었는데 수시로 관사를 찾아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냈고 덕분에 대대정문 앞 가로수 터널에 신호등을 설치하도록 협조를 해주어 보다 안전하게 차량들이 부대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한편 당시의 지검장은 나름대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필자에게 각별했는데 기관장 회식시에 술에 취해 “한국에서는 숨만쉬면 구속가능하다”는 농담도 하여 필자를 당황시켰고, 실제로 타지역 출신 교육감이 얼마 뒤에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 정체된 시간이었던 22개월의 재활기간 동안 못이룬 군생활의 아쉬움을 지난 9개월 동안 원없이 바쁘게 달려
행사를 위해 60여명밖에 안되는 대대원들이었지만 부지런히 연습해 태권도와 군무 시범도 보이면 참석한 기관장들과 어린이들의 환성과 박수에 시범을 보인 대대원들은 사기도 고양되었다. 어떨 때는 지역 태껸도장 사범과 협조해 단원들을 초청하여 태껸 시범을 모이면 참석한 주민들도 매우 즐거워했다.
국군의 날 행사를 하면서 단풍이 시작되고 결실의 계절인 가을도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1994년 4월 대대장반 교육시에 대구 팔달천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입원하며 시작된 병원 생활이 또 재골절 수술까지 무려 8개월이나 됐다.
그동안 군사영어반 6개월, 군수학교 2개월 등 비정상적인 보직에서 벗어나 대대장으로 취임한지 9개월을 포함해 31개월이나 되었다. 그중에 정체된 시간이었던 22개월의 재활기간 동안 이룬 군생활의 아쉬움을 지난 9개월 동안 원없이 바쁘고 보람차게 달려왔다.
대대장 취임후 천군만마가 된 이완목 부대대장의 잠수(潛水)하라는 조언을 명심하고 몇 개월 동안 소리없이 부대 내실을 기하며 지역 주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민관군 통합작전을 위한 대민활동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일부러 바보인 척하기도 참 어렵다’라는 의미의 정판교가 남긴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고사성어처럼 경쟁하는 인접부대를 자극하는 불쑥 튀어나오는 일이 또 발생했다.
■ 낭중지추(囊中之錐)였던 중대장겸 정보장교인 이지현 대위 때문에 무너진 난득호도
전국시대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 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라는 식객이 데려가 달라고 했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낭중지추:囊中之錐).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 하고 반문했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 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했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 수 있었다는 사례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유래됐다.
창조는 모방이다. 중대장겸 정보장교인 이지현 대위가 정보분석조 임무를 수행하며 전투지휘검열을 받다가 정보분석조 가방이 너무 불편하여 등산용 조끼의 주머니에 장비들을 넣고 가방없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건의했다. 좋은 착안이라며 극찬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전부대가 활용하고 있고 대대가 최초로 개발한 부대가 되었다.
또한 마침 상급부대 불시 검열시에 제시하였는데 검열관도 감탄하며 전군에 전파하겠다고 칭찬했으며, 이어 기무부대장, 연대장 그리고 대대를 갑자기 방문한 부사단장에게도 보고하자 부사단장은 사단장에게 보고하겠다며 정보분석조 조끼를 사단으로 가져갔다.
결국 정보분석조 조끼는 사단에 통일되어 활용하게 됐고, 이지현 대위는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었으며 이로인해 잠수하려던 난득호도(難得糊塗) 실천은 무너지고 말았다.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