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분 기자 입력 : 2024.09.02 08:05 ㅣ 수정 : 2024.09.02 08:05
[뉴스투데이]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최근 공시 의무화를 준비하는 기업들을 자문 및 컨설팅을 위해 여러 기업을 방문하면서 많은 기업이 ESG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재 ESG 공시 의무화는 2026년부터 자산 2조 이상 기업들을 대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행정부 19개 부처 중 2024년 예산이 가장 적은 행정부의 예산이 1조965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자산 2조 이상의 기업들이 "무슨 ESG 공시 정보 추가로 힘들다는 거냐"고 할 수 있다.
물론 꼭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의 보고대상 기업이 해당 기업들의 종속기업들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왜 힘들다고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지속가능성위원회(KSSB)가 발표한 한국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에 따르면 기업은 종속기업의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도 공시해야 한다. 모기업, 지주회사 또는 자신들과 협력하는 기업들이 공시 의무를 갖는 경우 ESG 공시 의무화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됐을 테다. 혹여 준비돼 있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준비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다.
반면 규모가 작은 계열사의 경우에는 ESG 공시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며 인적, 물적 자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6월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ESG 공시 관련 기업 의견 조사를 보면 기업들의 현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상장사협의회 등 경제 단체가 공동으로 자산 2조원 이상 12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 관련 기업 의견’을 조사한 결과, ESG 공시 의무화 시점을 2026년 이후가 적정하다는 기업은 81.6%였으며 2028년부터 공시 의무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58.4%였다.
현재 예정대로 2026년부터 공시 의무화를 시행해야 한다는 기업은 18.4% 뿐이다. 즉 2023년 조사에서 27%의 기업이 ESG 공시 의무화를 2025년부터 시행하는 게 적절하다고 응답했던 것에 비해 시기가 1년 연기됐음에도 2026년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응답한 기업 비율은 감소한 것이다.
게다가 2023년에는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2026년 이후로 연기하고 2년에서 3년간 책임 면제 기간을 설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응답한 기업이 56.0% 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2026년 이후로 의무화 기간을 연기해야 한다고 응답한 기업이 81%에 달했다. 이는 기업들이 ESG 공시 준비가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업들이 ESG 공시 준비가 어려운 이유는 종속기업이나 협력사가 지속가능성 정보에 필요한 데이터를 측정하고 취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이를 해결할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다.
지난해 5월 기준 우리나라 대기업은 82개고 소속 회사는 3076개로 집계됐다. 평균적으로 한 기업당 약 37.5개의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린 셈이다. 모기업이 37개나 되는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것은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요구된다.
또한 자회사의 많은 조직원이 ESG 공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데다 그렇게 반기지도 않아 더욱 어려움이 따른다. 이번 조사에서도 92.8%의 기업이 ESG 공시 보고 기업을 종속기업까지 포함하는 데 반대하거나 유예기간이 필요하고 응답했다는 것은, 이러한 어려움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보여진다.
ESG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안타깝게도 이 흐름이 당분간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이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상대적 열위에 처하게 될 수 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을 것임이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만 다그칠 수 없는 노릇이다. 기업들이 ESG 공시에 심한 부담을 느끼고 피로가 누적된다면 ESG에 대한 심한 반발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다.
현재 우리 기업은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상태다. 때문에 정부나 협회, 다양한 재단은 우리 기업이 ESG 공시를 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나 공시 의무가 없을 정도로 기업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사의 공시 의무 때문에 ESG 공시를 준비해야 하는 중견 또는 중소기업들은 이 상황이 더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ESG 공시를 연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내다봤다. 필자도 이러한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 어떤 일이든 너무 극단적으로 진행한다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법이다.
정부, 협회, 재단 등 중견 또는 중소기업을 도울 자원을 보유한 기관들이 ESG 공시 의무화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준다면, 의무화 시점을 연기하거나 공시기준을 지나치게 완화하지 않아도 성공적으로 ESG 공시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