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사진=MBC캡처]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첫번째 이야기 - 윤석열의 2차 계엄 시도.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건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3분이다. 계엄법 제11조는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은 “계엄 해제 요구 결의가 나오자마자 바로 장관과 계엄사령관을 즉시 제 방으로 불러 군 철수를 지시했다(1월 23일 윤석열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 “해제 요구 결의가 이루어진 이후에 즉시 모든 병력을 철수시켰다(2월 25일 윤석열 탄핵심판 최후진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즉시’는 거짓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을 지휘하던 윤석열은 합동참모본부로 향했다. 국회가 계엄령 해제를 의결했는데 윤석열은 계엄의 헤드쿼터로 역주행을 했다. 합참 지하 결심지원실에 도착한 건 그날 새벽 1시 16분이다. 결심지원실이라는 공간은 이번 계엄사태로 세상에 알려졌다. 결심지원실은 국군 수뇌부가 적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결정, 결단을 돕기 위한 곳이다.
김용현, 박안수 계엄사령관(육군 참모총장),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김철진 국방부 군사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김철진 군사보좌관은 4일 새벽 1시 20분에서 1시 50분 사이 윤석열과 김용현이 나눈 대화를 자필로 적어 검찰에 제출했다. 합참에 파견된 방첩사 요원이 박안수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텔레그람 단체대화방에 전파한 것을 합해 현장을 재구성했다.
윤석열은 김용현에게 “국회의원부터 잡으라고 했는데 국회에 몇 명이나 투입했느냐”라고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사색이 된 김용현이 “500명 정도”라고 답변하니, “거봐 부족하다니까. 1000명을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고 물었다. 윤석열이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의결했어도 새벽에 비상계엄을 재선포하면 된다”라고 소리지르는 것도 기록에 담겼다.
작전에 실패한 김용현은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박안수는 ”적막이 감돌았다. 대통령이 화가 나셨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어떤 지시도 없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윤석열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국회법 나와 있는 거 어디 없나, 법령집 있어?”라며 법령집을 찾았다. 박안수는 윤석열이 그 법령집을 비교적 오래 보았다고 했다. 윤석열이“셋(윤석열·김용현·박안수)만 있을 테니 나머지는 나가지”라고 하자 경호처 요원들이 다른 군 간부들을 내보냈다.
공수처는 방첩사와 합참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했다. 윤석열이 김용현에게 “핑계”, “그러게, 잡으라고 했잖아요”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윤석열의 “잡으라”는 말은 “국회의원 등 체포 지시”로, “다시 걸면 된다”라는 말은 “제2의 계엄 선포를 말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새벽 1시 31분 윤석열이 합참에 온 지 15분이 지났다. 인성환 안보실 2차장은 신원식 안보실장에게 전화해 윤석열이 결심지원실에 오래 머물고 있는 것이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다. 신원식도 계엄령이 해제되었는데 군사 시설에 간 것에 대해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진석 비서실장과 결심실로 왔다. 신원식은 정진석 비서실장과 1시 46분 합참에 도착했고, 윤석열은 1시 49분에 합참을 나갔다. 윤석열은 계엄군 철수 지시를 하지 않고 결심실을 떠났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김용현은 여기 저기 전화를 주고 받았다. 김철진 군사보좌관은 그중에 김용현이 버거보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응 상원아···.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냐?”며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김철진은 3개월여 동안 김용현을 수행하면서 노상원하고 통화하는 것을 몇 번 들었기에 금세 이 통화가 노상원과 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김용현은 새벽 2시경에 계엄군 철수를 윤석열에게 건의했고 윤석열이 승인했다고 했다. 이 또한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김용현은 2시 13분, 곽종근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병력 투입을 지시했다. 곽종근은 ‘“장관님, 이미 국회에서 병력이 빠져나왔는데 선관위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을 했다.
김용현은 분노한 윤석열에게 면피할 거리를 찾은 듯 하다. 국회는 중과부적으로 안되니 선관위에서 성과를 올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선관위에 나간 방첩사 대원들은 법무실의 위법 지적을 듣고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국회 계엄해제 요구안 가결 이후, 상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1시 30분경 중앙선관위 쪽에 나간 인원들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새벽 3시 20분경 김용현은 주요 지휘관 화상회의를 열고 병력 복귀와 상황 종료를 지시했다. “고생 많았다. 특히 현장에 투입한 수방사, 특전사 장병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통제권자 명에 의거하여 노력하였다. 중과부적으로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최선을 다했다. 모든 책임은 장관이 지겠다. 노고를 치하하고 명령에 따라준 것에 감사하다. 안전하게 병력 복귀하면 잘 격려해주길 바란다.”라고 했다. 새벽 4시 27분부터 2분간 진행된 한덕수 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계엄령 해제가 의결되었다.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2차 계엄 시도 가능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2024년 12월 10일)라는 제목의 수사보고서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석열이 김용현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을 2차계엄 가능성의 근거로 적시했다.
김용현은 4일 오전 11시 30분경 윤석열과 통화하는 와중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윤석열이 “상황이 어렵고 안 좋은데 수습을 해야지, 왜 사퇴할 생각을 하느냐”, “밥은 먹었냐. 와서 국수라도 먹고 가라”고 했다. 박종준 경호처장 등과 대통령 공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분위기가 무거웠던지 김용현 기억에는 현 상황이나 경호 관련 이야기 등 일상적인 대화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김용현은 ”대통령께서는 내게 개인적으로 수고 많았다고 말씀하셨다. (···) 예상컨대 내가 측은해 보였던 것 같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를 측은해 하는 것을 보면서 김용현은 비상계엄을 더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했다’라고 자책했다고 한다. 김용현은 “대통령님의 구국의 일념에 대해 존경해왔고 그런 뜻에 대해 공감했지만 중간에 참모로서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계엄에 대한 당위성,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통령님의 생각을 존중하고 있다...이것이야말로 행정과 사법 기능을 마비시키는 국회의 패악질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대한 경종은 반드시 필요했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결국 김용현은 사직을 했고 출국금지됐다. 사령관들은 소환되고 차례로 구속되었다. 윤석열도 출국금지되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석열의 탈당 제명 직무정지등을 차례로 주장했다.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다. 1차 표결은 정족수(국회 재적의 2/3) 부족으로 투표 불성립이 되었다. 12월 14일 2차 표결을 앞두고 윤석열은 도박을 했다. 12일 네 번째 담화문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YTN캡처]
두번째 이야기- 궤변과 거짓으로 가득한 담화문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는 자기합리화와 야당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찼다. 윤석열은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담화 말미에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선전포고였다. 직접 작성한 200자 원고지 62장 분량의 원고를 29분간 낭독했다.
그는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에 대응하는 법 논리를 전개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비상계엄은 통치행위여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헌법재판을 주로 겨냥한 것이다.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는 등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지 않았다며 국헌문란 목적이 없어서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정선거론과 중국스파이는 지지층 결집을 위한 것이다. 10%대 소수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는 메시지였는데 그 후 국론 분열을 심화시켰다. 근거가 박약한 극우유튜버들의 방송을 즐겨 시청하면서 축적해 온 것이다. 이중에서도 중국혐오는 국가 지도자가 부추켜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중국은 크게 반발했고 우리의 외교자산에 흠집이 났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통치행위여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는, 비상계엄과 같은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형사적으로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해왔다.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이 된다면 탄핵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윤석열의 ‘호수 위 달그림자’는 내란죄에 대한 방어논리이다. 국회 기능 마비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반복해서 얘기했다. 내란죄 핵심 구성요건인 ‘국헌문란 목적’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형법 91조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행위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 목적으로 보고 있다.
윤석열의 초현실 비상계엄 시리즈를 통해 확인했듯이 윤석열은 치밀하게 계엄을 모의해왔다.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군경 4000여명을 동원했다. 실탄도 준비했다. 다만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계엄군보다 빨리 행동해서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시킨 것이 몇 명이든 질서유지 차원이라는 그의 변명은 궤변에 불과하다.
윤석열은 중앙선관위 전산시스템이 엉터리이고 국정원이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중앙선관위는 윤석열의 담화를 곧바로 반박했다. 선관위 양해하에 진행된 모의 해킹실험은 해킹이 가능하도록 계정 등을 제공하고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제17화 참조)
우리나라 개표는 실제 투표지에 대한 공개 수작업 개표이다. 1차적으로 분류기가 분류를 하지만 결과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여야 선거참관인들이 모든 투표소 현장에서 이를 확인을 한다. 정보시스템과 기계장치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반복적으로 유튜버들이 이를 전자개표로 오도하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정작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윤석열 등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선거부정을 얘기하지 않는다.
윤석열은 중국인 유학생이 드론으로 군사시설을 촬영하는 간첩 행위를 했는데 법적 미비로 이를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포렌식 분석이 완료되지 않아 간첩 행위 여부를 확정짓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윤석열이 계엄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사례로 들었다. 국회에서는 외국인 간첩 행위에 대한 법 개정이 논의중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 쪽의 언급에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 한국 쪽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계엄 2주차 아직 여론은 싸늘했다. 그런데 보수유튜버들은 비교적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고 선동을 시작했다. 12월 11일부터 대통령실 서문 앞에는 탄핵 반대 응원 화환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윤석열은 트럼프의 부활을 참조한 듯하다. 2020년 트럼프와 거의 흡사하다. 2020년 11월 대선에서 패한 트럼프는 부정투표설을 주장했고, 12월 19일부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1월 6일 백악관 앞 ‘Save America’ 집회를 고지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다음 해 1월 6일 폭도들의 의회 난입이 있었다.
미국의 군대는 달랐다. 2020년 5월 25일 미국 시민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목이 눌려 사망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위진압을 위해 트럼프가 연방군대를 동원하려고 하자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은 “민간 시위대 진압을 위한 현역 병력의 투입은 최후의 수단이며, 내란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전군 지휘관에게 서신을 보내 연방군 투입 반대 의사를 밝혔다
12월 12일 윤석열의 담화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아직 보수가 결집이 안된 상황이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담화 발표 직후 윤 대통령 제명·출당을 위한 당 윤리위원회 소집을 지시했다. 한동훈은 그 담화가 “사실상 내란을 자백하는 취지”라며 “당론으로 탄핵을 찬성하자”고 했다. 한동훈의 이탈은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고, 당내 기반이 약한 그는 그 결과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