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가업승계 진단 ⑨] 이동우 민변 변호사 "대기업까지 세금 공제?...백년가게 보호 취지 퇴색 우려"
최정호 기자 입력 : 2024.10.30 15:42 ㅣ 수정 : 2024.10.30 17:18
가업승계 공제 제도 '시행령 개정' 움직임...정부 독주 우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매 정권 가업 상속 공제 제도 완화 소액주주가 자녀에 지분 물려주면 과세...오너 일가는 공제 공제범위 축소 통해 본래의 제도·취지로 돌아가는게 급선무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부모가 자식에게 부동산을 물려줄 경우 과세 대상이다. 소액주주가 갖고 있던 상장사 지분을 자식에게 물려줄 때도 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연매출 5000억원 미만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 줄 경우 일정 조건만 갖추면 세금 공제 대상이다. 조세의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업승계 세금 공제 제도는 지난 1997년 이른바 ‘백년 가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가게들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만들어졌다. 당시 상속 시 1억원을 공제해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공제 범위가 넓어지고 업종 변환까지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자칫 대기업 상속 때도 가업승계 공제 제도의 혜택을 받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29일 이동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하 민변)를 만났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민변 복지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가업승계에 따른 세금 공제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해 왔다.
제약사의 경우 신약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뚝심 있는 경영과 투자가 수반된다. 또 신약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 가업 승계에 따른 세금 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또 반도체는 개발 투자 안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요즘 시대 대규모 투자를 안하는 기업은 없으며, 제약사들의 논리대로 적용하자면 가업 승계 세금 공제를 모든 기업에 적용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경우 연구개발비로 28조3397억원을 집행했다. 이는 매출액 대비 10.9%에 해당한다. 국내 빅4 제약사(유한·종근당·한미·대웅)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액 대비 10% 수준인 1000억원을 상회하는 규모다. 이를 비교해 보면 이 변호사의 말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대주주와 경영인이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다. 오너 일가의 상속이 발생해도 기업 경영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경영에 있어 오너의 리더십이 강조된다. 이른바 오너 일가의 ‘뚝심 경영’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반한다는 게 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백년가게야 맛과 전통을 유지해 오랫동안 판매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져다주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비법과 노하우가 전수되는 게 맞다”라면서 “기업이라는 게 각각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인데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는 게 적절한 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5000억원 미만 기업의 가업 승계 세금 공제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상장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도 도입 당시 1억 원의 세금 공제 규모는 상속 받는 가업의 자산이 3억원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상속세를 납부하면 가업을 이을 수가 없어 정부가 이를 보호해 준 것이다. 하지만 상장사는 전혀 다른 범주다.
이 변호사는 “백년가게가 상장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보호받는 기업이 아니라는 얘기”라면서 “상장사는 모두에게 공개된 기업인데 소수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오너일가에게 상속세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액주주는 자식에게 주식을 물려줄 때 세금을 내는 반면 대주주(오너 일가)는 지분 상속을 면제해 주는 데 이는 특혜”라고 강조했다.
현 정부 들어서 가업 승계 공제 범위가 대폭 완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부자 감세 정책을 쓰는 보수 정부 입장에서 가업 승계 공제 완화는 통하는 부분이 있다. 보수 정부는 세금을 깎고 정부 역할을 축소해 민간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한다. 진보 정부는 국가가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세금을 깎아주는 경우가 드물다.
이 변호사는 "보수 정권은 친 대기업 기조를 지향하는 반면 진보 정권은 중소기업에 친화적인 게 통상적"이라며 "가업 승계 세금 공제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확대됐는데 이 같은 추세라면 대기업도 가시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업승계 세금 공제는 국민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다”면서 “20대 국회에서 공제 범위를 축소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법제화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업 승계 세금 공제 제도가 시행령을 통해 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은 법으로 큰 테두리를 정해놓고 세부적인 내용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법은 입법 절차를 밟아 제정되지만, 시행령은 정부가 기조에 맞게 바꾸는 게 용이하다.
이 변호사는 “상속 범위와 분류 기준 같은 게 시행령에 있으면 안되기 때문에 이를 법으로 끌어 올려야 된다”라면서 “상속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소관이고 증여는 ‘조세특례제한법’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법안 작업을 해야 하는데 법 기술적으로 할 게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 공제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 “지나치게 넓은 공제 범위”라고 지적했다.
가업승계 공제 제도가 생긴 1997년에는 명목 GDP가 500조 원 규모였지만, 현재는 2401조 원까지 늘었다. 27년만에 4.8배 상승한 것이다. 가업 승계 세금 공제 규모는 같은 기간 1억원에서 600억원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최근 12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으니 이것이 제도화되면 27년만에 1200배 상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