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현장에선] 200만원 받는 필리핀 베이비시터 100명 입국…'이민정책' 대변화 물꼬 틀까?
박진영 기자 입력 : 2024.08.08 00:57 ㅣ 수정 : 2024.08.08 09:36
6일,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한국 도착…4주 특화교육 후 서비스 실시 학부모들은 아이 돌봄‧영어 교육 기대하며 환영…6일 기준 경쟁률 6대1 필리핀 정부, 자국의 우수한 인력들 아이 돌봄 서비스에 특화 요청 한국 정부, 돌봄 서비스 범위에 ‘성인’도 포함시켜 업무 범위 확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저출산 돌파구로 '이민정책 활성화'를 주목해 전문가들, 양육 가정 일손 돕기‧출산 장려 취지 벗어날 가능성 경고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정부가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의 일손을 돕고,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 사업은 한국이 저출산 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이민 확대'를 돌파구로 삼자는 정책적 흐름 속에 추진된다는 점에서 경제사회적 관심이 크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성공할 경우 다른 분야로도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이민정책'의 대변화를 위한 물꼬를 틀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해 저출산 해결책으로 '이민정책 활성화'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아이 양육에 집중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고, 근본 취지가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지난 6일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E-9)가 한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이번 가사노동자 파견을 위해 만 24세~38세 자국민 중 영어가 유창하고, 필리핀 정부 인증 돌봄 자격증을 취득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한국으로 보냈다.
필리핀에서의 직무 교육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국내에서 4주간 한국 적응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160시간의 특화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 내용은 안전보건‧기초생활법률, 성희롱예방교육, 아이돌봄·가사관리 직무교육, 한국어·생활문화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이와 함께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안전보건교육(5시간), 가정 내 안전교육(24시간)을 추가로 이수해야 한다. 국내 교육 과정을 이수한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은 다음달 3일부터 서울시에서 돌봄‧가사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필리핀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붐을 이루고 있다. 집안일을 도우면서 아이도 돌볼 수 있어서 영어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6일까지 모바일앱(‘대리주부’ 또는 ‘돌봄플러스’)을 통해 서울시 돌봄·가사서비스를 신청한 가정은 651곳이다. 다음해 2월말까지 운영하는 시범 사업인데도 6대 1이 넘는 경쟁률을 자랑한다.
서울시는 돌봄‧가사서비스를 신청한 651개 가정 중 한부모, 다자녀, 맞벌이 여부 등을 고려해 최종 선정된 가정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방침이다.
■ 아동 돌봄 서비스 범위에 ‘동거가족’ 포함 여부 두고 한국과 필리핀 정부 엇갈린 입장
국내에 부족한 아동 돌봄 인력을 충원하고, 영어 친화적인 교육 환경을 만든다는 취지로 외국인 돌봄‧가사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일할 수 있는 범위 지정 등에 허점을 보이면서 제대로 된 서비스 운영을 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먼저,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를 꼽을 수 있다. 필리핀 정부는 영어 사용이 가능한 자국민들이 어린이를 돌보는 서비스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리핀 정부 관계자는 “한국에 파견된 인력은 가사도우미(helper)가 아닌 돌봄 제공자(care giver)”라며 “아이 옷 입히기, 아이 목욕하기와 같이 아이 관련 업무를 수행 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 정부는 아이 돌봄을 제외한 동거가족의 가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서비스를 통해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고,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시간을 단축시켜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기여하자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동거가족의 가사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이 아이 돌봄을 벗어난 다른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돌봄‧가사서비스 신청을 위해 시민들이 사용한 대리주부 앱에 접속하면 가사도우미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수행할 수 있는 기본 서비스는 환기, 세탁, 주방 관리(가스레인지 기름때 제거, 싱크대 물기 제거, 행주 소독), 욕실 관리(변기‧세면대‧바닥 물때 제거), 방‧거실‧현관 관리(침구정리, 가구 겉면 먼지 제거, 바닥 청소), 정리정돈‧쓰레기 배출 등이다.
고객들은 정기형 서비스를 이용하면 기본 서비스에 더해 주방 관리(후드 묵은 때 청소, 상부장‧하부장 정돈, 냉장고 정도), 욕실 관리(곰팡이 제거, 물 때 제거), 방‧거실‧현관‧베란다 관리(가구 아래‧위 먼지 제거, 침구‧커튼 세탁, 베란다‧창틀 닦기) 등을 추가로 제공한다.
아이 돌봄 서비스나 영어 말하기 서비스 등에 대한 명시가 되지 않아서 성인을 위한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의 본질이 변하게 될 경우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도를 벗어나게 된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외국인을 채용하는 방식이 국내에 일손이 부족한 업종에 단비 같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저출산 해결에 큰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하우스키핑 인력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열한시'의 관계자는 7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서비스 시행을 환영한다. 가사관리사 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 하우스키퍼 등 국내에서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분야에 외국인 근로자를 투입하는 것은 인력 수급 차원에서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국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채용하려면 월 200~230만 원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는 금전적인 문제인데, 이렇게 많은 금액을 부담하면 자녀를 더 출산하는데 경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공교육 정상화와 무상 교육 범위의 확대 등 다양한 육아 지원 정책을 펴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돌봄‧가사서비스 사용자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주중 하루 4시간씩 고용한 경우 월 119만 원, 8시간씩 고용한 경우 월 238만 원 수준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서울시는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9860원)과 4대 보험 등 최소한의 간접비용을 반영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