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보호냐, 자율성 침해냐...은행 ‘영업점 폐쇄’ 문제 재점화

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8.02 08:25 ㅣ 수정 : 2024.08.02 08:25

국회서 은행 영업점 폐쇄 기준 강화 법안 발의돼
6년 동안 10개 은행서만 영업점 800개 넘게 줄어
영업점 계속 줄어들면 취약계층 금융 접근성 약화
비대면 확대·영업점 수요 감소...은행은 비용 부담
일방적 강제성 부여 땐 경영 자율성 침해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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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영업점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국회에서 은행 영업점 폐쇄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과 관련해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보호하자는 취지지만, 은행 입장에선 갈수록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영업점을 무작정 유지하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비대면·디지털 금융 활성화에 맞춘 대응 방안 마련 필요성이 제기된다. 

 

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은행이 운영 중이던 영업점을 폐쇄하려고 할 경우 6개월 전까지 금융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걸 골자로 한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국책은행 등의 노동조합이 소속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이 법안은 은행이 금융위에 영업점 폐쇄 계획을 신고할 때 △외부 전문가 및 인근 주민 의견 청취를 포함한 사전영향평가 결과 △국내 영업점 신설 및 폐쇄 현황을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은행은 금융위의 신고 수리가 떨어지면 영업점 폐쇄일로부터 3개월 전까지 고객 등 이해관계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한다. 금융위가 신고 내용 검토 결과 고시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수리를 거부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 이 같은 법안을 내놓은 건 은행권 영업점 폐쇄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면서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부산·경남·대구·전북·광주 등 10개 은행의 국내 영업점 수는 2018년 3월 말 4686개에서 올 3월 3861개로 825개(17.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구로 영업 중인 5대 시중은행으로 범위를 좁히면 같은 기간 영업점 수가 3945개에서 3261개로 684개(17.3%) 감소했다. 

 

은행 영업점이 계속 줄어들면 노인 등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주된 문제의식이다. 은행권은 지난해 4월 금융위가 마련한 ‘은행 영업점 폐쇄 내실화’ 방안에 따라 지역민 의견 수렴과 경영공시 확대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사실상 가이드라인에 그친다. 이에 법제화를 통한 ‘강제성’ 부여로 은행 영업점 폐쇄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업점 폐쇄는 은행권의 해묵은 난제다. 예·적금과 대출 등 주요 금융 서비스를 인터넷·모바일뱅킹 등 디지털 채널에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업점 이용 수요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자료를 보면 올 2분기 중 예·적금의 69%가, 신용대출의 95%가 디지털 채널에서 취급됐다. 다른 시중은행 역시 올 2분기 신용대출 중 비대면 비중이 86%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본적으로 은행이 영업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임대료와 인건비, 관리비 등 각종 고정비가 투입된다. 해당 영업점의 내점 수요가 많고 실적도 양호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비용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100% 비대면 체제로 운영 중인 인터넷전문은행 업계의 직원 1인당 생산성이 시중은행보다 최대 2배 이상 높은 것 역시 이 같은 비용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과거 수도권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영업점이 있었는데 연간 억대의 임대료를 내가면서 유지했지만, 정작 쇼핑몰 직원들의 입·출금 정도의 수요가 있었고 결국 근처에 있는 대형 영업점과 통·폐합됐다”며 “최근에는 영업점 폐쇄보다는 리테일(소매금융)과 기업금융을 합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2개 이상의 은행이 한 영업점에서 영업하는 ‘공동점포’와 고기능자동화기기(STM)를 들여놓은 ‘편의점 특화점포’ 등으로 금융 접근성 제고 실험에 나섰는데, 최근에는 관련 실적이 부진하다. 특성화 점포 운영 과정에서의 기업 간 협의와 영업 경쟁, 가시적 성과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금융당국과 정치권 등에서 은행 영업점 폐쇄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경영 자율성 침해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은행이 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비용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과도한 간섭을 지속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은행 영업점 문제에 대해 취약계층 보호와 자율성 침해 문제가 동시에 제기돼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무작정 은행 영업점 폐쇄에 제동을 걸기 위한 움직임보다는 대응 방안 마련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규제 산업이고 진입 장벽이 있는 만큼 공적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공감한다”면서도 “영업점 유지에 대해서 비재무적 부분으로 혜택을 늘려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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