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인터뷰 ‘안녕하세요’(7)] 명품 구찌(Gucci)가 러브콜한 그림책 작가 김승연씨

김연수 전문기자 입력 : 2024.10.26 10:23 ㅣ 수정 : 2024.10.29 10:19

김승연 작가, 작년 아동 문학계 노벨상 ‘볼로냐 라가치상’ 선정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독, 쓸쓸함, 근심 어린 마음을 편안하게 표현
“뿌려두었던 씨앗들을 가지고 저만의 세계를 더 견고히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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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그림책 작가. [사진=김연수 전문기자]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보통 그림책 하면 어린이 독자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김승연 작가의 그림책은 어른을 감동시키는 마력 같은 것이 숨어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따뜻한 그림과 섬세한 이야기는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도 투명한 감성을 안겨준다. 김작가의 그림책은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는 작은 문처럼, 독자들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첫 그림책 <여우모자> 이후, <얀얀> <마음의 비율> <모자의 숲> 등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특히 2023년에는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고, 24년에는 볼로냐 라가치상 ‘어메이징 북쉘프’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인 구찌(Gucci) 키즈 2024 Pre-fall 컬렉션과 협업하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구찌 매장에서 출시된 그녀의 협업 제품들은 대부분 품절되었고, 그녀의 애완견을 소재로 한 굿즈 디자인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예술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김작가를 만나, 작품 속에 깃든 메세지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김승연 작가와 일문일답.

 

Q. 볼로냐의 라가치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선정된 소감은.

 

A: 매년 70여개 나라의 1000개이상 출판사와 5000명이 넘는 출판인과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참가하는 북페스티벌인데, 2023년 <모자의 숲>으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24년에는 볼로냐 라가치상에 출품된 책 중 100권을 선정하는 ‘어메이징 북쉘프’에 선정되었다. 오랜시간 혼자 그림책을 만들면서 ‘잘하고 있는걸까’라는 의구심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그래도 이 일을 계속 해나가도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기뻤다.

 

Q. 작품들이 모두 따뜻하고 편안한데, 영향을 준 배경이 있을까.

 

A: 색연필 같은 재료를 켜켜이 쌓아가며 완성되는 그림의 포근한 질감과 부드러운 색감 등 시각적인 부분에서 그리 느껴지는게 아닐까 싶다. 특히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영하셨던 ‘날개양품점’이란 옷가게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제가 그리는 그림의 전체적인 정서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따뜻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던가, 그 시절의 분위기 등등.

 

반면 그림 안에 내포된 콘테스트는 관계의 단절로 인한 고독과 쓸쓸함을 표현하거나 난관에 봉착한 주인공들의 근심 어린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결을 따라가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봐주는 것이 신기하고 고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시각적으로 부담 없고 편한 그림 스타일은 제가 전하고자 하는 내면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 셈이기도 하다.

 

Q. 작품마다 핵심 메시지가 있다면.

 

A: 그림책 <마음의 비율>의 홍보 문구로도 썼던 문장인데, “어떤 끝은 시작일지도 몰라”라는 말을 마음속에 두고 살고 있다. 작업할때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 문장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책으로 그 범위를 좁힌다면 대체적으로 관계에 관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책을 만드는 시기에 분명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생각의 여지를 주고 싶은 마음에 핵심 메시지라는 것을 콕 집어 말하고 싶진 않다. 대체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란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

 

저 스스로도 제 책을 대할 때 작가로서의 입장과 독자로서의 입장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냥 재밌게 봐주세요’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Q. 최근 명품 브랜드 구찌 키즈와의 협업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나.

 

A: 처음 제안은 이탈리아 구찌 본사에서 메일이 왔었다. 메일함에 gucci.com으로 메일이 왔는데 처음엔 스팸 메일인 줄 았았다. 한국에는 구찌 키즈 컬렉션이 입점되지 않아 많이 아쉽지만 몇 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 구찌 매장에서 출시되어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제 그림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정말 신기하고 설렜다.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한정 제품이다보니 출시되고 대부분 품절되었다고 들었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구매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무래도 강아지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거 같다. 중국이나 홍콩 등에 기사가 나서 지인분들이 보내주기도 했다.

 

Q. 작품에 등장하는 애완견 ‘핑구’와의 인연은.

 

A: 인간과 강아지의 생명의 주기가 너무 달라 11살이 넘은 핑구의 하루하루가 저에게 더없이 소중한 요즘이다. 몇 년 전부터 그 사실이 너무나 크게 다가와 핑구가 있는 동안에는 핑구 생각만 하고, 핑구만 그리고, 핑구하고만 있고 싶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다. 항상 그렇게는 못하지만 당분간 제 작업들의 주된 이야기는 김핑구(강아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 올해 준비하던 작업 중 일부는 강아지가 주인공이 아닌 이야기였는데 이런 생각이 자리 잡은 뒤로는 다 뒷전이 되어 버렸다. 제 무릎에서 자고 있는 핑구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그릴 때 자주 행복을 느낀다.

 

Q.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와 성공적인 콜라보도 이루고, 권위 있는 수상도 하고 이 정도면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 궤도에 오른 것 아닌가. 

 

A: 처음에 그림을 시작할 때는 예술에는 잘한다는 객관적인 기준도 없고 정답도 없어 그게 참 좋았던것 같다. 하지만 이젠 그런 점이 어렵기만 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성공이란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사회적 기준이나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성공이라고 하는 것들이 정작 작가 자신에게는 성공이 아닌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첫 그림책 <여우모자>를 만들었을때 제가 바라던 꿈은 이루었기 때문에 단순히 지금 현재 생각하는 성공이란, 그냥 제가 하는 작업에 부끄럽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고 나이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직은 더 하고 싶은 작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것들보다 더 자랑스럽기도 하다.

 

Q. 그림책을 만들 때, 글과 그림의 조화를 어떻게 조절하나.

 

A: 독립출판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일반 출판사처럼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복합적, 감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책이라는 매체에 얽매이거나 글과 그림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보다 이 모든걸 하나의 결과물로 보고 서로 어우러진 최종 꼴을 내가 만들려고 했던 모습에 가깝도록 매만져간다. 그 과정을 통해 글 양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아예 글을 없앨 수도 있다. 책으로 만들려 했던 이야기지만 전시를 통해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될 수 있다 판단하면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로 변경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시스템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만들기 때문에 기존 기성 출판사들과 경쟁하는 대신 전형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그들이 만들지 않는 책으로 작은 틈을 메꾸어 가고 있다.

 

Q. 다양한 활동과 경력으로 특정 예술가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정체성이 읽히는데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A: 한때는 그림책 작가라는 주된 정체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작업을 하면 할수록 매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요즘에 저를 알게 된 분들은 저를 강아지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알고 있기도 하니까(하하). 어떻게 불리는가에 대해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단어로 정의를 내리면 또 그에 걸맞은 무언가가 되려고 할 터이니 지금은 별로 정의 내리고 싶지 않다. 아직까진 경계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작업하고 싶다. 그냥 작업을 오랫동안 많이 하고 싶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흐른뒤 퍼즐 조각이 다 맞춰졌을때 그 그림이 어떤 모양일지, 사람들이 저를 뭐라 부를지 궁금하기도 하다.

 

Q. 창작에 있어서 지키려는 어떤 원칙이 있나. 

 

A: 작업에 대한 몰입과 일상과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여기서 몰입은 단지 작업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하는 삶이 중심이 되도록 다른 것들은 심플하고 단순하게 돌아가도록 만들고 할 수 없는 것들은 무리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반면에 작업은 늘 새롭고 싶고 그래서 고민하게 만들며 제 모든 에너지를 기울이게 한다. 그래서 가장 양질의 좋은 에너지들은 작업할때 쓰고 일상에서는 회복하고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도 또 없으니 작업을 구상하는 기간에는 사람도 만나고 영화도 보곤 한다. 하지만 작업에 집중해야하는 기간에는 외부의 영향을 안 받으려고 되도록 영화나 전시들도 보지 않으려 한다. 그림책을 만든 이후로 그림책을 잘 보지 않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이다. 주변에 관심도 많고 영향도 잘 받기 때문에 작업모드에 들어가서는 어느 정도는 외부와 단절을 해야 몰입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이 모드가 깨지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작업실에는 인터넷도 설치하지 않고 컴퓨터도 가져다 두지 않았다. 집에서 현실적인 업무를 대부분 처리하고 작업실에서는 정말 그림만 그리려고 노력한다. 어렵지만 또 그만큼 보람되기도 하다.

 

Q. 어려움이나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면.

 

A: 좌절은 언제나 겪지만 그것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벗어나려 노력한다. 작업하다 좌절하고 슬프고 이겨내고 또 작업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쌓여가며 작가로서 저만의 색이 뚜렷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날은 그림이 마음대로 안그려져서 좌절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물리적 환경 때문에, 다른 이와의 비교 혹은 스스로 만든 부정적인 생각만으로도 쉽게 좌절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상태를 길게 가져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가이니까 이러한 부분들을 작업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한다. 잘돼도 안돼도 그냥 해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Q. 작품 외의 시간에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A; 핑구랑 놀거나 남편과 수다를 떤다. 둘 다 말이 많아서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한두 시간은 거뜬히 수다가 가능하다. 또는 자거나 누워 있거나 동물이 나오는 영상이나 이미지를 본다. 작업할 때 에너지를 많이 써서 평소에는 무의미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활동(멍 때리기?) 같은 것을 많이 한다. 커피나 술도 좋아해 술을 혼자 마시거나 반주로 마신다(하하). 

 

요즘은 작업실 출퇴근 길에 자전거로 홍제천을 따라 라이딩하며 오리 가족들을 바라보곤 한다. 활동적인 것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거나 생각한 것을 두서없이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작업 도구를 사거나 구경하러 화방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실은 작업실에서 작업할 때가 맘도 제일 편하고 보람차고 좋다.

 

Q. 새 도전이나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단기 계획으로는 향후 몇 년간은 물리적 작업량을 무조건 늘려 장편 작업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나름 꽤 오래 그림을 그렸지만 그동안 그림을 그린 것들이 모두 다음 작업을 위한 연습 같기도 하다. 이런 마음은 언제부턴가 계속되어 왔던 것 같다. 그동안 뿌려두었던 씨앗들을 가지고 저만의 세계를 차곡차곡 더 견고히 만들어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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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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