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전문기자 입력 : 2024.10.05 08:49 ㅣ 수정 : 2024.10.11 16:44
가난한 농민들이 단백질 보충하는데 사용한 보양 음식 피로회복‧혈액순환 개선‧체력 증진 등 질병 예방에 도움 남원‧서울 등 지역별로 다른 조리법에 식도락 여행도 일품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미꾸라지를 재료로 해 푹 끓여낸 추어탕의 제철은 언제일까. 흔히들 여름철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더위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느껴지는 지금이 제철이다. 추어를 뜻하는 미꾸라지가 겨울을 대비해 영양분을 축적하는 바람에 추어탕에 가을 추(秋)를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추어탕은 원래 가난한 농민들이 값싸고 영양가 있는 미꾸라지를 이용해 보양식으로 만든 것에서 유래됐다. 조선 후기에는 추어탕이 농민들 사이에서 피로 회복과 체력 증진을 돕는 음식으로 널리 사랑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사철, 특히 가을 수확 시기에 먹으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음식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추어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렇듯 추어탕은 원래 시골의 주막 등지에서 시작되었는데,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이 음식을 그리워하며 점차 확산되게 되었다고 한다.
추어탕이 보양식으로 자리를 잡은 배경에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고경명 장군이 미꾸라지로 만들어진 국을 먹고 힘을 회복해 전쟁터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보양식으로써의 명성을 더욱 얻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추어탕은 병치레 뒤나 수술 전후 기력이 떨어진 분들에게 많이 추천되는 음식이다. 무엇보다 소화가 잘돼 위장질환 환자나 노인에게도 권장되며, 이유없이 설사가 잦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동의보감에서도 ‘미꾸라지(추어)가 속을 보하고(補中) 설사를 멎게 한다(止泄)고 나와 있다. 일본인들도 추어의 효능은 익히 알고 있었는 듯, 미꾸라지를‘수중인삼’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양적으로도 추어탕은 피로 회복과 체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특히 미꾸라지의 높은 단백질 함량은 근육 회복에도 좋다. 단백질 중에서도 질 좋은 라이신, 루신 등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추어탕은 비타민 A와 다양한 미네랄 성분들이 풍부해 면역 체계를 강화하며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 혈액 순환 개선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오메가-3 지방산과 철분이 들어있어 혈액 순환을 돕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기여하며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 칼슘과 비타민 D가 풍부해 뼈 건강을 촉진하고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추어탕은 성질이 차가운 음식이라서 체질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평소 몸이 차갑고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이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오히려 소화에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 생강, 마늘 등을 듬뿍 넣어 찬 기운을 상쇄할 필요가 있다.
반면 몸에 열이 많은 사람들은 추어탕의 차가운 성질이 체내 열을 식혀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이런 경우 여름철에 먹으면 체력 회복에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체질이든 추어탕은 고단백 음식이므로 자칫 소화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과도하게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또 드물지만 생선이나 어류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주의해 먹을 필요가 있겠다.
항간에는 추어탕이 성기능을 강화한다고 소문났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미꾸라지에 풍부한 뮤신이란 성분은 단백질 소화흡수를 높게 하고 위점막을 보호해준다. 미꾸라지는 갈아서 뼈째 먹는 경우가 많아 칼슘을 다량 섭취할 수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추어탕은 다른 보양식에 비해 열량이 그리 높지 않다. 추어탕 1인분 기준 300g에 194칼로리 정도이다. 특히 미꾸라지의 지방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단, 추어탕 국물에는 나트륨 함량이 많으므로 고혈압 환자는 국물을 적게 먹는 게 좋겠다.
■ 조리 방식에 따라 남원식‧서울식‧원주식‧경북식으로 구분
한편 추어탕을 전라도 음식으로 알고 있기 쉬운데 조리법에 따라 남원식‧서울식‧원주식‧경북식으로 나뉜다.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구수하고 걸쭉한 추어탕이 남원식으로 된장으로 양념하고, 우거지에 파, 들깨, 부추와 초피가루를 곁들인다.
서울에서는 원래 추어탕이라 하지 않고 '추탕'이라 불렀다. 추탕은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는 점이 추어탕과 큰 차이점이다. 미꾸라지를 갈지 않아 국물이 맑고 덜 텁텁하며 쇠고기로 국물을 내고 미꾸라지를 더한 다음 고추장과 고춧가루로 양념해 육개장처럼 얼큰하다. 두부와 버섯도 추가한다. 하지만 근래는 서울에서도 남원식 추어탕에 밀려 추탕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원주식 추어탕은 옛날 여름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끓여 먹던 어죽과 맛이 비슷하다. 고추장으로 간하고, 수제비를 떠 넣기도 하며 감자와 깻잎, 버섯, 미나리를 넣는다. 경북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뿐 아니라 다른 민물 생선도 고루 이용하며 된장으로 간 한다. 생선을 삶아 으깬다는 점은 남원과 같지만, 우거지 대신 시래기를 쓰고 들깨를 넣지 않아 투박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특징이다.
◀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