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본 청년취업대란(21)] 대기업 취업문 좁아진 시대, 장기 구직자 문화 ‘청년 스라밸’ 만들다

박진영 기자 입력 : 2024.09.14 06:13 ㅣ 수정 : 2024.09.14 06:13

청년 스라밸 문화 확산…‘높은 대학 진학률+대기업‧공무원‧공기업 채용문 감소’ 영향
올해 2월 대졸자 60%는 아직 구직중…82%는 원하는 곳 합격할 때까지 준비 원해
청년 스라밸러들 무료 여가생활공간 이용하며 스라밸 실천…새로운 또래 문화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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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며 졸업생 간 취업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기업, 국가 기관 등이 신입 채용 문을 좁히면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청년 구직자가 증가했다. 이들은 장기간 취업 공부를 하며 여가도 함께 즐기는 '청년 스라밸' 문화를 만들고 있다. [사진=미드저니 / Made by A.I]

 

[뉴스투데이=박진영 기자]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우수한 지원자 간의 취업 경쟁이 치열해졌고,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원하는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자연스레 공부와 충분한 휴식의 균형을 맞추며 ‘취업 장기전’을 준비하는 구직자가 늘어났다.

 

청년 취준생들의 이 같은 취업문화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던 ‘스라밸’이라는 용어가 청년세대에도 전염하게 만들었다.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은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영향으로 생겨난 신조어로 공부(study)와 삶(life)의 균형(balance)을 뜻하는 말이다. 유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다.

 

청년 스라밸러(스라밸을 실천하는 사람)가 취준생들 사이에 유행이 된 것은 높은 대학 진학률이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고, 그만큼 기대치가 큰 졸업생들이 대기업‧공기업 등에 취업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기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 진학률은 80%대를 향해 치솟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청소년의 대학교 진학률은 역대 최대인 76.2%를 기록했다. 대학 진학률은 지난 2017년 68.9%까지 증가하다가 2020년 71%로 역사상 첫 70%대를 넘었다. 이후 매년 성장세를 보이며 75%의 벽을 넘어섰다. 

 

매년 대학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대학 졸업자 간 취업 경쟁은 더 과열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 채용이 예전보다 어려워지며 몇 년이 걸리더라도 원하는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청년층이 증가했고, ‘취업 공부’와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는 청년 스라밸러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잡코리아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대학 졸업자들 중 아직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구직자는 60.2%를 차지했다. 이들 대부분은 장기간 공부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할 계획이다. ‘올해가 지나더라도 원하는 곳에 합격할 때까지 취업활동을 계속할 것이다’고 답한 구직자들은 전체의 41.1%를 차지했다. ‘올 해까지는 원하는 곳에 합격할 때까지 계속 구직활동을 하겠다’고 답한 이들이 41.1%로 집계됐고, ‘눈높이를 낮춰 당장 어디든 합격하면 입사하겠다’고 밝힌 이들은 17.7%에 그쳤다. 

 

스라밸을 삶의 모토로 장기전을 펼치는 취업준비생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취업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 구직활동 중인 취업준비생들 중에 37.7%가 ‘최종 합격한 회사가 있음에도 입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취업에 성공한 이들 중에서도 57.5%가 ‘최종 합격한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입사를 포기하는 주된 이유는 ‘처우 불만족’(51.5%)과 ‘다른 기업 지원’(20.8%)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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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청년 스라밸러들은 '취업 준비'와 '여가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 지자체나 기업의 재단 등이 운영하는 청년 공간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들이 머무르는 곳은 공부할 공간과 여가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지원청 1층에 마련된 서울시 청년 일자리 카페 모습. [사진=박진영 기자]

 

■ 취업 장기전 준비하며 무료 공간에서 취업준비와 취미생활‧스트레스 해소하는 ‘청년층 스라밸러’가 유행

 

청년 스라밸러의 삶은 고되다. 몇 년이든 공부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취업 준비 비용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장기 취준생들은 주로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홈트(집에서 하는 운동)를 하는 등 비용이 들지 않는 여가 생활을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다. 뮤지컬 관람, 여행 등 값비싼 여가 생활보다는 빠듯한 지갑 사정을 고려한 소소한 취미 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면서 자신과의 장기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청년 스라밸러가 지역 사회도 바꾸고 있다. 스라밸을 즐기는 청년 취준생이 늘어나면서 각 지자체들은 이들의 문화‧여가 생활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청년문화패스를 통해 매년 20만원 한도로 연극, 오페라, 전시 등 문화 예술 공연 관람의 기회를 가진다. 청년 지원을 활용하면서 스라밸을 영위하는 알짜배기 청년들의 삶이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생들의 표준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재단을 통해 무료로 청년 세대를 위한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곳도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다. 청년 스라밸러들은 취업준비를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각 재단을 찾아 요가, 마음치유활동, 상담 등에 참여하며 스라밸을 영위할 수 있다.

 

또, 카페에서 노트북을 보며 공부를 하고, 소설을 읽고, 드라마도 관람하는 카공족을 돕고자 청년 취업 카페 등을 무료로 개방하는 곳도 많다. 스라밸러들은 이곳에서 취업 준비와 여가 생활을 병행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 9일 서울일자리 포털에 공시된 서울 지역 청년 일자리 카페수만 하더라도 31개에 달한다.

 

'스라밸'은 장기 구직시대 청년들의 초상화와 같은 문화현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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