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4)] 박신저 대표, “배우 김태리, 김민정 씨 모자도 제 손으로 만들었죠”
김연수 전문기자 입력 : 2024.07.13 06:00 ㅣ 수정 : 2024.10.11 16:58
모자 디자이너 박신저 대표: 화제의 TV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 모자들을 제작한 주인공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흔히 예술가의 작품은 단순히 재료들의 조합이 아니라, 사유와 감정이 어우러진 결정체로 표출되게 마련이다. 작가의 내면세계와 융합되어 자신이 존재하는 증거로 작품을 세상 밖으로 표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술가의 작품 속에는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감지되며, 때로는 일종의 환상까지도 엿볼 수 있다.
모자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며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열정으로 성공을 이끌고 있는 모자 디자이너, ‘신저(SHINJEO)’의 박신저 대표. 그녀의 이름이나 브랜드명은 얼핏 낯설 수 있어도, 화제의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출연했던 주연급 여배우들이 착용한 개성 있는 모자들은 익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 모자는 하나같이 그녀가 직접 디자인해서 손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모자 디자이너 박신저씨를 만나 모자에 깃든 그녀의 철학과 삶을 들어 보았다.
다음은 박신저 대표와 일문일답.
Q . 제작한 모자들이 하나같이 독특하고 멋있는데, 기본적인 디자인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A : “작품성이 필요한 모자들은 콘셉트와 조형미에 집중하지만, 일반적인 모자는 편안해야 한다가 원칙이다. 머리는 신체 어느 부위보다 불편함에 민감해서 조금만 무겁거나 조이면 어깨가 아프거나 두통이 유발돼 모자를 디자인할 때 디자인 보다 가볍고 편안한 소재를 우선시하고, 착용감을 위해 소재의 성질과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중요히 여기는 것이 디테일이다. 모자에서는 1~2mm의 차이, 내려오는 각도의 작은 차이도 모자 디자인에서는 큰 차이라서 수없이 샘플링을 통해서 황금비율과 각도를 찾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Q . 지금까지 총 몇 벌의 모자를 만들었으며, 이중 가장 애착이 가는 모자가 있다면?
A : “신저를 운영한 이래 총 1000개가 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애착 가는 모자는 신지 브랜드의 베스트 상품으로 일종의 햇빛 가리개 모자인 ‘모던 선버이저’ 시리즈이다. 어느날 출근길마다 지나는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 등원 버스를 태워주려고 기다리는 젊은 엄마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하나같이 동일한 디자인의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왜 다들 같은 모자를 쓰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고, 그 이유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아닌가 싶어 만든 것이 모던 선바이저이다. 흔히 선바이저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만들고 싶어서, 15개가 넘는 다양한 디자인의 샘플들을 만들었고, 수없는 수정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어떻게 하면 착용했을 때 편안할까, 두상 모양이나 크기의 다양성을 수용해서 누구나 쓸 수 있고, 캐주얼만이 아닌 드레스와도 어울릴 만큼 우아하고 세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실제 구입한 많은 분들이 그런 리뷰들을 남기고 있어 가장 보람을 주는 모자이기도 하다.”
Q . 모자 비즈니스를 하게 된 계기는?
A : “오랫동안 모자를 좋아하는 마니아이자 모자 컬렉터기도 했다. 저의 20~30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나의 모자 쓴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자 사업은 어쩌면 운명처럼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 일을 정리하고 2년여 주부로만 몰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뭔지 모를 공허감이 컸다. 다시 일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날 지인과 식사를 하다가 ‘평소 모자 엄청 좋아 하시잖아요?’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순간 큰 영감을 얻고는 곧바로 혼자서 일본 교토로 여행을 떠났다.
교토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접한 오래된 모자 가게에 들렀는데. 거기서 운명적인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가게 사장님인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유명한 모자 디자이너였다. 그분에게 마치 뭐에 끌린 듯 모자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저는 일본어를 못했고, 그 노신사인 사장님은 영어를 못하는 대신에 프랑스어를 잘 구사했다. 알고 보니 파리에서 모자 디자인 학위를 마친 분으로, 신기하게도 말은 안 통해도 서로의 눈빛으로 충분히 소통이 되었다.
마침내 그 분이 서재에서 세계적인 모자 디자인 스쿨 목록이 있는 책자를 꺼내 제게 그것들을 일일이 복사해 주었다. 복사비를 지불하려고 하니까 거절하면서 그 분 말이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쓰는 모자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분 덕분에 곧바로 짐을 챙겨 뉴욕으로 떠났고 2년여 모자 디자인 공부를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신지 브랜드를 만들었다.”
Q . 지금도 항상 모자를 착용하나?
A : “뉴욕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다. 밤을 새워가며 디자인이나 재봉을 할 때도 저는 항상 제가 직접 만든 영화에나 나올법한 멋진 모자들을 쓰고 작업을 했다. 그런데 정작 제게 실습 지도를 해준 은사님은 모자 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뜻밖에도 대답은 ”too much". 사실 그때는 그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저도 그분처럼 모자를 잘 안 쓰면서 그 말뜻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모자를 좋아해 모자 사업을 하지만 아침에 눈 뜨면서 잠들 때까지 모자만 생각하다 보니 모자를 쓰는 게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하하). 항상 모자를 쓰냐는 질문에 답은 ‘NO’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지만 ‘모자가 여전히 행복하게 만들어 주냐’라고 묻는다면 역시 ‘YES’라고 말할 수 있다.”
Q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여주인공이 착용한 모든 모자들을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한데, 드라마 속성상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A : “미스터 선샤인에 여주인공인 김태리, 김민정씨가 쓴 모자들은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총 28개이다. 특히 극 중의 고애신(김태리분)이 쓴 모자 중에 유진 초이와 (이병헌) 부부로 위장하고 일본 갈 때 쓴 파란 코트 위에 쓴 진분홍색 모자와, 사랑의 감정으로 오르골 가게 앞에서 유진 초이와 함께 할 때 쓴 사랑스러운 모자는 특히 더 신경 써서 만들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사전제작으로 시작해 나중엔 생방송과도 같이 진행되었던 1년간의 프로젝트였다. 쪽 대본으로 극의 대략적인 전후만 인지하고 디자인한 적도 있고, 작업하며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어느 날은 밤에 집에서 미스터 션샤인 본방송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제작 가능하냐고 해 절대 못한다고 끊어 놓고는, 나도 모르게 밤새우며 모자를 만든 적도 있었다.
그 해는 첫 개인전도 있었는데, 드라마가 생방송처럼 시간에 쫓기다 보니 갤러리 한쪽 귀퉁이에서 당일 드라마에 나갈 모자를 바느질을 하며 모자를 만든 적도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모자는 갤러리에 찾아온 방송팀의 차에 실려서 바로 남원 촬영지로 내려가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작업을 일과 병행하면서 1년을 했을까 싶기도 하다.”
Q . 일반인은 모자를 사용할 때 실용적인 면에 더 치중하는 것 같다. 개중엔 모자가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도 많은데, 모자 고를 때 개인차가 있겠지만 팁을 준다면?
A : “수없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씌워 보면서 알게 된 건 얼굴만큼이나 굉장히 다양한 두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얼굴과 두상의 조화가 모자의 어울림에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흔히 얼굴이 둥글거나, 광대가 나오거나, 긴 얼굴형이 모자가 안 어울린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고, 얼굴이 예쁘고 두상이 작아도 안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모양의 모자라고 해도 챙 길이에 약간의 차이나 각도만으로도 어울림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모자를 고르는 추천 방법은 다양한 모자를 많이 써 보는 것이다. 모자를 사려고 할 때 선입견으로 ‘난 이런 모자는 안 어울려’하고 기피하지 말고, 많은 모자를 써 보라고.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인생 모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자 쓴 사람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만 있다면 어떤 모자든 어색하지 않고 멋지게 어울릴 것이다.”
Q . 끊임없이 연구가 필요할 텐데. 어디서 가장 큰 영감을 얻나?
A :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예술품이나 건축물처럼 형태가 있는 것보다는 스토리나 사람들의 감정 등 무형의 것들을 형태가 있는 걸로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편견이나 소문에 의존한 선입견 등에서 영감을 받아 한쪽 눈의 1/4은 가려서 전체를 볼 수 없는 비대칭 모자를 시도해 본 다음 더 나아가서 일상의 모자 디자인으로 완성하기도 한다.”
Q . 모자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꿈이 있다면?
A : “돌이켜 보면 고급 모자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초석을 다져왔을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잘 팔리는 모자가 아니라 오래전 일본 교토에서 우연히 만나 도움을 주셨던 그분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쓰는 모자를 만들면서, 그 모두에게 자신에게 꼭 맞는 ‘인생 모자’를 찾는데 도움을 줄 친구 같은 모자 브랜드로 안착시키고 싶다.”
◀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