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기획 : 직장인 정신 건강 현주소 ①] 누구나 ‘번아웃·우울증’ 경험할 수 있어…직장문화 개선 시급

최정호 기자 입력 : 2024.06.19 07:34 ㅣ 수정 : 2024.06.20 16:55

정신 건강 이상 각계각층에서 발생하지만, 직장인은 예외였던 사회적 분위기
단순 스트레스 증세라고 여기고 치료 받지 않으면 정신 건강 장애 악화돼
전조증상만 알아도 예후 좋아...아침에 도망치고 싶다면 정신 건강 이상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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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 가운데 특히 4차산업 종사자들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3차 산업이 중심이던 과거 1980~1990년대까지는 정신 건강 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을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정신보다는 육체 중심의 노동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중증 이상 환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 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가 사회 문제로 인식 자체가 전환되고 있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기업 등의 사례를 총 15회에 걸쳐 보도하며 우리 사회와 직장에 작은 걸음이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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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freepik]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는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신 건강 이상 증세가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인지하고도 동료들에게 알려지게 될 경우 인사 상 불이익과 직장 내에서 따돌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해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또 정신 건강 이상 증세를 단순히 스트레스가 원인이된 일시적 현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직장인이 앓고 있는 번아웃증후군과 우울장애 등과 같은 질병들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같은 질병들을 초기에 발견해 치료한다면 예후가 좋은 편이나, 환자 대부분 정신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정신건강의학과)을 찾는다는 것이다. 

 

19일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 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뉴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직장인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 생각이 먼저 나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사고가 강하게 든다면 정신 건강 이상의 전조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역설적인 것은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 우울증 유발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말 인하대병원 작업환경의학과 이동욱 교수팀이 발표한 ‘통근시간과 우울증상 사이 연관성에 대한 논문’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60분 이상 소요되는 사람이 30분 미만인 사람보다 우울장애 가능성이 1.16배 더 높게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직장이 있는 도심은 집 값이 높기 때문에 외곽 또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다. 통상 출퇴근 시간이 60분 이상이기 때문에 우울증에 노출 빈도가 많은 것이며 정신 건강 장애가 있을 경우 악화될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다. 

 

◼︎ ‘번아웃증후군’ ‘우울장애’ 직장인을 노린다…치료할 수 있는 직장 내 환경 조성 안돼 있어

 

직무를 수행하는데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번아웃증후군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질병분류기준’에 번아웃증후군이 등재돼 있다. 그만큼 현대 직장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한 질병이란 얘기다. 

 

과거에는 번아웃증후군이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변호사 등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 감정 소모를 느끼는 직업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이후부터는 많은 직장인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번아웃증후군이 자살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조업과 금융업, 서비스업, 유통업, 건설업, 공공행정 등 다양한 직역 근로자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자가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 중 번아웃증후군 증상인 신체적‧정신적 탈진이 일어날 경우 자살 사고의 위험률을 36%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울장애가 없는 직장인에게도 자살 사고 위험률을 77% 증가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탈진 상태의 직장인 중에서도 자기 직무를 조절할 수 없거나 직장 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 자살 사고의 위험률이 더욱 높다”고 분석했다.

 

우울장애는 직장인들에게 보편화된 질병으로 침울한 기분이나 의욕 저하가 지속되는 정신 이상의 상태를 말한다. 감정과 생각, 신체 상태,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환이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 2017년 말 직장인 남녀 6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8%의 응답자가 직장 문제로 우울장애를 앓았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즉 10명 중 7명이 업무 중 우울감에 시달렸다는 설명이다. 

 

번아웃증후군과 우울장애가 직장인들의 심각한 정신 건강 장애로 지목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이 많다. 아직 직장 내 정신 건강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덕인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장애 때문에 병원에 간다고 하면 보내주지 않는 풍토가 직장 내 조성돼 있다”면서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치료를 꺼리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울장애 치료를 위해 시간을 내려고 하면 개인 월차 휴가를 이용하라는 식이라 병원을 가는 빈도가 줄어들 게 돼 의료기관을 찾지 않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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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freepik]

 

◼︎ 단 한 명의 ‘극단적 선택’ 파장 심각…문제 해결 핵심 ‘기업 문화 바꾸기’

 

직장인의 정신 건강 장애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나면 집안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만일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가장(家長)일 경우 파장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직장인의 극단적 선택은  조직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상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가족과 지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받게 되는 충격에 비해 직장 동료가 자살했을 때 발생하는 파장은 그동안 간과돼 왔다”면서 “단순히 노동력이 사라지는 개념이 아니라 자살한 직장인의 네트워크 내에서 굉장한 충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격려와 조치를 못해줬다는 죄책감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의 자책감은 가족과 지인보다도 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연유로 직장인의 극단적 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직장인 정신 건강을 예방 또는 증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온라인상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장인에 한해 사업주가 조치할 수 있는 것들이 산업안전보건법과 동법 시행령에 명시 돼 있다. 이 법에 사업주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일시적 업무 중단과 휴게시간 연장 △건강 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등에 필요한 지원 등이 전부다. 이 법도 지난 2018년에서야 시행됐을 정도다. 현 상황에서는 제도적 뒷받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직장인 정신 건강 관리는 기업의 몫인 셈이다. 전문가들의 기업 문화의 채질 개선이 이루어져야 만이 직장인들의 정신 건강 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덕인 교수는 “과도한 업무와 초과근무 조장, 압박감에 의한 실수에 대해 처벌하는 근무 환경 등이 직장인들의 우울증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면서 “직장에서 정신 건강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에 대해 배려해주고 업무 환경을 바꿔 번아웃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들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전상원 소장은 “근무환경과 대인관계, 업무처리 과정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개선이 수반되는데 아주 쉬운 과정은 아니다”면서 “직장인들의 자살률을 확연히 낮추기 위해서는 정신 건강이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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