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다, 직격 인터뷰④] 전직 PA간호사 “의사 없다고 정부가 PA간호사 빌미로 특정 단체 회유한다”
PA간호사는 불법이지만, 전공의 없어 암암리에 운영되는 직군
불법이지만 무감각할 수밖에 없는 국내 의료시스템
PA간호사 직군 없어질 경우 유휴 간호사 엄청 늘어날 것
“한국 의료 미래 없다, 엔클랙스 준비 간호사 많아”
의료단체와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의사 수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의사 수가 부족한 데다 지역별 의료 수준 격차가 심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선진국보다 우리나라가 의사 수도 많고 의료 수준도 수준급이라며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자는 데 반대하고 있다. 이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의사 수 부족으로 생기는 의료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외면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의사 수 부족과 관련해 전문가 연쇄 인터뷰로 해법을 찾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PA간호사는 의료 현장에서 '유령 간호사'라고 불린다. 이들은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2·3차병원에 취업해 별다른 교육 과정 없이 전공의(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의료 인력이다. 간호사로 분류돼 급여를 받지만 이들 사이에 끼일 수 없는 의료 직군이다. 우리나라 현행 의료법상 PA간호사는 불법으로 존재하는 인력들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선언하자 인턴·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났다. 이에 따른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정부는 PA간호사를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2·3차 병원에서 암암리에 불법으로 운영돼 온 PA간호사의 실체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한 셈이다.
<뉴스투데이>는 의사 수요 부족을 의료 현장에서 가장 뼈저리게 체험한 전직 PA간호사를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의료법에 없는 직군에 속한 그는 ‘A’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A씨는 간호사 경력 약 10년 차로 최근 다닌 병원을 그만뒀다. 간호대 졸업 후 면허 취득과 동시에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 취업해 1년 반 정도 PA간호사로 근무했다. 이후 일반 병동과 중환자실 등에서 8년간 간호사로 근무했다.
■ 전공의 업무를 하지만 대우는 값싼 의료인 PA간호사
A씨에 따르면 PA간호사는 내과계와 외과계로 나뉜다. 이들의 업무는 큰 차이는 없다. 외과계는 수술에 참여한다는 것만 다르다. 집도의가 수술하면 인턴·전공의가 없기 때문에 PA간호사가 어시스턴트(보조원) 역할을 담당한다.
수술을 제외하면 각종 시술과 처방부터 검사, 처치, 서류발급, 회진까지 모두 PA간호사들의 몫이다. 이는 간호사 면허에 없는 인턴·전공의들의 업무 영역이다.
보통 간호사들이 PA업무를 맡으면 병원의 인트라넷(단체의 직원만 접근이 가능한 사설망)을 통해 의사 ID를 부여받는다고 한다. 연동된 스마트폰을 지급받아 어디서든 PA간호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 병원 인트라넷 메신저를 통해 문자 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병동에서 발생하는 환자 문제에 대해 일반 간호사들이 메시지를 보내면 PA간호사들이 처방과 조치를 한다. 이후 담당 교수에게 사후 보고를 하고 매일 아침 열리는 컨퍼런스(협의‧회의)를 통해 PA간호사의 처방과 처치가 공유된다.
A씨는 "상당수의 간호사들이 PA 업무가 불법임을 알고 있으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서 "병원의 부마다 배정된 PA간호사들이 활동하기 때문에 원래 있는 직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시술이야 의사가 하지만 간단한 것들은 PA간호사가 하기 때문에 불법인데도 더욱 무감각해진 것 같다"면서 "근무 시 수술복에 의사 가운을 입고 있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간호사라는 것을 모르고 다 의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유휴 간호사부터 엔클랙스까지…대형병원 간호사 미래는 없다
지방 2차 의료기관의 경우 간호조무사가 PA간호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많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PA간호사를 채용 공고를 낸 것은 좋은 예이다.
2‧3차 의료 기관에서 PA간호사의 수요가 꾸준한 것은 교수들이 외례 진료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소화기내과의 경우 교수가 진료를 해야 진료비가 비싼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등의 치료가 이뤄지고 병원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A씨는 “교수가 외례 진료 보는 동안 전공의가 병동 환자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인력이 없어 이런 업무는 PA간호사의 몫으로 돌아온다"면서 "힘든 과로 유명한 흉부외과의 경우 수술 성공 사례가 적고 전공의도 없어 많은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버티다 사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A씨의 동료들 중 PA간호사로 근무하는 데 만족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고 한다. 정부가 2·3차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위법성을 운운하며 PA간호사에 대해 행정 조치를 한다면 이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일반 간호사 조직을 운영하는 병원들은 갑자기 간호사 인력이 늘어난다면 인건비 부담으로 구조조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유휴 간호사(면허는 있지만 일하지 않는 간호사)가 늘어날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A씨는 "PA간호사는 전공의들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의료계 하나의 직군"이라면서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PA 영역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문제를 제기해도 병원은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PA간호사들은 업무 범위에 대해 병원에 건의할 지위에 있지 않고 연봉 4000만원 미만을 받으면서도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는 값싼 노동력의 의료인일 뿐"이라고 개탄했다.
간호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국내 의료 기관에서 일하는 것은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간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엔클랙스(NCLWX ; 미국 간호사시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간호사의 업무 분장이 잘 돼 있고 처우도 좋다.
A씨는 "간호사라는 직군은 교대제로 움직이는데 업무가 많아서 해야 할 일을 못할 경우 태움(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지칭하는 용어)이 들어온다"면서 "외국 간호 문화는 못한 일에 대해 다음 간호사가 인계 받으면 끝이라는 식이기 때문에 엔클랙스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PA간호사의 경우 의사들이 일을 미루기도 하고 갈등을 조장하기도 해 피해를 보는 약자"라면서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만만한 직군이 바로 간호사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 간호사 늘리려 간호대 증원했다…의사 늘리려 의대 정원 증원 "절적하지 않아"
현재 2‧3차 병원은 교수‧전공의들이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PA간호사는 병동 간호사와 어울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전공의들과도 섞일 수 없는 직군이다. 소수 PA간호사들끼리 어울리며 '설움'을 달래는 문화가 생겼다.
A씨는 "일부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빌미로 PA간호사들을 협박한다"면서 "오더가 있어야 간호사들이 행동을 하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당직 근무 안하다고 찾지 말라고 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그는 "의사들의 그릇된 행위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PA간호사들을 매우 괴롭게 한다"고 토로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정부가 PA간호사를 하나의 무기로 쓰고 있는데 대해서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전공의가 의료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의료법에 존재하지 않은 PA간호사를 활용한다고 하는 것은 정부의 황당한 정책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PA간호사를 법의 테두리에 넣어 보호했어야 하나 방관해 온 정부가 대학간호협회를 비롯한 유관기관과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하니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A씨는 "의사를 늘리기 위해 의대 증원을 택하는 것은 좋은 사례는 아니다"면서 "간호사를 늘리겠다고 간호대 정원을 늘렸지만 유휴 간호사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좋은 대책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의사들도 성형외과‧피부과와 같은 인기 과에 집중되기 때문에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를 늘릴 수 정책을 써야한다"면서 "미국처럼 PA간호사의 합법화해 업무 범위를 지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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