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금융당국이 공매도를 금지한 첫 날인 지난 6일 국내 증시는 환호성을 질렀으나, 유독 '대장주'인 삼성전자(005930)는 기를 펴지 못했다. 다른 종목들이 두 자릿수의 상승세를 기록할 때 삼성전자는 겨우 1%대 오르는 데 만족했다.
삼성전자의 시총 대비 공매도 비중이 비교적 작은 만큼 공매도 금지 수혜 기대감이 제한적인 가운데, 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한다는 점도 주가 상승 여력을 약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 이차전지 ‘상한가’ 속출했는데…삼성전자 고작 1%대 상승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일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300원(1.87%) 상승한 7만900원에, 삼성전자우(005935)는 600원(1.06%) 뛴 5만7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폭은 같은 날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5.66%와 7.34%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낮은 상승률임은 분명하다.
전일 국내 증시는 지난 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내년 6월 말까지 전체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에 힘입어 급등세를 보였다. 국내에서 공매도 거래가 전면 금지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 등에 이어 이번이 통산 네 번째다.
특히 코스닥의 경우 장중 코스닥150지수와 그 선물지수가 급등할 때 활용되는 장중 사이드카(프로그램매수호가 일시효력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종목별로는 특히 이차전지주들의 강세가 돋보였다. 이차전지 종목들은 최근 고평가 논란과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 등의 우려로 공매도의 주요 타겟이 됐는데, 주가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여겨진 공매도가 금지되면서 투자심리가 급히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전일 코스피 시가총액 2위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22.76% 급등했고, 12위인 포스코퓨처엠(003670)은 상한가에 장을 마쳤다. 또 포스코홀딩스(005490, 19.18%)와 SK온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 13.24%) 등도 10%대 급등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시가총액 상위 1위와 2위인 에코프로비엠(247540)과 에코프로(086520)가 상한가를 기록했으며, 이외에도 포스코DX(022100, 27.00%)와 엘앤에프(066970, 25.30%) 등이 20%대 폭등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업종이나 개별 종목 단에선 이번 주부터 공매도 금지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매도 금지에 대한 소급 적용은 되지 않더라도 각 주식에 대한 기존 공매도 포지션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이차전지나 바이오 같은 성장주들과 면세, 여행, 유통 등 중국 소비 테마주들이 공매도 잔고 금액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주는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수급상 단기적 주가 모멘텀(상승 여력)이 형성될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공매도 잔고 ‘0.14%’ 수준…코스피 200위권 바깥
올해 들어 공매도의 타겟이 된 이차전지 종목들과 달리 삼성전자의 시총 대비 공매도 잔고는 비교적 적은 수준을 보여왔다.
이달 1일 기준 삼성전자의 공매도 잔고수량은 861만3153주였으며, 공매도 잔고 금액은 5908억6295만580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스피시장에서 잔고수량과 잔고액 기준으로 각각 6위와 4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시총 대비 비중으로는 약 0.14% 수준으로 코스피 상위 291위 수준이다.
반면 같은 날 포스코퓨처엠의 공매도 비중은 3.84%로 코스피 전체 중 10위에 올랐으며, 이외에 포스코홀딩스(1.79%)와 LG에너지솔루션(1.49%) 등도 1%대의 비중을 기록하며 전체 100위 안에 들었다.
코스닥시장에선 엘앤에프(3위, 6.63%)와 에코프로(4위, 6.35%), 에코프로비엠(13위, 5.25%) 등 시총 상위 이차전지주들이 공매도 비중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비교적 작은 상승 폭이 단순히 공매도 비중의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일 또 다른 대형 반도체주인 시총 3위 SK하이닉스(000660)는 낮은 공매도 비중에도 불구하고 5%대 상승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공매도 비중은 지난 1일 기준 0.39%로, 코스피시장에서 167위 수준에 불과하다. 잔고수량(281만225주) 기준으로는 27위며, 잔고액 기준으로는 8위에 올랐다.
■ 삼성家 ‘상속세 마련’ 2조원대 대량매도…“모멘텀은 있다”
이처럼 유달리 삼성전자가 공매도 금지의 수혜를 입지 못한 것은 최근 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를 마련하고자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한다는 소식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하나은행과 유가증권 처분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신탁계약은 금융회사에 주식의 매매 업무를 맡기는 것으로, 계약 기간은 내년 4월 30일까지다. 계약 목적은 ‘상속세 납부용’으로 기재됐다.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삼성전자 1932여만주(지분 0.32%)와 240여만주(0.04%), 810여만주(0.14%)를 매각할 예정인데, 이는 전일 종가 기준 각각 1조3700억원과 1700억원, 5700억원어치 규모다. 총 액수는 2조1100억원 규모에 달한다.
특히 이부진 사장은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물산 120여만주와 삼성SDS 150여만주, 삼성생명 230여만주에 대한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 오너 일가가 이번 상속세 마련을 위해 매각하는 주식은 총 2조6000억원 규모다.
증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상속세 이슈에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사업 측면에서 긍정적 지표가 나오고 있는 만큼 모멘텀(상승 여력)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앞선 공매도 금지 당시 개인 투자자의 삼성전자 매수가 공격적이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공매도를 동반하는 헤지펀드의 관망 수요를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가 더 강한 양상”이라며 “다만 급등 요인이 마땅히 없는 SK하이닉스의 상승세를 고려한다면, 삼성전자는 상속세 이슈에 따른 대량매매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염 이사는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점유율이나 반도체 수출 호전 등 좋은 지표들이 많아 모멘텀이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삼성SDS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 주식들은 내부 이슈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공매도 금지는 지금 당장으로썬 수혜로 작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4분기 DDR5 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비중 상승과 함께 대부분 메모리 가격이 전 분기 대비 상승해 메모리 반도체 적자 폭은 많이 감소할 것”이라며 “내년 1분기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