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3.06 01:03 ㅣ 수정 : 2025.03.06 01:03
피스커, 카누 이어 친환경차로는 세 번째 파산신청한 니콜라, 생산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익화까지 기대한 무리한 사업확장이 빚은 비극적 결말
지난달 파산신청한 니콜라.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한때 미국 전기트럭 업계의 샛별로 불렸던 수소트럭 제조사 니콜라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친환경차를 둘러싼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니콜라의 파산은 2023년 피스커와 올해 1월 카누에 이어 친환경차로는 세 번째 파산이어서 친환경차 잔혹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려감을 자아내고 있다.
니콜라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장(챕터11)에 따른 구제 청원서를 제출했다. 니콜라는 또 파산법 363조에 따라 자산 경매·매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승인 요청서도 제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니콜라는 2월 현재 부채가 100억 달러에 이르는 반면, 자산은 약 1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니콜라의 몰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0년 나스닥 상장과 함께 전기차 붐을 타고 주가는 급등했고, 시가총액은 300억 달러를 돌파해 한때 포드마저 넘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창업자 트레버 밀턴이 수소차 성능을 과장해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니콜라는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공격적 공매도로 유명한 힌덴버그 리서치가 니콜라에 관한 부정적 리포트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니콜라는 차량 1대를 팔 때마다 200만달러 이상을 손해보는 기형적 구조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도 파산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니콜라의 파산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미국 전기차 업계 전반이 거품 붕괴의 후폭풍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6월에는 전기차 스타트업 피스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올해 1월에는 또 다른 전기차 기업 카누도 같은 길을 걸었다. 초기 과열과 막대한 투자로 승승장구했던 전기·수소차 시장이 서서히 현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 전문가인 존 머피 뱅크오브아메리카 자동차 부문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0~2022년 사이 전기차와 수소차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지나치게 과열됐다"며, "아직 인프라, 배터리 기술, 수소 생산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익화까지 기대한 것은 무리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높은 차량 가격과 제한된 충전·수소충전 인프라에 불만이 많으며, 특히 상용 트럭 시장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니콜라 같은 신생 기업이 감당하기엔 벅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도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독일 자동차 컨설팅 업체 베릴즈 스트래티지 어드바이저의 수석 파트너 마티아스 슐러는 "미국과 유럽을 막론하고 전기 및 수소 상용차 시장은 2030년 이전까지 수익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며,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하고 적정 인프라 확장이 지연되면 더 많은 기업이 도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중인 무역장벽 강화도 전기·수소차 업계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캐나다·멕시코 수입차에 25% 관세를 예고했으며, 이는 미국 내 자동차 가격을 평균 2700달러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이에 따라 신차 수요가 약 12%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여파는 전기·수소차에도 확산돼, 주요 부품 생산과 조립 공정이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체계에서 비용 상승과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이 지금처럼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은 결국 '속도 조절 실패'에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적 완성도, 인프라 보급, 가격 경쟁력, 소비자 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시장 확대에만 몰두한 탓이라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회복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 관계자는 "수소 생산 단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 2030년대에는 상용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결국 전기·수소차 시장의 잔혹사가 끝나기 위해서는 냉정한 현실 인식과 장기적 기술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신생 스타트업보다는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완성차 업체들이 기회를 엿보는 시간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니콜라의 몰락이 또 다른 교훈으로 남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