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47)] 따뜻한 세상 만드는 민관군 콜라보(하)

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1.11 14:30 ㅣ 수정 : 2025.01.18 04:06

부모산 모유정, 소나무를 뽑자 식수는 물론 말에게 목욕을 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솟아난 우물
성심양로원 봉사활동, 군기교육 과정으로 활용하거나 대대원들도 수시로 방문하여 부족한 일손을 도와
유세있는 부자들이 아닌 가난하고 평범한 시민들과의 민관군 콜라보가 또한번 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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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부모산 안내 간판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부모산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 232m의 작은 산이다. 본래 이산은 아양산, 악양산 등으로 불리웠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과 아양산(부모산)을 탈환하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춘무에게 패전했던 왜병이 아양산에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했다.

 

작전이 보름 이상 길어지자 그 안에 갇힌 의병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게 되었는데, 의병장 박춘무의 꿈속에 지팡이를 짚은 백발노인이 나타나 소나무를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소리치자, 박춘무는 꿈에서 깨어나 군사들에게 소나무를 뽑게 했다. 소나무를 뽑자 식수는 물론 말에게 목욕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물이 솟아났다.

 

이것을 알게 된 왜병들이 물러났고 이때부터 부모산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우물을 모유정이라고 불렀다. 

 

옛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부모산성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고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2,427척, 성 안에 큰 연못이 있어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낸 연화사가 있었다. 이 산성은 오랜 세월에 많이 허물어져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둘레가 1,220m 나 되는 비교적 큰 산성으로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성 안에 우물자리인 모유정 주변 참나무에는 주술신앙의 흔적인 금줄이 매어져 있다. 성 안에서 백제계의 토기조각, 통일신라시대의 토기 기와조각, 고려시대의 청자 파편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산성은 백제 초기에 당이산 토성과 함께 청주의 동서를 지키는 외곽방어 시설로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 및 후삼국 시대에 기능을 발휘하였고 특히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피난성의 구실을 한 유서 깊은 부모산성이다. 청주를 대표하는 상당산성과 부모산성이 함께 청주 시내를 동서로 감싸고 있고,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시내에 경로수녀회가 임진왜란 때 부모산의 모유정처럼 간절하게 운영하는 성심양로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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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는 양로원에서 봉사하는 수녀님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변 불우 이웃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지만 진정 가까운 부친에게는 소홀했던 필자가 한편 부끄러워

 

상당산성 서쪽 끝자락 율량동에 있었던 ‘성심양로원’이 지금은 없어졌고 청주교구의 건물만 남아있지만, 필자가 청원대대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경로수녀회 최상살 수녀님이 원장으로 봉사하던 곳으로 많은 무의탁 노인들의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오송에 위치해 뇌성마비 환자들과 무연고 걸인들을 모아 생활하고 있던 ‘믿음의 집’과 마찬가지로 ‘성심양로원’도 대대에서 군기 위반자들이 발생하면 늘 군기교육 과정으로 보내어 봉사하게 했었고, 대대원들도 일손이 부족한 양로원에 수시로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했던 곳이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2)] ‘난득호도(難得糊塗)’를 강권한 노마지지(老馬之智) 참조) 

 

한편 필자의 고향인 평택에서 중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뒤에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는 아버지가 불쑥 부대를 찾아오셨다. 우리 집은 동족상잔 비극인 6‧25남침전쟁시에 미군이 약 2만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중공군을 지연시킨 장진호 전투 덕분에 20만명이 피난할 수 있었던 흥남철수로 온 식구가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던 월남가족이다.

 

마침 휴일이라 부친을 모시고 동네 목욕탕을 갔다. ‘믿음의 집’과 ‘성심양노원’을 수시로 방문하여 노인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했지만 진정 가까운 부친에게는 소홀했던 필자가 한편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래서 평택의 시골집에서는 목욕을 자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다리에 피부병이 있었는데 부친도 마찬가지로 다리에 피부병을 앓고 계셨고, 본인이 참지 못하고 심하게 긁으셔서 일부는 피가 난 상처도 있었다. 필자가 그곳을 뜨거운 물로 씻겨드리자 너무도 좋아하셨다. 

 

한참 등을 밀어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왔다. 목욕탕 안이라 모두 옷을 벗고 있었는데 그는 완전한 복장 차림의 목욕탕 주인이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손님, 다른 손님들에게서 항의가 들어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을 모시고 즉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말을 전했다. 

 

주인의 말을 들은 필자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전염병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계속된 주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복귀했다. 

 

아쉽지만 짧게라도 함께 목욕하며 등을 밀어 드린 것이 작은 보람이었고, 아마도 그때가 10여 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목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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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단장과 학군 동기로 폐자재 운반 유통업을 하고 있어서 양로원이 전주로 이전하기 위한 차량을 지원해준 재향군인회 변상환 회장과 한진희 경찰서장 [사진=김희철]

 

가난하고 평범한 시민들과의 민관군 콜라보가 또한번 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

 

어느날 성심양로원 최상달 원장수녀님과 청주교구 신부님이 필자를 찾아왔다.

 

청주교구의 사정상 양로원을 전주로 이전하게 됐다며 노인 어르신들을 옮겨야 하는데 이동 수단이 없어 부대 차를 이용할 수 없냐는 민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필자의 마음은 적극 지원하고 싶었으나 부대가 운용하는 트럭과 5/4톤 통신차는 노후되어 안전에도 걱정이 됐다. 게다가 부대 차량을 위수 지역 밖인 전주까지 운용하는 것은 상급부대 지침상 어렵다고 이해를 시켰다. 하지만 필자가 알고 있던 주변 업체들에게 지원을 협조해보겠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신부님과 수녀님이 안타까워하며 자리를 일어서는 순간 불연 듯 떠올르는 지역 유지 한 명이 생각났다. 그들을 잠깐 대기시키며 전화기를 들었다.

 

지역 재향군인회 변상환 회장(학군7기)이었다. 그는 양로원 사정 이야기를 듣자마자 즉각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변 회장은 당시 사단장과 학군 동기로 폐자재 운반 유통업을 하고 있어서 차량 지원이 가능했다. 

 

필자가 청원대대장으로 취임하여 지역 기관장 회의에 참석하면 군수 옆 상석으로 통상 배치했는데, 기관장들은 대부분 필자보다 연장자였다. 

 

그래서 상석에 있는 필자의 명패를 슬그머니 재향군인회장 옆 자리 말석으로 옮겨놓았다. 현역은 예비역 군선배 자리 다음이라며 양보한 것 덕분에 기관장들의 신뢰와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었고, 변상환 재향군인회장과는 더욱 각별해지는 계기가 되었었다.

 

몇 개월 뒤에 최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주로 이전해 자리를 잡았는데 한번 들려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필자는 외박 기간에 가족과 함께 경로수녀회가 운용하는 전주의 양로원으로 향했다.

 

이전한 양로원은 천국이었다. 현대화된 식당, 오락방 등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정돈이 잘되어 있었고, 어르신들의 목욕도 그냥 앉아 있으면 사방에서 물이 나와 씻는 완전 자동이었다. 특히 어르신들을 모두 옮기는 것에 도움을 준 사람은 돈 많은 부자나 기업가들이 아니라, 고맙게도 가난하고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최상달 원장수녀님은 “신앙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약간 흥분하면서, “이 모든 이동은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이 개인택시, 작은 용달차, 일부 시민들의 노후된 승용차 등으로 휴무일에 자발적으로 어르신 한명씩 이동하도록 자원봉사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신께 감사드렸다. 

 

최신식으로 현대화된 복지시설과 수녀님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는 어르신들이 행복한 미소를 띄우는 모습은 가난하고 평범한 시민들과의 민관군 콜라보가 또한번 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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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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