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은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세레머니였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계산은 중국을 서구 민주체제에 흡수하는 것이었다. 서방세계의 의도와 달리 중국은 이때부터 비약적으로 성장을 했고,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한국도 중국의 등에 올라탔다. 수출주도의 대기업이 세계적 기업이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동전의 양측면처럼 중국의 부상이 현실화되면서 한국의 제조업은 추월을 당할 위기에 부딪혔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2012년 시진핑이 중국몽을 선언했다.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 전면적인 샤오캉(小康:기초복지가 보장된 사회)를 건설하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부강, 민주, 문명의 사회주의 현대화에 기초한 부국강병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민주는 대의제민주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뜻한다.
중국은 세계화의 승자가 되었다. 미국은 다급해졌다. 오바마가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을 선언했다. 중국의 부상을 경계해야 했다. 중국을 견제하는데에 힘을 집중했다. 중국은 이에 맞서 신대국관계를 제안했다. 빅2가 공존하자는 취지였다. 하와이 서쪽으로는 미국, 동쪽으로는 중국이라는 경계를 제안했다. 미국은 ‘항해의 자유’(해군의 자유로운 해양지배)를 외치며 중국을 바다로 못나오게 했고, 중국은 남중국해로 나오는 한편 일대일로라는 전략적 대체재를 만들었다. 미국은 이에맞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동서화해의 키신저 시대가 끝나고 신냉전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2010년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발했다. 천안함 피격사건(2010.3.26.), 연평도 포격사건(2010.11.23.)이다. 이 두가지 중요한 사건에서 중국은 중립을 지키거나, 중립을 지킴으로써 북한의 편을 들었다. 2006년 북한의 첫번째 핵실험 이후에 중국이 보인 일련의 태도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중국이 남북대결과 남북통일에서 미국 만큼 키를 쥐고 있는데 중국의 태도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는 상반됐다.
2012년 집권한 박근혜은 어떤 근거에서인지 ‘통일대박론’에 빠졌다.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정세판단과 믿음에 빠졌다. 박근혜는 중국의 전승 7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푸틴보다 더 환대를 받았다. 박근혜가 무슨 의도로 이 행사에 참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대박론에 기대하여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환상에 잠시 빠졌던 것이다.
댓가는 크고, 결과는 참혹했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경사된 것인지를 의심했다. 사드 배치를 요구하고 밀어부쳤다. 결국 박근혜는 그 요구를 수용했다. 사드는 북한의 핵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용 무기라고 했으나, 중국의 미사일 공격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다를 탑재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에 편입된 것이고, 중국을 적대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국은 경제제재와 한한령으로 보복을 했다. 한중관계로 보면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중화주의의 현대판이다. 중화주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나라가 중국을 중심으로 수직화한다. 다른 나라의 입지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중국은 경제제재와 한한령으로 한국이 수직계열화될 것을 압박했다. 수많은 전랑외교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국과 척을 지면 어떤 결과가 올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 경제와 문화 수출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2002년-2007년 세계경제 전체에 대한 한국수출은 연평균 17.6% 성장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은 연평균 29.2%씩 성장했다.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 안팎이던 시기이다. 그런데 2012년-2018년 사이에는 세계경제 전체에 대한 한국 수출은 연평균 1.2% 성장했다. 중국에 대한 수출은 연평균 2.1% 성장했다. 한국경제 연평균 성장은 3% 안팎이던 시기이다.(최병천 ‘좋은 불평등’)
두 개의 시기 중간에 세계경제와 중국경제가 고성장을 끝내고 중성장이 정상적 상태가 되는 전환점이 있었다. 시진핑은 이를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 2014년5월)라고 규정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세계경제위기에 취약하다는 판단을 하게되었다. 그리해서 내수경제를 활성화하고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경제체제를 구축했다. 속도에서 안정으로의 전환이었다. 앞에 열거한 두 시기의 결정적 차이는 뉴노멀과 이에따른 중국의 경제구조전환이 있었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구조전환기에 경제제재와 한한령이 발동된 것은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었다. 수출 주도의 한국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등이 중국을 통해서 일자리를 얻은 번영의 시대에 살았다면, 한국의 MZ세대들은 중국으로 인해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은 많다는 정서를 갖게 되었다.
이 시기는 중국의 애국주의 MZ세대인 샤오펀홍(小粉紅) 세대가 성장을 하고, 인터넷 등에서 맹위를 떨치던 시기이다. 중국이 G-2로 부상하면서 애국, 애국민족주의로 무장한 세대이다. 시진핑 키즈들은 각종 인터넷 커뮤너티와 플랫폼에서 활동한다. 사드 배치에 따른 반한정서를 조성하고 김치 한복 원조론을 공격적으로 펼쳤다. 당연히 한국의 MZ세대들도 키보드 전쟁으로 맞대응했다.
다카하라 모토아키는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에서 “미래의 불안을 외부의 사이버 적 탓으로 돌리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의 분석대로 경제적 요인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플랫폼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누적된 감정이 현실세계의 감정으로 전이된 점도 있다.
제1시기(88올림픽-동북공정)의 반중 정서는 한중간의 관계에서 형성되었다. 제2시기(베이징올림픽-한한령)의 반중정서는 우리 밖의 미중간의 대결이라는 기본 구도위에서 사드를 매개로 하여 형성되었다. 제3시기(코로나-윤석열 계엄)는 빨강부족의 정치적 기획으로 발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안의 미중전쟁으로 전환되었다. 또 반중정서는 국제적인 연결 관계를 갖게 되었다.
코로나(2020) 이후
이 시기 부터는 반중에서 혐중 정서로 발전한다. 그리고 매 계기마다 정치가 작동한다. 선거와 연동된다. 2020년 총선거때는 코로나가 발생하자 국민의힘이 국경봉쇄와 중국인 입국금지를 총선의 이슈로 삼았다. 마스크대란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때였다. 문재인 탄핵 청원에 100만명이 서명했지만 정부가 방역에 성공하면서 K-방역이 세계로 알려지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2021년에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문재인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최저였다. 드라마 빈센조, 조선구마사가 이슈가 되었다. 2022년 대선때에는 베이징동계올림픽 편파판정이 문제가 되었다. “눈 뜨고 코베이징”이라는 풍자가 대중정서를 압도했다. 조선족이 올림픽 개막식에 입고 나온 한복 이슈 등이 대중 정서를 자극했다. 윤석열은 20년이 지난 동북공정을 소환했고, 사드배재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도 올림픽이 동네잔치가 되었다며 서해안 불법조업어선을 격침시켜야 한다고 가세했디.
이를 전후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이효리와 BTS의 수난,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의 한국 출시 기념 한복캐릭터 삭제, 오징어게임과 지옥의 불법 유통, 중국 피오차이 국제표준화기구(ISO)등록,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발언(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한다)는 사건은 한국인의 혐중 정서를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정용진 같은 재벌2세도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이라고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는가 하면, 황해 청년경찰 범죄도시 같은 극우적 문화코드의 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기성세대는조선족을 여전히 동포로 생각하지만, 청년층은 그들을 외국인 노동자로 본다. 한중 수교 40년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정황에 기대어 국민의힘은 중국 중국인 이슈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유포했다. 외국인 영주권자 투표권을 이슈화했다. 캐나다 선거에서 보듯이 중국이 내정에 개입할 수 있다며 영주권을 없애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외국인이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갖는 것은 생활민주주의적 관점, 그리고 재일동포의 투표권 확보라는 관점에서 2006년 여야 합의로 추진된 것이다.
지금 외국인 투표권자는 12만명이고 그 중에 10만명이 중국계이다. 이들의 투표율은 10%를 약간 웃도는 정도여서 실제로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데, 빨강부족은 중국이 투표를 통해 우리나라를 공산화할 수 있다고 공포를 극대화한다. 이 문제는 영주권자의 3년 실제 거주를 확인하는 등의 보완 조치를 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중국인 해커가 2020년 총선에서 해킹을 한 후에 “Follow the Party”라는 지문을 남겼다, 중국인이 선거 개표원으로 종사했다는 주장은 다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심지어 12월3일 계엄령 발동 시에 중국인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는 유언비어까지 조직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중국인 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시대가 온다”는 등의 자극적인 선전도 문제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주택 소유는 0.49%이고 그나마 미국인 교포가 주를 이룬다. 외국인 토지 소유는 전체 국토면적의 0.26%이다. 그런데 제주도 하늘이 중국 하늘이 되어버렸다는 등의 온갖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화교 특별전형이 있어서 서울대 의대가 중국의대가 되어버렸다는 엉터리 같은 얘기들이 유포되고 있다. 다만 의료보험 재정 수지는 중국인의 경우 피부양자의 과다 등록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맞다. 이는 부정수급을 감시하고 제도적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대부분은 보통의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가 없는 사안인데 일단 부족 속에 편입이 되면 맹신자가 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극단이 힘을 얻게 된다. 정치적 기획으로 인한 혐중정서의 유포 시기로 접어들면서 미국의 보수세력간의 조직적 연계가 눈에 띈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에서 중국의 선거개입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던 트럼프의 옛 참모가 한국을 방문한다.
정치는, 넓은 의미의 전쟁과 국가간 대결은 국민의 의지를 바탕으로 하여 치러진다. 빨강부족의 정치권이 반중정서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경직된다. 이런 정서는 우리의 국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의 무기가 된다. 윤석열의 의지대로 혐중을 정치이슈로 한다고 해서 헌정주의 대 반헌정주의라는 이번 선거의 큰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 혐중의 정치화는 장기적 국익을 생각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볼 때 결코 어느 일방에 포섭되어서는 안된다.
파랑부족을 대표하는 민주당의 균형외교론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어떻게 균형을 취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혐중정서를 두려워하여 갈수록 중국과의 협력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중장기적 국익은 숭미혐중(崇美嫌中)이 아니라 연미협중(聯美協中) 연미화중(聯美和中)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의 전랑외교와 한한령은 한국인을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반중으로 몰고 있다. 중국의 이와같은 외교는 한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상대 국민을 적대시해서는 근린 국가간의 화평을 기대하기 힘들다. 중국의 전략적 오류이다. 경제제재와 혐한령의 지난 10년은 한국에게만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중국에게도 잃어버린 10년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야 할 것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따듯한 훈풍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에게도 이롭고 한국에게도 이롭다. 파랑부족은 이런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중국에게 보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