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이슈산책] 제주항공 참사가 빚은 '집단적 슬픔'을 치유하는 법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몇 번이고 깨어 일어났다. 2024년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에 전해진 비보는 밤새 나를 눌렀다. 내가 비행기 안에 있었다면 그 마지막 2분을 어떻게 보냈을까 하는 생각과, 무안공항에서 오열하고 있을 유족들이 생각났다. 새벽을 맞았지만 아직도 어두웠다. 깜깜했다. SNS가 온통 검은 바탕에 국화 한 송이로 도배가 되어서인지 그 슬픔은 더했다.
온 국민이 한 날, 한 시에 이처럼 집단적으로 슬픔에 빠진 일이 벌써 몇 번째인가?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아이들 하나 하나의 사연을 접하며 오랜동안 울었다. 어린 학생들이 남긴 친구들, 가족들 걱정을 하는 문자메시지가 내 가슴에 타이핑되는 듯 했다. 오래 남았다.
이태원 참사 부터는 그 하나 하나의 사연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피했다. 그 사연을 얘기하며 슬픔을 접하는 방식이 감정의 사치이고 망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또 한 번의 참변을 보며 죽음을 읽고 목도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손님 여러분! 기장입니다. 잠시 후 우리 비행기는 무안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도착지의 날씨는... This is Captain speaking…"
곧 이어 승무원들 제 자리에 위치하라는 기장의 지시가 있고, 시야에는 관제탑과 활주로가 들어왔을 것이다. 이제 핸드폰을 켜고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방금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 아! 집과 가족을 코 앞에 두고 불과 1,2분 사이에 "유언을 남겨야 하나"라는 짪은 한 문장을 보내고 모두 이승으로 사라지다니...
사고 원인이 정확히 밝혀져야 겠지만 그냥 황망하다.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분명하고 절망과 슬픔을 이겨낼 수단이라도 있으면 황망함이 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1보가 '버드스트라이크'라니... 누구를 원망할 수 있으면, 분노가 향하는 지점이라도 있으면, 누구의 책임인지 규명할 수 있으면...
대개의 대형 사건 사고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시간이 지나며 집단적 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 대형사건 일 수록 정부와 고위관계자의 책임을 묻게된다. 그렇게 해서 다른 국민들은 심리적 부채를 덜어나가고,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에게 할 일을 했다는 면죄부를 받아나간다. 그런게 잘 보이지 않아 더 막막하고 힘이 빠진다.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가 붕괴되었을 때는 ‘단군이래 5천년 적폐’가 쌓인 결과라고 원인을 만들고 책임을 돌렸다. 세월호 참사 때는 산업화와 정보화에 이어 이제는 인간화라는 외침이 있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고가 발생할 때 마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이전의 사회에 살고 있다.
관계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해나갈 것이다. 사실 항공기가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 만큼의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건수가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연간 3000명에 달하고 있다. 비행기 사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만큼 비행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자동차는 사고시에 생존을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았는 일이 있지만 비행기는 그렇지 않다. 꼼짝없이 당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제조사와 항공사와 공항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낙관적인 사람은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적인 사람은 낙하산을 만든다. 하지만 두가지 발명품 모두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늘을 날더라도 안전장치가 없으면 아무도 타지 않을 것이다. 지구에 귀환 할 방법이 없으면 누구도 우주선을 타지 않을 것이다. 속도를 다투는 경주용 차량(F1)의 성능은 사실 브레이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전하지 않으면 신뢰가 없고, 신뢰가 없으면 사회의 인프라가 무용이 된다.
조속히 원인이 밝혀지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음모론, 섵부른 속단, 정치적 이용 같은 불순물이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숙한 사회와 시민의 척도이다. 오늘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 레퀴엠(Requiem)을 들었다.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곡을 들으면서 망자에게는 영원한 안식을, 유족들에게는 하늘의 위로를, 우리나라에는 신의 가호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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