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정례적 한미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 첫날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블랙호크(UH-60)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2023년 12월 29일 ‘제158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UH-60 ‘블랙호크’와 개량형인 HH-60 헬기의 성능개량 사업이 결정됐다. 현재 군이 보유하고 있는 UH-60은 육군 특전사 전용 헬기 24대, 육군 항공사 소속 헬기 108대 그리고 공군 탐색구조용(HH-60) 12대 등 총 144대이다. 이중 특전사용 24대와 탐색구조용 12대만 이번 성능개량 사업에 포함된다.
미국 시콜스키가 개발한 중형 다목적 헬기인 ‘UH-60’은 보병의 전술수송, 전자전, 구급 임무를 비롯해 다양한 작전에 사용할 수 있다. 4명의 승무원(조종사, 부조종사, 좌·우 기관총 사수)과 11명의 완전군장 병력을 싣거나, 다양한 화물을 싣고 격렬한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헬기다. 1979년 최초로 도입된 이래 2600대가 넘게 생산됐고 현재도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스테디셀러 기종이다.
한국군이 보유한 UH/HH-60은 1990년 도입 사업이 결정돼 1999년까지 대한항공에서 대부분 면허생산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됐고 이번에 36대만 성능개량을 추진하며 나머지 108대는 운용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대로 사용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한때 전체 물량의 성능개량을 검토했으나 예산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좌초됐다가 참수 부대의 창설과 전용 기동헬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사업이 부활했다.
지난달 13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9613억원 규모의 블랙호크 성능개량 사업에 대한 사업설명회를 열었고,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대한항공이 입찰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대한항공은 LIG넥스원, 미국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와, KAI는 한화시스템, 미국 시콜스키,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와 같이 참여한다. 방사청은 이달 내로 제안서 평가를 완료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후 오는 6월까지 최종 선정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우리 군이 1990년대부터 운용해온 UH/HH-60의 항공전자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기동성을 높인 기체 구조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항법, 생존, 조종실, 통신장비 등 전방위로 헬기를 개조해야 하는 사업이므로 추진 과정에서 돌발 변수가 생기면 신속한 원인 파악과 해결방안이 필요해 체계개발 수준의 기술력과 원제작사(OEM)인 시콜스키와의 기술협력이 요구되는 사업이란 얘기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UH-60 최초 도입 시 면허생산 경험과 오랫동안 창정비를 수행해와 제작과 개조, 정비에 필요한 기술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또한, UH-60 전용시설, 기술자료, 장비 등을 갖추고 성능개량과 창정비를 상호 연계해 수행할 수 있어 유리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회성 성능개량 수행이 아닌 UH/HH-60 탄생부터 퇴역까지의 책임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입찰에서는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의 CAAS(공통 항공전자 아키텍처 시스템) 기반 디지털 조종석과 LIG넥스원의 생존장비, 통신장비 체계를 기반으로 성능개량을 제안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CAAS 체계가 1990년대 개발된 플랫폼이어서 이미 새로운 버전이 나오는 데다, 향후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장비와 호환이 어려울 수 있어 체계통합 과정에서 비용 상승과 적시적인 성능개량이 제한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KAI는 수리온, LAH 등 국산 헬기를 설계·생산한 경험이 축적돼 다양한 항공전자·임무장비에 대한 체계통합 역량과 설계에 따라 제작됐는지 확인하는 감항인증 능력이 뛰어나다. 또 지속적인 헬기 개발·생산·시험 등을 통해 성능개량에 필요한 첨단 인프라와 조직이 확보된 상태여서 경제적·안정적인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 단 UH-60에 대한 이해는 대한항공보다 부족할 수 있는데, 시콜스키와 기술지원 협약을 체결한 상태여서 문제는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KAI는 시콜스키의 전문인력과 기술지원을 통해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최소화함으로써 비용과 시간을 절약한다는 계획이다. KAI 관계자는 “이번 성능개량 사업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첨단 항전장비 통합 경험, 감항인증 확보 능력, OEM 기술협력 기반의 문제해결 능력”이라며 “시콜스키 전문인력의 기술지원은 물론 구조 설계변경에 대한 감항자료 확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성능개량 사업은 기체골격을 보강하는 ‘기체수명 연장’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면허생산 기체의 설계수명이 8000시간인데, 특전사용 24대는 5000∼7500시간이며, 탐색구조용 12대는 8000시간에 도달한 기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KAI 관계자는 “기체수명 연장 기준을 알고 있는 시콜스키와 협력해 기체보강·교체뿐만 아니라 수명평가 프로그램(SLAP)을 통해 현실적인 수명연장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KAI는 성능개량 사업 수행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동안 국산 헬기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활용해 미래전장 환경에 부합하고 다양한 특수작전 요구를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MOSA’(모듈식 개방형 시스템 접근방식) 기반의 조종석 시스템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기술적 한계와 확장성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CAAS 체계를 제안한 대한항공과는 대비된다.
일부 방산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이 단순한 성능개량 차원을 넘어 향후 차세대 헬기 개발, 유·무인 복합체계(MUM-T) 통합 등 헬기 기술 고도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유럽의 항공기 설계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산 헬기를 개발해온 KAI는 이번 사업을 수주할 경우 시콜스키와 협력을 통해 미국의 최첨단 헬기 기반 기술을 내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의 개발 기술을 기반으로 차세대 국산 헬기에 가장 적합하고 유리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국내 회전익 산업이 더욱 크게 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비록 늦게 출발하는 사업이지만, 성능개량이란 목적 달성은 물론 미래전장이 요구하는 기능에 부합한 제안이 제대로 평가받아 향후 국가이익 창출로도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