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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퍼펙트 스톰' 몰려오는데 기업 지원책 왜 머뭇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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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기자
입력 : 2025.03.07 15:58 ㅣ 수정 : 2025.03.12 09:28

맥킨지가 10년 만에 내놓은 보고서 그냥 넘길 일 아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트럼프 관세 폭탄 겹친 '복합 위기'
'이웃 거지 만들기' 시대에 국가 이익 지키는 일 급선무
'주 52시간'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경제살리기 결단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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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부국장/산업1부장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화불단행(禍不單行:불행은 잇따라 일어난다)'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과 국내 정치 아노미가 겹쳐 한국호(號)는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의 짙은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역 정책을 보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 등 주요 교역국 경제를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정책(Beggar thy neighbour)'을 펼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이를 보여주듯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최근 발간한 ‘트럼프 2기 주요 정책과 한국의 잠재적 영향력’이라는 제목의 내부용 보고서를 보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미국 정부의 '칩스법(반도체 지원법)' 감축과 관세 정책으로 한국의 15개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9개 품목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이 지난 20여 년간 주요 수출 품목을 다각화하지 못하고 신성장 기술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맥킨지가 지적했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마치 고인 물처럼 기존 제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국내 산업 생태계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맥킨지의 쓴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맥킨지는 2013년 4월 '한국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를 '멈춰버린 한강의 기적'이라며 신랄하게 지적한 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해 맥킨지는 '저성장 시대 해법'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한국은 느리게 가는 자전거이다 보니 그만큼 균형 잡기가 어렵다"라며 "이에 따라 한국은 저성장 기조에서 경제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라고 맹비난한 점은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관성의 법칙이 한국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게 우리의 엄연한 현주소다.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속성을 드러낸다.  이는 움직이는 물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힘이 별로 들지 않지만 멈춘 물체를 다시 움직이려면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이 경기순환에 따른 하락보다 더 떨어지면 이를 다시 끌어올리기가 어렵다. 

 

저성장이 오래 이어지면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는 경제가 다시 성장할지에 대한 확신을 잃기 마련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가 잠재성장률 이하로 떨어지는 저성장과 실업 증가가 두드러지면 미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를 경제학에서 '이력효과(Hysteresis Effect)'라고 부른다.

 

거시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로렌스 서머스가 1986년 발표한 '이력효과와 유럽 실업률 문제(Hysteresis and the European Unemployment Problem)'라는 제목의 공동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이력효과는 어떤 물체가 외부 힘에 영향을 받은 후 본래 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1990년대 저성장으로 이어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1980년대 미국의 경기침체가 이력효과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저성장->저소비->저투자->저고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지 않는가.

 

이에 따라 한국경제 잠재성장률이 2031~2060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 1.8%에도 못 미치는 0.55%까지 떨어져 제로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 소설가 대니얼 퀸이 1992년에 쓴 소설 '이시마엘(Ishmael)'이 문득 떠오른다.

 

이 소설은 "개구리는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넣으면 재빨리 냄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러나 찬물에 넣고 온도를 조금씩 올리면 개구리가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해 결국 뜨거운 물에 익혀 죽는다"라며 위기 불감증을 묘사했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빠진 '느린 자전거'인 한국경제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한국경제 전반의 체질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위해 내수 비중을 늘리는 산업 구조조정과 함께 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기업이 기업가정신, 생산성 향상, 신(新)기술 개발이라는 삼위일체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특히 기업가정신은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경제를 살리는 꽃'이라고 역설할 만큼 중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기업가정신과 그리고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헝그리정신을 갖춰야 한국경제가 '제2의 르네상스'를 꿈꿀 수 있다.

 

정부 정책이 투명해 기업이 마음껏 투자하고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급선무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초래할 수 있는 모호함이 가득 찬 각종 규제로는 기업이 투자하기 위해 지갑을 열 이유가 없다. 마치 고장난 레코드판이 똑같은 노래를 반복하듯 '경제의 최대 적(敵)은 정치'라는 소리만큼은 이제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권이 국가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해 기업의 투자 의욕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위기에 놓인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재계와 정부 여당이 반도체 특별법의 '주 52시간 특례' 적용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국회 모습은 답답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다.

 

공산주의 국가 중국도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는데 우리는 국정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경제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기회를 놓치면 의미가 없다. 개구리가 위기를 피해 냄비 속에서 힘차게 뛰쳐나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서둘러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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