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3.02 18:54 ㅣ 수정 : 2025.03.02 18:54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인생길을 가보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받는 일들이 많다. 칭찬만 계속 듣다가 처음으로 ‘군의 명예와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잘 행동하라’라며 따끔하게 질책 당해
을지/포커스렌즈 훈련간 민관군 통합작전 수행을 위해 군청을 지도방문한 사단장에게 군청 현관입구에 전시된 민관군 통합작전용 비품들을 설명하는 故 변종석 청원군수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사람은 한 평생 살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인생길이다. 살다보면 종종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받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상근예비역의 지속된 사고발생으로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공이 한순간 무너지는 심정의 좌절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군단전투지휘검열을 수검하면서 최고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 보람과 성취감을 만끽하는 분위기로 다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곧 사단장에게 혹독한 꾸지람을 직접 듣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또 발생했다.
매년 8월이 되면 을지/포커스렌즈 실제훈련을 한다. 사단 참모부는 사령부와 도청 지하 벙커에 위치한 전술지휘부에서 주로 훈련을 하지만 기간 중에 짬을 내어 사단장은 각 시청과 군청도 지도 방문한다.
이번에도 역시 사단장은 필자의 대대를 방문하도록 시간 계획에 포함되었고, 필자는 변종석 청원군수에게 사단장이 군청 훈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알려주며 민관군 종합상황실과 각 기능별 상황실의 준비 상태를 점검했다.
군수와 함께 군청 현관에서 도열하며 사단장을 영접하여 군청현관 입구에 전시된 민관군 통합작전용 비품들을 설명하고 바로 군청 건물 지하에 마련된 종합상황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훈련 상황을 보고 받는 사단장의 얼굴에 영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했다. 훈련에 참석한 군청 직원 및 군과 경찰 등 관계관들에게 일장 훈시를 한 사단장은 군수실에서 차를 하자는 군수의 건의도 묵살한 채 필자를 조용한 사무실로 불렀다.
단 둘만 있는 사무실에서 사단장은 다짜고짜 “김희철, 훈련 준비를 왜 고따위로 해..!”라고 화를 내며 질책했다. 필자는 예상하지 못한 꾸지람에 어안이 벙벙하게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 이유는 종합상황실 좌석 배치에서 어떻게 중앙에 군수가 앉고 사단장을 옆에 안도록 의전 조치했냐는 지적 내용 때문이었다.
군청 상황실에서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에 참석한 군청 직원 및 군과 경찰 등 관계관들에게 일장 훈시하는 사단장[사진=김희철]
■ 군의 명예와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잘 행동하라는 따끔한 질책을 극복할 답은 역시 현장에 있었다
필자가 무적태풍부대에서 사단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할 때 작전참모였던 강수명 장군(육사31기)은 “권위는 본인이 찾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이 상급자를 잘 예우하고 주변에도 분위기를 조성하여 만드는 것이 바로 권위이다”라는 가르침을 준 적이 있었다.
을지 훈련간 군경관이 부여된 상황에 대해 통합작전을 잘하도록 조치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준비했는데, 미처 사단장에 대한 의전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사단장은 군청에서 군에 대한 예우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하며 그동안 필자에게는 칭찬만 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호되게 꾸짖었다.
다음부터는 유념해서 군의 명예와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잘 행동하라는 따끔한 충고를 남기고 사단장은 다음 지도방문 장소로 출발했다.
짚차로 출발하는 사단장에게 환송 경례를 한 뒤에 필자는 허탈한 심정에 공황이 발생해 멍하니 군청 정문만 바라보았다. 사단장이 취임한 이후 얼마나 노력해서 인정을 받았었는데... 그동안 쌓아놓은 공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무적태풍부대에서 근무할 때 작전참모였던 강수명 장군의 ‘상급자를 잘 예우하고 주변에도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바로 권위!’라는 교훈이 머리를 때렸다. 단지 필자와 군수와의 잘 협조하여 민관군통합작전을 잘 수행하는 것에만 전념하다보니 사단장의 의전을 포함해 군 전체에 대한 명예와 권위를 소홀히 했다는 자책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수렁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했고, ‘우문현답’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은 역시 현장에 있었다. 다음 날 계획된 오창면사무소에서 주민 300명이 참석하는 ‘민관군통합 화생방 방호훈련’ 그리고 이틀 뒤에는 ‘비행장 방어훈련’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것이 역전의 기회였다.
이 훈련들을 더욱 전념해서 준비했고, 연 3일간 계속 사단장을 직접 맞이하며 지역 주민들의 적극 참여와 공군부대원들의 협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군청 종합상황실에서의 실책을 간신히 약간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단장의 기습적인 꾸지람으로 공황상태에 빠졌던 상황은 요란한 빈 깡통이라는 소문과 함께 중첩되는 잔영으로 계속 남았다.
좌측 장석우 대위의 중령시절 모습과 우측 사진의 중앙이 故 변종석 청원군수와 조영호 사단장, 우측 끝이 이병우 연대장 [사진=김희철]
■ 예비군 업무 감사결과 혹평은 신께서 자만심에 빠질 수 있었던 필자에게 책찍을 가하는 것 같아
을지연습이 끝나자 진급 시즌이 됐다. 연대 작전과장 김원기(학군장교)를 포함해 사단 참모부의 보좌관인 정석모와 문점팔 등이 중령으로 진급했다. 그동안 대대에서 각종 시범과 훈련에 대비해 제일 고생이 많았던 대대 동원장교 장석우 대위가 차기 진급을 위해 연대 작전장교로 영전했다.
이는 대대가 그동안 예비군, 작전, 전투근무지원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던 것은 탁월한 능력과 훌륭한 인품의 장석우 대위의 공이 컸다고 연대장에게 추천한 것이 주효했다. 영전하는 그에게 비록 1차 진급은 놓쳤지만 좋은 보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다음해에는 꼭 진급할 것이라는 확신의 덕담을 보내며 격려했다.
매년 대대와 15개 지역 예비군중대 및 8개 직장중대는 사단에서 예비군 업무 감사를 받는다. 이 결과로 해당 대대와 예비군 중대장들을 평가하고 보직도 새롭게 조정되어 매우 중요한 감사이다.
그런데 장석우 대위가 전출간 뒤에 치뤄진 감사 결과가 대대를 삐꺽거리게 만들고 있다. 감사평이 “말로만 듣던 청원대대가 아니다”라는 혹평으로 대대장 후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대대장 근무 10개월의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두기 위해서는 더욱 분발해야 된다. 너무도 치욕스러웠지만 어쩌면 신께서 자만심에 빠질 수 있었던 필자에게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책찍을 가하는 것 같았다.
군에서 중요 보직 인사시기인 10월이 다가오자 필자의 작은 노력과 탁월한 본인의 능력으로 사단 동원참모로 보직되어 능력을 인정받은 뒤에 사단 작전참모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던 한동주 중령(삼사14기, 예비역 중장)이 갑자기 삼사관학교 교무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21)] ‘추락에서의 회생을 격려하는 전우애로 업무수행에 탄력받아(하)’ 참조)
바로 그 뒤를 이어 청주 대대장을 마치고 사단 정보참모로 보직된 윤경식 중령(학군19기)이 작전참모로 취임했다. 항간에 사단장이 학군장교라 배려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번 인사로 지(智)장, 덕(德)장, 용(勇)장보다도 더 출중한 장군은 운장(運將)이었다는 말이 증명됐고, 급하게 떠나는 한 중령만 아쉬웠다.
그나마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것은 이병우 연대장이 대대장들과 식사를 할 때에 먼저 돈을 지불하고, 본인에게도 선물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강조하며, 실제로 추석에 대대장들이 보낸 선물을 모두 돌려보내는 등으로 타인들과 비교되는 청백리(淸白吏)적인 모습에서 존경심이 스며들었다.
한편 육사 동기생들은 벌써 대대장을 끝낸 뒤에 사단 참모 보직도 마치고 있었다. 인접 특전여단 작전참모로 근무한 김현수 동기생이 이미 합참 주요 직위로 보직을 받아 이동했다.
필자는 그들보다 22개월 늦게 시작된 대대장 근무로 앞서가는 동기생들에게 박수만 보낼 수밖에 없었고, 단지 교통사고 후유증 재활치료 기간으로 지연되어 동기들과 나란히 달릴 수 없음이 아쉬웠다.(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