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실록, 초현실 비상계엄 (5)] 윤석열과 전두환, 모의재판에서 무기징역 선고?

민병두 입력 : 2025.02.23 07:04 ㅣ 수정 : 2025.02.2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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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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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사진편집=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갖췄다면 꿈에서도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이 계엄설을 유포할 때마다 국민들이 잘 믿을 수 없게 만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로 그가 퍼트린 무용담을 들 수 있다.

 

윤석열은 2021년 9월19일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1980년 5월 초 서울대 교정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나는 그때 재판장으로, (반란) 수괴로 기소된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실권자였던 전두환을 결석으로 (처리)해가지고 무기징역 선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때는 전두환이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하기 직전이었다. 전국의 모든 대학들에서 매일같이 독재정권타도를 외치는 집회시위와 철야농성, 문화제가 있던 시기였다. 경찰의 교내 진입이 어려워서 대학은 해방구 같았다. 외양만 보면 대학은 평화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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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12일자 '대학신문'

 

서울대 학보인 ‘대학신문’ 5월12일자에 따르면 5월8일에 법대 경영대 음대 학생들이 철야토론을 벌였다. 이날 문화행사 모의재판도 열렸다. 그가 전두환에게 사형도 아니고 무기징역을 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판결이었다. 당시의 실제 상황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갑자기 윤석열이 엄청난 민주투사이고 미담으로 회자되었다. 

 

윤석열은 계엄군을 피해 다녔다고 회고했다. 그는 “5월17일 보안사령부에 근무하는 먼 친척이 집에 전화를 걸어 ‘석열이를 빨리 피신시키라’고 했다”고 언론인터뷰에서 밝혔다. 5월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가 됐는데 먼 친척이 계엄에 관한 그런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도피를 권했다고 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적 기억에 배치된다.

 

야당과 재야는 신군부가 도발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학생운동 쪽에 자제를 요청했다. 역사적 비판을 받는 서울역 회군도 이런 배경하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김대중 등 정치인, 한완상 등 재야인사, 그리고 전국의 총학생회장은 그날 밤 이런 도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못한 채 모두 잡혀가거나 가택연금되었다. 그런데 윤석열만이 이를 알고 사전 도피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명수배가 되지도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자 외가가 있던 강릉에 가 있었던 정도였다고 본다.

 

예능프로의 위력이 커서인지 광주 사람들 조차도 그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가 2021년 7월 17일 광주를 방문하여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참배했을 때 5.18민주화운동 구속자가 “법이 바뀌어 수배자나 단순 조사를 받은 사람도 유공자로 재심의하도록 했다”며 유공자 신청을 하라고 하자 윤석열은 웃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겠다고 수차례 약속했지만, 결국 5.18정신을 짓밟는 비상계엄을 발동했다.

 

그의 본심은 한 달 후에 드러났다. 10월20일 국민의힘 부산 해운대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테타와 5.18을 빼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왜 그러냐? 맡겼기 때문이다. 이 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 관리를 해보았기 때문에 맡긴 거다. 그 당시 정치했던 사람들이 그러더라 ‘국회는 잘 아는 너희가 해라’며 웬만한 거 다 넘겼다”

 

파문이 크게 일었다. 내란으로 권력을 불법적으로 찬탈했기에 전두환이 행정수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2.12 쿠테타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빼고서는 전두환을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빼고서 전두환을 평가한다는 발언은 그의 역사관과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유태인 학살을 제외하고 히틀러의 아우토반 건설을 재평가하자는 얘기를 한다면 어떻게 보겠는가. 윤석열이 극우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한다고 하는데, 일부에서 전두환 재평가를 주장하는 것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커지자 윤석열은 해명에 나섰다. “어제 제가 하고자 했던 말씀은 대통령이 되면 각 분야 전문가 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해서 제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해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지 않고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능력과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정을 시스템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입니다....” 

 

만기친람하지 않고 인재를 활용한 역대 정부의 사례는 많다. 다른 정부의 예를 들면 된다. 그가 책을 읽지 않고 ‘5공화국’ 같은 드라마에 빠진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는 이같은 해명과 달리 대통령이 된 후 늘 만기친람을 했다. 국회는 국회를 잘 아는 국회의원들이 해라며 맡기지도 않았다. 12월3일 비상계엄을 발동하고서는 군과 경찰에 직접 수시로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작전 지시도 했다. 사람들에게 인지된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으려다 보니 윤석열과 전두환 얘기가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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