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空軍) 이야기 (91)] 방공유도탄여단장① 대대장을 마친 후 8년만에 여단장으로 부임
최환종 전문기자 입력 : 2023.02.02 09:31 ㅣ 수정 : 2023.02.02 09:31
주변 지역은 대대장 시절과 변함 없었지만 대대는 해편돼 여단과 중대 간의 대대를 해편한다고 수평적 의견교환 될까?
[뉴스투데이=최환종 전문기자] 장군 진급반 교육의 마지막 과정은 해외 견학이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 인원을 나누어서 견학을 갔고, 필자는 러시아 견학을 지원했다.
10여 년 만에 방문한 모스크바는 공항부터 많이 달라져 있었다. 10여 년 전의 모스크바 국제 공항은 건물이나 내부 시설이 매우 열악했었는데, 마치 예전의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때가 5월경으로 월드컵 축구가 진행되던 때였고, 건물 내부는 냉방이 안되어서 무척 더웠다. 입국 심사 시간도 꽤 오래(2~3시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때 도착한 모스크바 국제 공항은 현대적이고 깔끔한 건물로 바뀌어 있었고, 관용여권을 가진 우리 일행은 입국심사대의 외교관 통로를 통하여 간단한 절차를 거쳐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에서 무관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공항 밖에 나와보니 이미 해는 졌고, 날씨는 쌀쌀했다(그때가 11월 하순이었다). 러시아의 겨울(눈과 추위)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러시아에 머물렀던 기간에는 그렇게 춥지도 폭설도 없었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잠깐 눈보라가 휘몰아쳤을 뿐, 기대했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다음날, 주러시아 한국 대사관에 가서 대사관 측의 일반현황 브리핑을 들었다. 10여 년 전에는 중령 신분이라 이런 자리가 없었는데...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모스크바에 있는 오래되고 유명한 건물들(러시아 정교회 성당 등)을 둘러보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1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성바실리 성당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모스크바의 각종 유적지를 둘러본 우리 일행은 다음 행선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도시로서, 1703년 페트로파브로프스크 요새 건설을 시작으로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탄생하였다고 한다.
수많은 섬과 운하들이 3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된 ‘러시아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리는데, 에르미타주 박물관,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 카잔 성당 등은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과 함께 몇 번을 봐도 다시 보고 싶은 그런 건물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면서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끝으로 약 일주일 간의 러시아 견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며칠 후에 있을 여단장 취임과 이사를 앞두고 개인 신변정리를 했다.
12월 초의 어느 날, 아내가 이사 준비를 하는 동안 필자는 여단장으로 부임할 제 0 방공유도탄여단으로 향했다. 여기는 필자가 대대장 시절에 근무하던 곳이다(당시 여단 본부 지역에 대대본부가 같이 있었다). 여단장 취임 전날 여단본부에 도착한 필자는 이임할 여단장과 차한잔 하면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당시의 여단장은 필자의 2년 후배로서 선이 굵은 장교다. 인수인계를 하면서 그동안 그 후배가 어떻게 부대를 지휘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대대장을 마친 후 8년여 만에 온 여단본부와 그 주변 지역은 대대장 시절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다만 그동안 공군본부 차원의 편제 조정이 있어서 대대가 해편되어 없어진 상태였다(지금은 대대 편제가 다시 복구되었다).
여기서 잠시 대대가 해편된 것에 대해서 설명한다(정말 오래된 이야기이므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참모총장의 개념 없는 지시 한마디에 아무런 전투실험 없이, 적절한 대안 없이 조직에 함부로 손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대대 해편은 필자가 대대장을 마친지 1년 정도 후에 공군본부의 ‘방공포병 조직의 슬림화’라는 명분으로 시행되었고, 검토 단계부터 문제점이 많이 예견되었다.
당시 공군 참모총장의 지시로 실시된 ‘방공포병 조직의 슬림화’는 ‘여단-대대-포대’로 되어있는 방공포병 편제에서 방공포병 대대를 해체하여 방공포병 지휘단계를 단순화하고 해체한 대대본부의 병력을 유도탄 포대로 할당하여 유도탄 포대를 보강한다는 논리로 편제 개편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공군의 비행단 편제는 ‘비행단(여단급 부대임)-전대(戰隊, 대령급 부대)-대대-중대’로 되어있어서 편제로만 보면 방포사의 여단 편제와 유사한데 유독 방포사 편제만 조정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시기에 방포사와 유사한 규모의 부대는 부대장의 지휘폭이 너무 넓다는 이유로 중간 단계 부대(대령급이 지휘하는)를 창설했다.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었다.
아무튼 대대를 없애는 과정에서 그에 해당하는 외국군의 사례가 제시되기도 했다. 사례로 제시된 나라의 경우는 여단 예하에 대대가 없고 중대급 부대(방포사의 경우 유도탄 포대)만 편성되어 있고, 여단과 중대 사이에 중간 제대가 없으므로 신속한 의사결정과 지휘체계의 단순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지휘체계의 단순화’ 측면을 보았을 때 이 사례는 얼핏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제시된 사례는 문화적인 차이가 고려되지 않았다.
그 나라는 동양의 국가가 아닌 서양의 국가이고, 그 나라 국민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같은 ‘수직적 문화(사고방식)’라기 보다는 ‘수평적 문화(사고방식)’ 분위기 때문에 그런 조직 운영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그 나라의 특성에 맞는 또다른 전술적인 고려 차원에서 그렇게 했던가.
우리 문화에서 ‘위의 외국군 사례와 같이’ 소령 부대장과 장군 부대장 사이에 수평적인 의견 교환이 가능할까? 요즘 세대의 사고방식이 우리 세대보다 많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우리의 정서상 우리 軍에서 아직은 빠른 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도 여단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소령 포대장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많이 느꼈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 여단장, 前 순천대학교 우주항공공학부 초빙교수,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