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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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윤석열은 2000년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승리와 민주당의 패배를 믿었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했다. 조국 법무장관의 사퇴, 울산시장선거 기소로 민심이 문재인 정부에서 떠날 것으로 예상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울산시장 선거 공작 사건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는 중대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보다 훨씬 가벼운 선거 개입 문제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직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하면 탄핵 소추 대상이 된다”고 바람을 잡았다. 훗날 윤석열의 멘토가 된 신평 변호사는 ”민주당 총선 참패하면 탄핵 소용돌이“라고 응원했다.
그 즈음에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윤석열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윤석열은 엄정한 수사, 그 다음에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수사 이런 면에서 이미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석열의 기세에 눌린 듯 했다. 윤석열이 경향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나의 충심은 변함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내가 악역을 맡았다“(2019년 12월 6일)라고 흘린 것에 말려든 것일까?
총선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3월 초 공적마스크 유통이 원활하게 되면서 시민들이 정부에 대해 신뢰를 하고, 현금 지원이 개시되면서 여론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180석), 미래통합당의 패배(103석)였다. 한 달 사이에 전세가 뒤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 후 대선 출마를 기대했던 윤석열은 이 결과를 믿기 싫었다.
당시의 상황을 그가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토론회(2021년 9월16일)에서 "검찰총장 시절 4·15 총선 결과를 지켜보고...종로구에서 동별로 비율이 비슷하게 나온 거나 또는 관외 사전 투표 비율이 일정한 것 등에 관해 통계적으로 볼 때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검찰에 있을 때부터 선거 사건, 선거 소송에 대해 쭉 보고받아보면 투표함을 개함했을 때 여러가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2025년 2월 4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에서)고 했다.
윤석열은 검찰총장 시절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과 중국의 유착설’을 들었다고 한다. 민주연구원이 양정철 재임 시절인 2019년 7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와 베이징에서 교류 협약을 맺었는데, 이때 부정선거 기술이 한국에 넘어왔고 중국 해커도 영입됐다는 취지다. (시사IN 2025년 2월12일) 12.3 계엄령을 발표하면서 느닷없이 체포 및 수거 대상에 양정철이 포함된 배경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윤석열은 이때부터 부정선거음모론에 빠져들었다. 그가 이긴 선거에 대해서는 부정선거음모를 대입하지 않고, 그의 잘못으로 인해 패배한 선거에는 대입했다. 정작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후보들 중에 그 누구도 22대 총선의 중국개입설이나 중국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한 명도 없다.
2020년 총선을 전후해 윤석열에 대한 정부 여당의 공세도 시작되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고발 등으로 윤석열 일가를 정조준했다. 윤석열은 탈원전 정책을 수사하는 것으로 맞공세를 펼쳤다. 문재인 대통령을 잠재적 피의자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윤석열의 발언 강도도 강해졌다. 2020년 8월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론적인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뮨재인 정부를 겨냥하고 보수층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다.
그러던 중에 2020년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윤석열이 폭탄발언을 했다. ‘대선에 출마를 할 것이냐’고 묻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퇴임 후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지 생각해보겠다”며 사실상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이미 유력 대선후보로 등극한 그가 말한 봉사가 정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추미애 법무장관이 칼을 뽑았다. 판사사찰문건 작성 논란, 국정감사 정치 발언 등을 문제삼아서 직무 집행정지 명령을 하고 징계를 청구했다. 징계는 정당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부당한 징계에 맞서 저항하는 정의로운 검사’로 코스프레를 했다. 부담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사표를 낼 것을 압박했다.
추미애는 언론인터뷰에서 “내가 사퇴하면 윤석열도 사퇴할 줄 알았다”라며 윤석열이 눈치도 없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은 2021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윤석열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윤석열을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평했다. 윤석열의 팔을 들어준 것이다.
윤석열은 침을 뱉고 등에 칼을 꽂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해 3월3일 총장직을 그만두기 직전 대구고검을 방문했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대구와는 아무런 혈연이나 지연 관계가 없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를 상징적으로 선택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갖은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며 순교자처럼 행세했다.
그리고 3월4일 사퇴했다. 윤석열은 대검찰청 앞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광경을 본 이들은 퇴임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대선 출사표를 던지는 것 같다고 했다. 검찰쿠테타로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좌절을 맛 본 윤석열은 정치라는 제3의 길을 통해서 그가 평생 갖고 싶었던 대권을 향해 이렇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