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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0)

실전적 민관군 통합훈련 강화를 유발시킨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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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4.08.20 13:59 ㅣ 수정 : 2024.08.20 13:59

전략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전장군기 문란, 군수지원, 전반적인 훈련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분석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을 재현하는 실전적 민관군 통합훈련인 ‘Remember 9.18’을 매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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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작전중 전사한 오영안 대령, 서형원 대위, 강민성 상병[사진=동영상캡쳐]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안타깝게도 작전 종결 직전인 1996년11월 5일 오영안 준장(당시 대령)이 전사한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인제지구 기동타격대장으로 출동한 서형원 소령도 전투중 무장공비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따른 대침투 작전간에 전사한 12명의 전우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오영안 준장(제3군단 303기무부대장, 3사4기), 서형원 소령(제3군단 제703특공연대 정보참모, 학군24기), 홍동진 대위(68사단소속, 10월10일 강릉, 학사21기), 이병희 상사(제3공수특전여단소속, 9월21일 강릉), 이동찬 하사(제702특공연대소속, 11월5일 홍천), 강민성 병장(12사단51연대 수색중대 소속, 11월5일 인제), 강정영 병장(11사단13연대 소속, 9월22일 강릉), 김대영 병장(27사단78연대 소속, 9월25일 강릉), 최태웅 병장(36사단소속, 11월4일 홍천), 한대성 병장(12사단소속, 9월 29일 인제), 송관종 상병(2사단노도부대 31연대 2대대 7중대 소속, 9월21일 강릉), 표종욱 상병(2사단노도부대 소속, 10월22일 양구)’ 

 

이밖에 경찰·예비군 2명과 민간인 4명이 희생되었는데 민간인 안상영(50세, 남)은 9월23일 출입금지 지시를 어기고 매봉산에서 송이버섯 채취 중 공비로 오인해 쏜 국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김용수(45세, 남), 이영모(54세, 남), 정우교(67세, 여)도 10월8일 오대산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중에 남성 2명은 공비의 총에 맞아 살해됐고 할머니는 둔기류로 머리를 맞은 뒤 목이 졸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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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무장공비 침투지역인 안인진리에 설치된 강릉통일공원 모습[사진=동영상캡쳐]

 

■ 이재관 대장(육사 21기)이 작전중이던 10월 1군사령관 취임, 작전 종결시키며 문제점 보완 및 실전적 민관군 통합훈련 강화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하고 우리 군의 대침투작전에서 여러가지 보완점이 식별되었는데 필자가 분석하기에는 전략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에 언론에서는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덕분에 모두 소탕되었지만 잔존한 핵심 정찰조는 북한으로부터 아군 작전상황을 실시간 접수하여 손쉽게 아군 작전지역을 이탈하며 장기간 저항을 할 수 있었다. 만약 군과 언론이 협조하여 보안을 유지하며 역정보를 흘리는 등 전략커뮤니케이션을 잘 운영했으면 작전을 조기에 종료할 수도 있었다.

 

이밖에도 작전 중 전장군기 문란, 특히 매복지에서 적에게 노출과 아군 오인 방지하면서 식사, 식수 및 탄약 보급을 하는 군수지원, 아군에 대한 수하 미흡 및 오인사격, 민간인 출입 통제의 소홀함과 병력 이송시 헬기 레펠 경험이 부족하여 낙상으로 인한 부상자를 여럿 낸 경우처럼 아군의 전반적인 훈련 부족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또한 전투복용 포제 계급장색의 변경을 이전부터 미군의 저시인성 계급장을 참고로 검토했지만 군에서는 필요성도 실감하지 못했고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작전에서 아군이 시계가 어두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총상으로 인한 피해가 컸던 원인이 밝은 색의 계급장 때문이었고 늦게나마 현재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군의 잘못은 아니지만, 장난이나 거짓·오인 신고도 군 작전을 어렵게 했다. 9월20일 새벽 5시 경북 봉화에서는 무장공비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돼 군경이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벌였지만 보상금을 노린 허위신고였다. 이후 각 경찰서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의 간첩 관련 신고가 잇따랐으나 대부분 신빙성이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내부에선 대북 강경파가 득세했고, 보수 언론들은 이를 앞장서서 부추겼다. 이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대북경협을 동결하고 경수로 부지 인수와 서비스 의정서의 서명을 유보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경수로 지원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적 관점에서 정부는 같은 시기 막 시작되고 있었던 4자 회담과 관련해서도 북한이 4자 회담 설명회에 참석한다 해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북측 역시 경수로 지원은 제네바 합의 사항으로, 이를 파기할 시 '핵 동결 약속' 역시 파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남북이 강경대치로 나가자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북에 대해서는 공식적 사과는 아니더라도 '유감'이라도 밝히도록 종용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2월29일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을 통해 영어와 한국어로 '유감'이라며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했는데, 재야사학자 임영태에 따르면 이 메세지는 한국보다 미국을 향한 간접적 메세지라고 보았다.

 

군부대도 개편되는 진통을 겪었다. 사건 당시 해당 해안지역을 책임지던 부대는 68동원사단이었는데 8시에 출근해서 6시에 칼퇴근하면서 흔히들 파라다이스 사단이라고 하는 별명이 있었으나 이 사건 후 해당 지휘관들은 보직해임되었다. 

 

해안경계 사각지대의 문제점, 수색작전의 미비점 보강을 위해 1998년 11월30일 부로 상비사단인 23보병사단이 창설되면서 기존 동원사단인 68사단은 해체되었다. 최근에는 23보병사단도 23경비여단이 창설되면서 해체되었다.

 

현재는 해군력이 보강되어 연안함대인 1함대에서 충분히 해안경계를 커버 가능하며, 2014년부터 강원도에서 철거 계획을 밝혔고 동해안 철책은 철거 되었다. 그러나 작전 상 철거가 불가한 곳들에는 계속 설치되어 있다.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오면 사건을 잊지않기 위해 강원도 지역 예하부대는 침투사건을 재현하는 실전적 민관군 통합훈련인 ‘Remember 9.18’을 매년 실시한다. 특수부대가 대항군을 맡고, 이들이 목표한 지점까지 이동하기 전에 발견, 차단선을 구축, 봉쇄하는 훈련이다.

 

한편 필자가 작전보좌관 시절에 사단장으로 모셨던 이재관 대장(육사 21기)이 작전중이던 10월에 27대 1군사령관으로 취임해 작전을 종결시켰다. 

 

이 사령관은 온화한 성품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꼼꼼한 스타일로 군사령관 재임시 예하 전방초소(GP)를 모두 둘러보는 진기록을 남기며 문제점 해결을 위해 노력하여 실전적 민관군 통합훈련을 강화시켰다.([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46)] ‘살벌한 분위기의 전입신고 후 피어난 존경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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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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