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의 경제학 (下)
수년간 한국경제의 걸림돌을 이야기할 때 늘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가계부채 문제이다. 특히 최근에는 가계의 소득 여건이 크게 나아지지 못한 가운데 금리 수준은 이전보다 높아지면서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계부채는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그리고 가계부채를 어떤 용도로 활용하는지에 따라 몸에 좋은 약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해로운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과 같다. 이 글에서는 가계부채의 경제학적 의미와 가계부채의 두 얼굴을 살펴보고, 가계부채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통계들과 그 차이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와 실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범식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한국경제의 가계부채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먼저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기준으로 가계부채 규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2024년 1/4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올해 1/4분기말 가계신용 잔액은 1882조8천억원이다. 이중 가계대출이 1767조원으로 93.8%, 재화나 서비스 판매자가 제공하는 외상거래인 판매신용은 115조8천억원으로 6.2%를 차지했다.
• 한국경제의 가계부채 수준, 이미 임계치 상회
1/4분기말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어났지만, 전분기보다는 0.1% 줄었다. 가계대출은 전년동기 대비 1.6% 증가했고, 전분기와 비교하면 보합 수준이다. 판매신용은 전년동기 대비 1.1% 증가했지만, 전분기보다는 오히려 1.9%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가계신용잔액은 여전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나고 있지만, 전분기보다 점차 줄어들면서 증가세가 다소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계대출의 60.9%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율이 전년동기 대비 5.8%, 전분기 대비 1.2%로 다른 구성 항목보다 여전히 높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편 경제규모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선진국 대비 아직도 높은 수준이다. 2023년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3.5%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지난 6월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년을 2015년에서 2020년으로 개편한 것을 반영한 결과이다. 기준년 개편 이전에 2023년말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4%였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2023년말 우리나라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5%로 44개 주요국 전체 순위에서 스위스(127.8%), 호주(109.7%), 캐나다(102.3%)에 이어 4위로 나타났다.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가계부채 비율의 임계치(threshold)에 대한 정확한 기준값은 없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과다 가계부채 비율의 임계치는 80% 내외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으면 성장세가 둔화되고 경기침체 발생 확률이 증가한다”고 말한 바 있다.
WEF(2010)는 가계부채 비율의 임계치를 GDP 대비 75% 수준으로 보았고, 스테판 체체티(Stephen G Cecchetti) 등(2011)은 “부채의 실제 영향(The real effects of debt)”이라는 논문에서 가계부채의 임계치를 GDP의 85%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은 과다 부채비율의 임계치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 가계부채의 연착륙 위한 전방위적 노력 필요한 시점
이번 기준년 개편 결과에 따른 가계부채 비율이 100% 이하이지만, 여전히 선진국 평균(71.8%)보다 크게 높고, 과다 가계부채의 임계치를 넘어선 수준이다. 이러한 사실은 가계부채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시급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올해 6월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2022년 하반기 이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3월말 가계대출 연체율은 0.98%로 2023년 9월말 대비 0.09%p 상승했다. 이러한 연체율 상승은 주로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채무상환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더 큰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안정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가 은행권 전반의 위기를 초래할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위기는 항상 예기치 못한 곳에서 촉발할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정부는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되지 않도록 각계와 전방위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