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129)] 미국이 무역장벽으로 짚은 ‘절충교역’, FMS 방식에 한해 미적용 공식화 검토 필요
전문가 의견 나뉘고 법령상 명확하지 않아 이런 상황 유지할 경우 국가이익에 도움 되지 않아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정부조달에 있어 절충교역(Offset)을 무역장벽이라고 거론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산기술보다 현지 기술과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구해 왔다”며 “방산계약 가치가 1000만 달러를 초과할 경우 외국 계약자에게 절충교역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절충교역은 외국에서 무기나 군수품, 용역 등을 구매할 때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이전이나 부품제작 수출 또는 군수지원 등을 받아내는 교역 방식으로 전 세계 130여개 국가에서 활용 중이다. 우리나라는 1000만 달러 이상을 구매할 때 판매국에 30∼50%에 해당하는 절충교역 가치를 이행하도록 요구한다. 수입할 때 판매국에 적용하는 ‘수입절충교역’과 수출할 때 구매국으로부터 적용받는 ‘수출절충교역’으로 구분된다.
■ 방사청, 최근 FMS 방식에 미적용…“적용하지 않으면 손해” 의견도 많아
미국 정부는 과거에도 다양한 경로와 방식을 통해 한국의 수입절충교역 문제를 계속 제기해왔으나 이번처럼 USTR이 직접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상호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들고나온 것이라거나 현재 미국과 체결을 논의 중인 국방상호조달협정(RDP-A)에서 절충교역을 제외하기 위함이라는 의견과 급성장하는 K-방산으로부터 미국 방산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K-방산 절충교역의 최근 동향과 과제’에 따르면, 2016∼2020년간 절충교역 획득가치는 8억 달러 수준으로 2011∼2015년간 획득가치인 79억 9000만 달러의 10%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렇게 하락한 이유는 수입물량이 감소한 데다, 수입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무기가 정부 간 협상을 통해 계약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 방식에 우리나라가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절충교역 업무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미국은 절충교역을 부정하는 나라여서 한국이 FMS 방식의 무기구매를 하면서 절충교역을 적용하면 이로 인해 자국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모두 포함해 우리 정부와 계약할 때 사업비로 제안한다”고 말했다. FMS 방식은 미국 정부가 사업비를 제안하면 가격에 대한 협상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사업을 수행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한때 절충교역 업무를 담당했던 전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고위관계자는 “FMS 방식에는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도 마땅하다”며 “100억원 주고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120억원이나 주고 구매하는 형국이어서 정부에 실질적 손실을 초래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방산 전문가들은 “미국 무기는 대부분 FMS 방식으로 구매하고 있어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으면 나라가 상당한 손해를 보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 과거 선진국 기술이전으로 상당한 도움 받았으나 지금은 부담으로 작용
이런 시각의 이면에는 한국의 기술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 절충교역을 통한 기술이전으로 방산업체들이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AI 등이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돼 현재 상당한 수주 잔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다. 하지만 이제는 선진국들과 경쟁하는 관계여서 기술이전은 생각할 수도 없다. 따라서 FMS 방식에서는 절충교역의 효용이 끝났으며, 오히려 부담으로만 작용하는 상황이다.
현행 방위사업법 시행령 제26조(절충교역의 기준) 제1항2의2호에는 ‘외국 정부와 계약을 체결해 군수품을 구매하는 경우 절충교역을 추진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절충교역지침 8조에는 시행령 제26조 제1항2의2호에 대해 선행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방위사업 추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FMS 방식에 절충교역을 적용할 수도 있고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5년간 방사청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미국과 FMS 방식의 대형 사업에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과거 5년에 비해 적용 비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그럼에도 법령상 FMS 방식에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명시한 것이 아니어서 미국이 인식하기에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절충교역을 제대로 적용하지도 못하면서 이번 USTR 보고서처럼 무역장벽이란 지적만 받고 있다.
■ FMS 방식 미적용 명문화해 상호관세 협상 카드로 활용할지 결정해야
USTR 보고서는 문제가 있으면 구체적인 지적을 하는데, 한국은 필리핀, 튀르키예,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UAE, 인도,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등 8개국과 함께 언급만 했을 뿐 문제를 지적하지는 않았다. 이중 튀르키예,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절충교역을 무역장벽이라고 거론해왔으나 아직 바뀌지 않았다. 미국이 절충교역을 무역장벽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 나라에 폐지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송방원 우리방산연구회 회장은 “RDP-A 논의 간에 절충교역이 이슈가 되고 있다”면서 “이참에 절충교역을 빼주자는 말이 나오는데, 절충교역을 포기하고 RDP-A로 국내 방산시장을 개방하면 한국 방산시장을 그냥 미국에 갖다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고, 장원준 전북대 교수도 앞서 언급된 2023년 산업연구원 보고서에서 “미국의 FMS 무기구매 사업에 대한 절충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FMS 방식에 대한 절충교역 적용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고 법령상으로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는 데다, 실제로 적용하더라도 실익이 없는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동안 방사청이 주도해온 수입절충교역은 시효를 다했다”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산업협력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는 의견까지 제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조만간 우리 정부는 미국과 상호관세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절충교역 문제를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국가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차제에 방사청이 나서 전문가들과 실익을 정확히 따져본 후 FMS 방식에도 확실히 절충교역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적용하지 않는 것을 명문화해 협상 카드로 활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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