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한 민생연대 전문위원 “기업의 주인은 종업원...선례와 시간 필요”

[뉴스투데이=최정호 기자] 이동한 경제 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이하 민생연대) 전문위원은 기업의 친족 승계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종업원들이 대주주의 지분을 매입해 경영의 주체가 되면 기업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대주주가 자식에게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줬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 문제들로 기업 가치 하락뿐만 아니라 사회적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이 전문위원의 주장이다.
<뉴스투데이>는 18일 이 전문위원을 만나 제약 업계의 가업 승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가장 먼저 다룬 주제는 제약 업계가 오너 3‧4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면서 발생한 폐해에 관해서다.
최근 일부 제약사는 상속세 납부에서 발발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싸움으로 기업 가치 하락과 인력 손실을 경험했다. 또 다른 제약사 오너 2세는 개발 중인 신약의 임상시험이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공시 이전에 지분을 매각해 논란이 됐다. 이외에도 직원을 대상으로 불법 임상시험을 진행한 오너 2세가 가업 상속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형기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대표이사 자리에 앉기도 했다.
이 전문위원은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생산하는 곳이며 일터가 되기도 한다”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부정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유능한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라면서 “설립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기업을 세우고 경영했지만, 그 자녀까지 유능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이 전문위원은 종업원 소유제도를 주장하고 있다. 종업원 소유제도는 말 그대로 기업을 오너가 아닌 종업원들이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오너가 고령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기업을 친족에게 물려주는 게 아니라 종업원들에게 지분 매각을 통해 넘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오너가 지분을 매각할 시 세제 혜택을 받게 해주고 종업원들에게는 매입에 따른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이 대주주의 지분을 재직 기간 내 보유하게 되면 급여 외에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또 정년퇴직으로 보유한 주식을 회사에 자동적으로 매각하기 때문에 퇴직금과 별도로 꾀 큰돈을 받을 수 있다.
이 전문위원은 “종업원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있어 기업에 대해 애정이 생겨 노동력과 효율성이 높아져 기업은 더욱 성장하게 된다”라면서 “오너일가의 경영 참여로 발생하는 병폐가 줄어들어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이득이 된다”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오너 일가의 기업 상속과 경영이 분리되지 못하고 있다. 오너 일가의 경영 세습이 자연스러운 게 돼 버렸다.
통상적으로 제약사의 경우 오너는 회장 자리에 있고 경영은 R&D 전문가와 영업통이 공동대표를 맡아 해왔다. 하지만 오너 2‧3세가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입사해 전무 또는 부사장직을 맡고 세습 준비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종업원소유인증단체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미국 내 6533개의 기업 대주주들이 종업원들에게 보유 지분을 매각해 ESOP(우리사주)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중 5000개 이상의 회사는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 소득세를 면제받았다. 소득세 면제 기준은 매각 후 종업원 소유지분율이 30% 조건을 충족하고 있을 때다. 현재 미국에서 150만 명이 종업원 소유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대주주가 종업원들에게 지분을 매각할 경우 지난 2014년부터 소득세 감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종업원 보유 지분율을 50%로 규정하고 있어 미국보다 엄격하게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 같은 EOT(종업원소유권신탁)가 제도화된 지 8년 만에 1030개 기업의 대주주들이 종업원들에게 보유 지분을 매각했다. 현재 20만 명이 종업원 소유 기업에 속해 있으며 연간 300억파운드(56조2758억원)의 GDP를 창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우리사주(ESOP‧EOT)제도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종업원들의 지분 보유량이 미미하거나 보유 기간도 짧다. 또 근로자 부담으로 보유하는 비중이 커 재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우리사주 보유로 종업원들이 누리는 혜택이 적다는 얘기다.
이 전문위원은 “우리사주제도는 제도적으로는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종업원(우리사주조합)의 경영(등기임원) 참여가 일방적으로 배제돼 있다”면서 “대주주가 지분을 종업원들에게 매각할 시 적절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사주제도가 활성화되려면 종업원이 상당량의 주식을 보유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상 취득을 포함한 다양한 취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전문연구위원은 미국의 퍼블릭스(Publix)를 성공한 종업원소유 대표 기업으로 소개했다.
퍼블릭스는 미국 전역에 1394개의 매장(퍼블릭스 슈퍼마켓)을 보유하고 있다. 퍼블릭스는 23년째 포춘지가 뽑은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자발적 이직율은 5%로 동종 업계 65%보다 훨씬 낮다. 단 한 번 해고도 없으며 현재 시장 가치는 500억달러(72조4550억원)에 이른다. 장기 근속한 종업원의 경우 100만달러(14억4910만원)의 자산을 보유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퍼블릭스는 지난 2022년 79조8966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6조9229억원의 영업이익과 4조243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최근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경우 지난 2023년 6조9314억원의 매출과 2조217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순이익은 –5742억원이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2015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됐다. 당시 종업원들이 원하지 않은 강제 매각이었다. 매각 후에는 불안정한 경영이나 실적 금감, 노동환경 악화로 이어졌다.
기업승계는 장기간 지속하는 모든 기업이 겪어야 할 숙명적 과정이다. 현재 우리나라 CEO는 고령화로 기업의 승계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됐다.
이 전문위원은 “기업의 성장이나 지속 가능성과 고용유지,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책임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기업 승계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