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조선·SMR '두 토끼'로 미국 공략 가속페달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정기선(43·사진)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HD현대가 조선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두 마리 토끼'로 미국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선다.
이는 미국 정재계에서 한국 조선업 기술 경쟁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미국 조선 시장에 적극 진출하려는 HD현대의 글로벌 전략과 맞닿아 있다.
또한 SMR은 300메가와트(㎿e·전력 단위) 이하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작은 원자로다. SMR은 대표적인 친환경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데다 SMR을 동력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SMR 추진 선박'에도 탑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업 최강자 HD현대는 기존 조선업은 물론 차세대 에너지 시장도 함께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를 위해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 조선시장과 SMR 사업을 모두 확보하기 위해 최근 미국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 대표와 만나 AI조선소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공유한 데 이어 빌 게이츠 테라파워 대표와 회동해 SMR 부문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 팔란티어·美 해군사관학교 방문…조선 협력 강화와 방산 부문 논의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0∼1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 휴스턴에서 열린 '세라위크 2025'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세라위크는 세계 최대 에너지 콘퍼런스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과 각국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해 에너지 산업 현황과 미래를 토론하는 자리다. 이는 조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 사업을 전개중인 HD현대가 세라위크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수석부회장은 특히 조선 및 방산 부문 사업 기회 발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후 미국 조선업에 한국 도움과 협력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라며 "이는 HD현대 등 국내 조선업계가 미국 조선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 조선업을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번스-톨레프슨 수정법' 대신 동맹국에 자국 함정 건조를 허용하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 등이 발의돼 한국으로서는 유리한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미국과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협약을 맺어 거대 미국 조선시장을 공략할 준비 태세를 마쳤다. 미국 MRO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과 조선분야 협력은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라며 “차분하게 대응해 실익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가운데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7일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찾았다.
그는 미국 사관생도들과 환담에서 “대한민국은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이자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조선·해양 분야 혁신의 원동력으로 함께 할 것”이라며 “한미동맹은 희생으로 맺어져 수십 년 동안 강화돼 왔고 단순한 군사적 파트너십을 넘어 글로벌 안보의 한 축이 됐다. 도전 과제가 진화하면서 우리 협력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HD현대는 AI에 기반한 자율운항, 디지털 첨단 선박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세계 최정상급 이지스 구축함을 5척 건조해 한국 해군에 성공적으로 인도해 국가 안보 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앞서 6일에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대표와 만나 AI조선소 프로젝트 진행 상황 공유와 방산 협력 방안을 나눴다.
AI조선소는 HD현대와 팔린티어가 지난 2021년부터 추진 중인 '미래형 조선소(FOS)' 프로젝트다. FOS는 데이터, 가상증강현실(AR), 로보틱스, 자동화, AI 등 디지털 기술이 펼쳐지는 미래형 첨단 조선소다.
HD현대는 오는 2030년 FOS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인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를 건설하면 선박 건조 현장의 생산성을 30% 향상하고 선박 건조 기간도 30% 단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사는 방산 부문 협력이 한미 양국 안보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AI 기반 방산 솔루션은 향후 안보 전략에 중요 요소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관련해 HD현대는 팔란티어와 지난해 9월부터 무인수상정(USV) '테네브리스'를 공동 개발 중이다. 테네브리스는 내년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경하중량 14t, 전장(길이) 17m 규모 고성능 하드웨어(선체)와 팔란티어 AI 플랫폼을 탑재해 고도화된 AI를 적용할 예정이다.
■차세대 먹거리 SMR 사업 구체화…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 맞손
이번 정 수석부회장의 방미 일정 가운데 또 하나 눈길을 끈것은 테라파워와 맺은 SMR 사업 협약이다. HD현대는 미국과 협력 분야를 조선뿐만 아니라 원자력발전 사업으로 확대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HD현대는 지난 12일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테라파워는 지난 2008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설립한 SMR 개발업체다. 이 업체는 SMR 분야 선두기업으로 꼽히며 4세대 원자로 SMR의 소듐냉각고속로(나트륨 원자로, SFR) 설계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나트륨 원자로는 고속 중성자를 핵분열해 발생한 열을 액체 나트륨(소듐)으로 냉각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SMR 중에서 안전성과 기술 완성도가 높고 기존 원자로 대비 핵폐기물 용량도 40% 가량 적은 점이 장점이다.

HD현대는 나트륨 원자로 주기기 공급을 맡는다. 이에 따라 최적화된 제조 방안을 연구·도출해 초기 실증 프로젝트를 넘어 본격적인 상업화에 필요한 제조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번 협약은 앞서 지난해 12월 테라파워와 원통형 원자로 용기 공급 계약을 맺은데 이어 주기기 등 다른 설비 제작까지 협력 범위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HD현대는 2022년 11월 조선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을 통해 테라파워에 3000만달러(약 436억원)를 투자하며 인연을 맺었다.
HD현대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조선에 이어 SMR 제조 및 기술 분야에서도 입지를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SMR시장은 2022년 57억달러(약 8조3000억원)에서 2030년 68억달러(약 9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HD현대는 뚜렷한 실적 성장을 일궈냈다”라며 “그는 미래 기술 확보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관련 분야를 직접 챙기며 사업 진출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