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 실록, 초현실 비상계엄 (24)] 터지자 밀물같은 시국선언-시적 산문의 정수 경희대 선언문, 그리고 서울대의 반성문

민병두 입력 : 2025.03.14 08:32 ㅣ 수정 : 2025.03.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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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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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 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경희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와 연구자 226명은 2024년 11월 13일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로 시작하는 이 선언문은 ‘나는’이라는 1인칭 주어를 통해 윤석열 시대의 퇴행을 고발한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시적(詩的) 산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진해 김진희 민유기 교수 등의 집단 창작 결과인데 준비를 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하나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우리 이야기하자. 두 번째는 분노보다 앞서 부끄러움의 정서를 같이 나누자. 그렇게 하다 보니까 좀 격문이라기보다는 반성문 그런 문체가 되었다”(김진해 교수.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2024년 11월 18일) 그래서 울림이 더 컸다. (경희대 시국 선언 전문은 기사 끝에 별첨)

 

2024년 대학가 시국선언은 가천대에서 시작했다. 10월 28일 발표된 교수노조의 성명에서 “윤석열 정권이 말기 호스피스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호스피스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암담한 실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처절한 관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가천대 재단인 가천 길재단은 길병원을 운영해서인지 ‘호스피스 단계’라는 의학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가천대 교수들의 용기있는 시국선언이 발표되면서 한달여 사이에 전국 336개 대학 중에 100개 대학 가까이가 참여했다. 김용련 한국외국어대 교수(사범대)는 “교수 시국선언은 한국 현대사에서 더 이상 여지가 없을 때 터져나오는 지식인들의 종지부 같은 것이었다. 최근 교수 시국선언은 이전과 달리 시민사회 움직임에 견줘서도 빠르게 나오는 분위기인데,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어 향후 이 흐름이 집결되면 큰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수의 정치적 심장이라고 하는 대구 경북의 지식인들도 나섰다. 2024년 11월 26일 발표한 성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윤석열이 남은 임기를 다 채우면 우리 공동체는 회복할 수 없는, 참으로 심대하고 참담한 도탄의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윤석열을 거부한다. 국채보상운동과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의 도시, 이 우국의 땅 대구·경북의 지식인들은 윤석열에게서 더 이상 어떠한 가능성도, 일말의 희망도 기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위해 윤석열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

 

경북대 시국선언에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 당시 참여 인원 88명의 배가 넘는 179명이 서명했다. 

 

해외에서도 성명이 이어졌다. 2024년 11월 30일 미주 교수 및 연구자 236명은 윤석열의 하야를 촉구했다. “비록 지금 우리는 해외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지식인의 책무로서 조국의 정치 파행과 퇴락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4.19의 이승만이 될 것인가? 2017년의 박근혜가 될 것인가? 또 다시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회수해야만 하겠는가? 도도히 흐르는 민심의 강물을 거스를 권력은 없다. 대통령 윤석열은 하야하라!” 

 

서울대는 참여자 면에서 가장 많았다. 사회 곳곳에서 서울대 출신 지배 엘리트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그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성명은 반성에서 시작했다. 11월 28일 서울대성명에는 무려 525명이 동참했다. 단일 대학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윤석열의 모교라는 따가운 비판에 대답이라도 하듯 많은 이들이 동참했다. 정용욱 역사학부 교수는 “서울대에서 525명의 교수 연구자가 참여한 것은 서울대 시국선언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서울대 교수·연구자들은 국민과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 사죄와 통탄의 심정으로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촉구합니다. 서울대 교내 곳곳에 나붙은, 윤석열과 동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제자들의 대자보가 양심의 거울처럼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지성의 전당, 그 명예로운 역사의 흔적을 윤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공직자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울대가 교육과 연구에서 제대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치지 못한 채 ‘영혼이 없는 기술지식인’을 양산해 온 것은 아닌지 참담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없는 기술자’를 양산했다는 비판은 서울대의 존립 근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시국선언 발표 진행을 맡은 박배균 지리학과 교수는 “학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잘 드러내는 사례다. 서울대라고 하는 최고의 대학을 나왔던 사람을 대통령 시켜놨더니 개판이구나, 서울대가 그렇게 좋은 대학이 아니구나, 이런 것들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좋은 실증자료가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시국선언을 앞장서 준비한 정용욱 교수는 서울대 시국선언문이 반성문 형식을 빌게 된 배경을 “대학마다 추구하는 목표 혹은 지켜온 전통이 있는데 그것에 비춰봤을 때 너무 이례적인 사태라 다들 경악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혹시 잘못된 것은 없는지 교육자로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였다. 반성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단일대학 최대 서울대 525명 시국선언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야”. 오마이뉴스 2024년 11월 28일)

 

서울대 시국선언이 있던 날, 천주교 사제 1466명도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옥현진 대주교, 김선태 김종강 김주영 문창우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도 이름을 올렸다. 시국선언은 윤석열을 ’어둠의 사람‘, ’폭력의 사람‘, ’분열의 사람‘이라며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의 시국 선언 제목들을 모아보면 교수들의 인식이 보인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때이다.” (인하대) “지금, 바로 퇴진하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우리는 격노한다” (이화여대) “껍데기는 가라” (성공회대학교) “인내심이 한계를 넘었다” (안동대학교) “국정 파탄, 윤석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국민대학교) “탄핵도 과분하다, 그냥 하야해라” (남서울대학교)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인천대학교)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통탄하며’( 숙명여대) ”민주주의 훼손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 (한국외대)

 

그 중에서도 108명의 명의로 발표한 불교대학 동국대학교 시국선언의 제목이 눈에 띈다. ”바꿀 것이 휴대폰 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윤석열이 11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부의 휴대폰을 바꾸겠다고 한 것을 비꼬있다. 바꿀 것은 휴대폰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며 퇴진을 촉구했다. 

 

윤석열의 하야와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은 12월 2일 비상계엄 하루 전날까지 계속되었다. 대구교육대학교 시국선언 교수들은 윤석열 남은 임기 2년 반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은 다음날 남은 임기 2년 반과 그의 정치생명을 모두 걸고 도박에 나섰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남은 2년 반을 더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 아직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예의이다.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앞뒤 재지 말고 지금 당장 물러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1979년 10월 유신체제의 조종을 울리는 부산 마산 민주화 항쟁 때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백만명을 죽여도 문제가 없었다며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 2024년 차지철이 롤 모델인 김용현은 시국선언이 한창인 때, 정치인들을 감금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내란을 모의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예가 있다. 1960년 4월 25일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인 27개 대학교수 258명은 ‘누적된 부패와 부정과 횡포로써 민권을 유린한 이승만 정권은 물러가라’는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평화적 시위를 했는데 학생과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다음 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고, 자유당 정권은 붕괴했다.

 

전두환 정권의 폭력 통치를 비판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고려대학교에서 시작됐다. 1986년 3월 28일 교수 28명이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교수들의 시국 선언은 전국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그 해 6월 2일에는 전국 23개 대학 265명이 참여하여 한국 사회 구조 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하는 ‘대학 교수 연합 시국 선언’이 있었다.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발표되자 1987년 4월 22일부터 전국의 48개 대학 1510명의 교수들이 시국 선언에 참여하였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에는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해직되었다. 구속 수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당시에는 대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교수들은 지식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지금 시대는 많이 달라져서 대학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사회 변화의 동력도 상아탑의 교수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싸우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에서 나온다. 그 시민들의 이야기는 <2부. 계엄 막전 막후>에서 다룬다. <1부. 계엄의 빌드업>은 ‘제24화 터지자 밀물같은 시국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실록 옴니버스 윤석열의 초현실 비상계엄’ 은 <3부. 윤석열의 체포, 그리고 헌법재판>까지 이어진다. 아래는 경희대 시국 선언 전문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강내영, 강성범, 강세찬, 강신호, 강윤주, 강인욱, 고봉준, 고 원, 고인환, 고재흥, 공문규, 곽봉재, 구만옥, 구철모, 권순대, 권영균, 권현형, 김경숙, 김광표, 김기국, 김남일, 김대환, 김도한, 김동건, 김만권, 김미연, 김선경, 김선일, 김성용, 김성일, 김세희, 김수종, 김숭현, 김승래, 김승림, 김양진, 김원경, 김윤철, 김은성, 김은정, 김은하, 김일현, 김재인, 김종인, 김주희, 김준영, 김종곤, 김종수, 김종욱, 김종호, 김지형, 김진해, 김진희, 김태림, 김홍두, 김효영, 김혜란, 노상균, 노지영, 문 돈, 문지회, 민경배, 민관동, 민승기, 민유기, 박상근, 박성호, 박승민, 박승준, 박신영, 박신의, 박원서, 박윤영, 박윤재, 박정원, 박종무, 박증석, 박진빈, 박진옥, 박찬욱, 박환희, 백남인, 서덕영, 서동은, 서보학, 서유경, 서진숙, 석소현, 성열관, 손보미, 손일석, 손지연, 손희정, 송병록, 송영복, 신동면, 신자란, 신현숙, 안광석, 안병진, 안현종, 양정애, 엄규숙, 엄혜진, 오태호, 오현숙, 오현순, 오흥명, 우정길, 유승호, 유영학, 유원준, 유한범, 윤재학, 은영규, 이관석, 이기라, 이기형, 이명원, 이명호, 이문재, 이민아, 이봉일, 이상덕, 이상원, 이상원, 이선이, 이선행, 이성재, 이순웅, 이승현, 이영주, 이영찬, 이윤성, 이은배, 이은영, 이재훈, 이정빈, 이정선, 이종민, 이종혁, 이진석, 이진영, 이진오, 이진옥, 이찬우, 이창수, 이해미, 이효인, 임승태, 임우형, 임형진, 장문석, 장미라, 전중환, 정 웅, 정의헌, 정지호, 정진임, 정태호, 정하용, 정환욱, 조대희, 조민하, 조성관, 조세형, 조아랑, 조정은, 조진만, 조태구, 조혜영, 지상현, 지혜경, 진상욱, 진은진, 차선일, 차성연, 차웅석, 차충환, 천장환, 최서희, 최성민, 최원재, 최재구, 최정욱, 최지안, 최행규, 하선화, 한기창, 한미영, 한은주, 허성혁, 호정은, 홍승태, 홍연경, 홍윤기, 무기명 참여 30명, 총 226명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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