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3.13 05:00 ㅣ 수정 : 2025.03.14 05:37
정부, 반도체 R&D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특례 시행 중국,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신흥강자'로 급부상 반도체 연구 제한하는 '주 52시간 근무제' 中 도약에 호재 반도체 특별법 제정과 근로시간제도 유연화로 위기 해소해야
[사진 = 삼성전자]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정부가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2일 반도체 연구개발(R&D)에 대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특례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포함된 반도체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과 막대한 물적 자본을 기반으로 빠르게 기술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신흥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은 레거시(범용) 제품 뿐만 아니라 고부가·고사양 메모리 반도체 시장까지 위협하며 그동안 '반도체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한 한국 위상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중국이 한국 반도체 시장을 위협하는 상황이 초래된 데에는 한국의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이 큰 영향을 줬다고 입을 모은다.
AI(인공지능) 등 최첨단 반도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주 52시간 근무제로 반도체 핵심인력의 자유로운 연구에 지장을 주는 것은 'K-반도체'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R&D 분야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한 규정 완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 요구에 귀를 기울여 해법을 제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법정 연장 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로해야 할 경우 근로자 동의 및 노동부 장관 인가를 거쳐 주 64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현행 제도에 따르면 반도체 R&D는 1회 최대 인가 기간이 3개월 이내이며 최대 3번 연장할 수 있다"라며 "이를 이날 특례에서 R&D에 한해 1회 최대 인가 기간을 6개월로 하고 6개월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여야가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 통과를 두고 주 52시간 근로 예외 특례 때문에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자 정부 차원에서 내놓은 조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정부 조치가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반도체 R&D 인력의 근무 시간은 지난해부터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보조금 등 정부의 재정 지원 및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 등을 담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반도체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반도체 R&D 종사자에 대해 노사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으면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예외를 두자는 조항이 화두가 됐다.
주 52시간제는 일주일 근로시간을 법정근로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 등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처음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기업경쟁력 악화를 우려했지만 국민의 휴식있는 삶과 일·생활의 균형을 실현한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그러나 최근 AI와 첨단기술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주 52시간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반도체 R&D직에 한해 주 52시간 제도를 예외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업계 요구다.
중국의 기술력 추격이 맹위를 떨치고 있고 반도체 업계 1위 삼성전자의 위기론(論)이 불거지면서 여당을 중심으로 정부는 반도체특별법 검토에 나섰다. 하지만 야당과 큰 입장차이를 보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문수(왼쪽 세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안덕근(왼쪽 두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일 경기도 판교 동진쎄미켐 R&D 센터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시간 개선 간담회'를 개최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1일 경기도 판교에 있는 동진쎄미켐 R&D 센터에서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시간 개선 간담회'를 열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종합 반도체 기업을 비롯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과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등 여러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 참석한 업체들은 근로시간 규제로 R&D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부서 간 협업 저해 등을 초래해 연구에 몰입하기 힘든 문화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덕근 장관은 "미국·일본·대만은 국운을 걸고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 중이며 중국은 한국 주력 반도체인 메모리를 턱밑까지 추격해 온 상황에서 우리 기업만 근로시간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김문수 장관도 "반도체 산업이 다시 날 수 있도록 정부가 시급히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라며 "관계부처와 협력해 정부 차원의 조치를 빠르게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장 도입이 어려운 반도체특별법을 대신해 ‘반도체 R&D직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특례’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기존에는 반도체 R&D로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려면 1회당 3개월씩, 최대 3번을 연장해 1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1회 인가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한다.
그리고 12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해당 특례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계는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반도체 산업현장에서 반도체 R&D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라는 점에서 환영한다”면서도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반도체 특별법에서 근로시간 유연성을 적용해 반도체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고 젊은 연구인력들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반도체 R&D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마련한 것을 환영한다"라며 "반도체는 미래 첨단산업 기반으로 R&D를 포함한 산업 전반의 경쟁력 확충을 위한 법적·제도적 지원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반도체특별법 입법 논의 지연으로 정부가 기업 고충을 반영해 신속한 조치를 취한 것은 기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하지만 첨단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반도체특별법의 조속한 제정과 근로시간제도 유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사진 = SK하이닉스 뉴스룸]
시장조사업체 트랜스포스에 따르면 시스템 반도체와 PC용 D램 등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2023년 31%에서 2027년 39%까지 커질 전망이다.
게다가 중국이 이제는 고부가·고사양 메모리 반도체 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다.
AI 산업과 함께 수요가 급증한 HBM(고(高)대역폭 메모리)은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HBM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에 중국도 뒤늦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CXMT, 우한신신(XMC), 퉁푸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HBM2 개발을 마치는 등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XMC는 지난해 2월부터 월 3000장 규모의 12인치 HBM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새 메모리 공장을 짓고 있다.
또한 중국 반도체 기업은 한국과 일본 장비 업체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등 HBM 자체 개발생산에 속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반도체 R&D 업무에 제동이 걸렸다"라며 "R&D직은 업무 연속성이 매우 중요한 직군인데 주 52시간제는 이러한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탁상공론'으로 만든 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정부의 특례 도입이 반도체 기업에 약간의 도움을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코 아니다. 이는 비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해당하는 얘기”라며 “국내 기업의 첨단산업 분야 기술 경쟁력 약화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