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트럼프의 '반도체법 말 바꾸기'에 빨간불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을 향해 총구를 겨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투자하기로 한 기업에 지급할 예정이던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 재협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 바이든 전(前) 미국 대통령때 미국에 반도체 산업을 투자해 총 7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보조금 재협상이 추진되면 두 회사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최악의 경우 보조금이 철회될 가능성도 있어 국내 반도체 업계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18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재협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의 보조금 책정과 관련된 요구 사항을 평가하고 변경한 후 애초에 지급하려 했던 반도체 보조금을 일부 수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게 외신 보도의 골자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州) 테일러시(市)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에 투자할 비용은 370억달러(약 53조1600억원)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받기로 한 보조금은 47억4500만달러(약 6조8800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첨단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 구축 등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3688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로부터 4억5000만달러(약 63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하지만 공화당 대표로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지원법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이를 보여주듯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5일(현지시간)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 “그 칩(반도체) 거래는 매우 나쁘다”며 “우리는 부유한 기업이 미국에 반도체 기업을 짓도록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그들은 어차피 우리에게 좋은 회사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그가 당선된 후 반도체 지원법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줄곧 제기돼 왔다.
그리고 이번 외신 보도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보조금 일부만 받거나 아예 수령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이 되면 두 업체는 미국 공장 건설계획 비용을 추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정부는 최근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보편 관세와 상호관세 부과에 관한 포고령에 서명하며 상호 관세를 추가 발표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만일 미국이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발효하면 1997년 미국 주도로 시행된 정보기술협정(ITA)을 근거로 한 반도체 등 IT(정보기술) 기기에 대한 관세 이후 28년 만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시장 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업체의 시장점유율(M/S)이 61.0%다.
특히 AI(인공지능) 산업의 필수 메모리 반도체로 급성장하는 HBM(고(高)대역폭메모리)도 M/S 1·2위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4년 기준 전 세계 HBM M/S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로 사실상 한국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 상당수가 고성능 메모리는 대부분 한국 기업 제품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수요가 큰 상황에서 관세 부과로 공급 단가가 오르면 이는 결국 미국 기업에 악영향을 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반도체 지원금 변동 가능성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가 없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반도체 보조금 규모 축소와 관세 확대 등 트럼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자국 투자를 늘려 반도체 공급망을 확대해 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그러나 국내 기업이 트럼프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위험을 감내하며 짧은 기간에 미국 투자를 크게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 주요 수출 산업이 트럼프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위기에 몰리면서 재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경제사절단은 오는 19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 등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경제사절단에는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철강, 조선, 에너지, 플랫폼 등 한미 경제협력의 핵심 산업 대표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한국이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미국산 제품 구입)' 약속을 지킨 대미 투자 모범국가이자 우등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도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확인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사절단은 또 구체적인 통상정책외에 한·미 양국간 전략적 협력 의제와 투자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는 공급망 구축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 등을 미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민간 차원의 노력만으로 트럼프 정부와 경제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민간 노력외에 정부의 대미 협상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 기업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