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기획 : 직장인 정신 건강 현주소 ⑮] 기업도 '득' 본다...기업정신건강연구소 긍정 문화 전파
서민지 기자 입력 : 2024.08.02 07:45 ㅣ 수정 : 2024.08.02 07:45
'근로자 정신 건강이 회사 매출에 영향 준다' 인식 확산...4차 산업군 투자 활발 기정연, 삼성 그룹사와 15개 업체에 직장인 정신 건강 지원 컨설팅 전자·유통 등 기정연 컨설팅 사례 다양..."기업 문화 사소하지만 중요"
최근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 가운데 특히 4차산업 종사자들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3차 산업이 중심이던 과거 1980~1990년대까지는 정신 건강 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을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정신보다는 육체 중심의 노동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중증 이상 환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 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가 사회 문제로 인식 자체가 전환되고 있다. 이에 <뉴스투데이>는 직장인 정신 건강 장애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기업 등의 사례를 총 15회에 걸쳐 보도하며 우리 사회와 직장에 작은 걸음이나마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전상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사진=최정호 기자]
[뉴스투데이=서민지 기자] "근로자의 정신 건강이 회사의 실적에도 영향을 줍니다"
전상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2일 <뉴스투데이>와의 만남에서 이같이 전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도 근로자의 정신 건강을 보강하면 회사의 매출이 오른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탄력근무제와 자율 복장, 회의 지양 등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은 가족 갈등과 개인 신용 등 근로자 개인적 측면을 넘어서 직무 부적응, 조직 내 문화 등 사회적 측면까지 대상 범위를 넓혀 왔다.
최근엔 직장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컨설팅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기업정신건강연구소(이하 기정연)도 근로자의 '올바른 정신 건강 확립'을 목적으로 조직을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기업 간 거래(B2B) 컨설팅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 직장인 정신 건강, 건강·보건 문제 넘어 세계 경제까지…"답은 근로자" 지원 필요성 대두
정신 질환은 그간 개인의 영역 또는 건강·보건 분야에서 다뤄 왔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 경제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지난해 2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직장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 건강 관리 지침'을 본 바, 우울증과 불안으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연간 손실은 약 1조 달러(한화 약 1405조 5000억 원)에 달했다. 정신 건강 악화에 따른 잦은 결근·퇴사·업무 성과 저하 등이 지난해 한국 GDP(국내 총생산) 2401조(명목 기준)의 절반 이상이 매년 사라지는 것이다.
비영리 기구 마인드 셰어 파트너스도 미국 직장인 1500명 중 퇴사를 결정한 이유로 '정신 건강' 문제를 꼽은 응답자는 2019년 34%에서 2020년 50%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마인드 셰어 파트너스는 "2019년 이직률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높았지만, 그 이후 훨씬 더 높아졌다"며 "밀레니얼 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 출생자) 68%와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 출생자) 81%가 정신 건강을 이유로 직장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직장 내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2000년대 이후 기업들도 해결 방안을 찾아 나섰다. 기업들이 근로자의 정신 건강 관리가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고용노동부는 "국내에서 우울증을 겪는 근로자 1인당 결근으로 연간 252만 원, 비효율 근무로 488만 원의 비용 손실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어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 도입으로 72%의 생산성 개선 효과가 있었으며 근로자의 정신적 불안감은 29%, 업무 손실은 44%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국내 기업들은 EAP를 활발히 도입하는 추세에서 기정연의 역할도 주목 받고 있다.
기정연은 현재 삼성 그룹사 전체와 삼성 외 15개의 업체를 컨설팅하고 있다. 전 소장은 "삼성 전 그룹사의 모든 근로자 22만여 명 중 15∼20만 명이 상담을 받고 있으며 30명의 전문의와 15명의 임상 심리사가 각 사업장에 골고루 배치돼 있다"며 "이외 다수 기업의 일회성 상담까지 포함하면 컨설팅 횟수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 직장 문화를 바꾸고자 컨설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사진=프리픽]
■ 기정연, 4단계 서비스로 기업 문화 바꾼다…"4번째 컨설팅 단계가 가장 중요해"
기정연은 4단계에 걸쳐 B2B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1차에선 인식 개선을 목적으로 예방 교육이 이뤄진다. 건강 증진 프로그램이나 음주, 자존감, 명상, 자살 예방 등 주제는 다양하다. 전문 상담사의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10~30초의 짧은 영상을 담아 뉴스레터 발송하기도 한다.
2차는 근로자 또는 기업 내 조직이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상담 도구를 통해 기업을 평가하는 단계다. 기정연은 객관성 있게 기업을 평가하고자 심리 상담 도구 '심케어(心+Care 합성어)'를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3차에선 실질 상담소 운영하면서 유소견자(검진을 통해 질병이나 증세가 있다고 판단된 자)를 관리한다.
마지막 4차는 실질적인 기정연의 피드백이 이뤄지는 컨설팅 단계다. 정확한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을 도출해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큼 가장 중요하다. 다만 안타깝게도 국내 기업들은 4차 컨설팅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
전 소장은 "기정연도 4차 컨설팅은 연간 1∼2건을 신청받을 정도로 국내는 아직 소극적"이라며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낮기도 하고, 회사 문화가 외부에 노출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소장은 "IT와 게임 등 정보 통신 기술자가 중요한 4차 산업군에선 직장인 정신 건강을 위한 컨설팅의 중요성을 인지해 활발한 투자를 이뤄가고 있다"며 "관련 업계 오너들은 직원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해 업무에 녹일 수 있도록 고민한다"고 말했다.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최근 전화 상담을 꺼리는 기업 문화에 대해 컨설팅을 진행했다. [사진=프리픽]
■ 전자·유통업체까지 기정연 컨설팅 사례 다양
최근 기정연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은 전자기기 생산업체부터 유통업체까지 다양하다.
실예로 기정연은 전자기기 생산·판매 업체인 A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 여러 중학생과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A사는 전국 중학생들에게 자사의 전자기기 제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했는데, 정작 학생들은 경쟁 업체를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 A사의 고민이었다. 기정연이 조사에 나선 결과 A사의 한 임직원의 오판으로 저가 제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소년들은 저품질의 제품을 경험하며 A사가 아닌 경쟁 상품을 찾은 것이다. 기정연은 현재 이를 두고 A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또 기정연은 유통 플랫폼 B사 직원들에게 '전화 업무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단한 업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B사는 해외 지사의 근로자 행태 문화를 바꾸고 싶어 기정연에 컨설팅을 신청했다. 해외 지사의 경우 전화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데, 최근 입사한 2030세대 사원들이 이를 꺼리고 메신저와 메일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기정연은 근로자들이 전화 중 실수할까 조바심 낸다는 것을 깨닫고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인식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전 소장은 "기업 문화는 사소해 보여도 미래 10년을 위한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하고, 10년간 도태할 수 있는 위기가 되기도 한다"며 "근로자를 둘러싼 조직 환경과 문화가 기업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내 다수 기업이 직장인 정신 건강을 위한 컨설팅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