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의(正義)’를 독점한다는 생각, 공동체의 근간인 상호존중을 파괴해 민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는 자기 일터인 SPC그룹을 '불의'로 규정하고 투쟁 중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에서 민주노총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돼 온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한국노총이 어용노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 ‘진짜 노조’라는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다수 국민으로부터 뜨거운 마음의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정치사회적 권력의 반열에 오르면서 그 운동 방식이 ‘자기 소외’를 자초하는 현상이 종종 목격된다. 다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외면 받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보편적인 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자기 이익’을 과도하게 요구함으로써 ‘다수 이익’을 파괴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은 '정의(正義)'이고 이해관계가 상충하거나 생각이 다른 상대방은 ‘불의(不義)’로 규정하는 극단적 이분법을 고집한다.
내가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발상은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나 맞고 너는 언제나 틀리다는 생각은 공동체를 갈등과 불화의 전쟁터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다. 나와 너는 대등한 인격체라는 전제에 공감해야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가 이뤄져야 문제가 풀리고 개선이 이뤄진다. 대등한 인격체라는 인식은 무엇인가. 너와 내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피차 장점과 단점, 매력과 허물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에 공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SPC그룹의 대표 브랜드 중의 하나인 파리바게뜨 노사갈등은 이 같은 문제점을 또 한번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 지회는 자신들의 일터인 SPC그룹을 ‘불의’로 규정하고 투쟁 중이다. 물론 자신은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태도이다.
■ 대기업인 SPC와 자영업자인 가맹점주 3400여명, 상호 양보 통해 제빵기사 전원 정규직 채용 및 큰 폭의 급여인상 실현 vs. 불만에 찬 민주노총, 가맹점주 부담 증가는 외면한 채 SPC를 '악덕기업'으로 몰아
그 시발점은 2017년이다. SPC는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 5400여명을 협력사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게 불법파견이므로 직접고용하라는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SPC는 그 명령을 이행했다. 2018년 1월 노사, 사회단체 및 여야 정당 등과 함께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제빵기사들의 정규직 전환, 불법파견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근로조건 개선 등이 골자였다.
SPC는 3년여 뒤인 2021년 4월 1일 ‘사회적 합의’를 이행했다고 발표했다. 3년 동안 제빵기사 임금을 39.2% 인상했고 휴무일도 협력사 비정규직일 때보다 30%이상 늘렸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들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의 자회사로 설립된 PB파트너즈의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됐다.
정규직이 된 제빵기사들의 급여는 가맹점주와 파리크라상이 7대 3의 비율로 분담한다. 제빵기사들이 채용된 PB파트너즈에 도급비 형태로 지급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구조적으로 정규직이 되기 어렵다. 자영업인 가맹점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력이 취약해 고용안정성이나 높은 보수를 보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빵기사 정규직화가 이뤄진 것은 ‘사회적 합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SPC와 가맹점주들이 상호 양보 및 협력을 했기 때문이다. 파리크라상과 가맹점주들은 제빵기사들이 협력사 비정규직일 때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한 기업이 비정규직이었던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3년만에 40% 가까운 급여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3년 인상률이 24.99%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지만, 이 역시 적은 수치는 아니다.
따라서 다수의 제빵기사들은 SPC 측의 사회적 합의 이행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파리크라상 자회사인 PB파트너즈에 정직원으로 고용된 제빵기사들은 현재 42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출범 당시에는 5400여명이었는데, 700~800개 가맹점주들이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직접 제빵기사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 4000여명이 소속된 한국노총 소속 PB파트너즈 노조는 보수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에 대해 긍정적 입장이다.
반면에 200여명이 가입한 민주노총 화섬노조 파리바게뜨 지회는 SPC를 악덕기업으로 몰고 있다. SPC 본사 정규직 수준의 대우, 불법파견에 대한 사과 등과 같은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채 오히려 민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를 탄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가맹점주의 경제적 부담 증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외면하는 수준이다.
■ 민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장, 불매운동이 '해사(害社)행위'라고 지적한 뉴스투데이 보도 조롱 / 민노총이 '정의(正義)'이고 뉴스투데이 보도는 '불의(不義)'라는 극단적 이분법 깔려 있어
더욱이 공공연하게 'SPC 불매운동'을 부추기고 있다. SPC 본사 수준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자사제품 불매운동’을 당연시하는 것은 밥그릇을 깨는 행위이다. 노동운동이 아니라 해사(害社)행위이다.
급여를 인상하려면 더 많은 제품을 팔아서 가맹점의 매출과 이익을 늘려야 하는 데 불매운동을 정당화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비정상의 극치이다. 불매운동은 나쁜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서 벌이는 소비자 운동이다.
뉴스투데이가 지난 21일자에 보도한 '[일자리기업 : SPC그룹 (3)끝] SPC 불매운동이 희망이라는 민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장, 노동운동 아니라 해사(害社) 행위' 기사는 바로 이 같은 민주노총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민주노총 혹은 파리바게뜨 지회가 정상적인 노동운동으로 회귀하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담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반응은 기대 밖이었다. 파리바게뜨 임종린 지회장은 이날 오후 트위터에 “(뉴스투데이가) 이런 기사를 냈는데... 이 정도면 노조에서 불매 운동을 안해서 섭섭한건가 싶고”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뉴스투데이)기자는 화섬노조에 전화해서 '노동운동 제대로 하려면 시민들이 불매 운동하는 걸 노조에서 막아야 한다'라는 조언도 남겼다고 한다"라고 적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불매운동을 비판하면 진짜 우리가 불매운동을 벌일 것이라는 태도로 풀이된다. 뉴스투데이의 불매운동 비판보도를 조롱한 셈이다.
뉴스투데이의 보도가 완벽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주장에는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지회장이 거리낌 없이 조롱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총의 생각과 판단이 '정의'이고 이런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주체는 ‘불의’라는 자신감 때문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을 발전시켜온 다양한 '정의론' 관점에서 'SPC 불매운동'은 정의롭지 않아 / 민주노총이 인식론적 오류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감능력 회복하기를 기대
인류역사를 통해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을 발전시켜온 다양한 ‘정의론’의 관점에서 SPC와 민주노총 간의 갈등을 분석해보면, 불매운동을 유도하는 민주노총의 행태가 ‘불의’에 가깝다.
첫째, 공리주의 철학의 시각에서 보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실현이 정의가 된다. 고통과 행복을 계량화해서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키울수록 정의로운 행위가 된다. ‘SPC 불매운동’은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3400여명, 한국노총 소속 제빵기사 4000여명, SPC그룹 소속 임직원 2만여명에게 고통이다. 민주노총 소속 제빵기사 200여명에게만 행복이다.
‘SPC 불매운동’이라는 행위가 낳은 고통과 행복의 총량을 계산하면 고통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로 ‘불의’가 된다.
둘째, 개인의 인권 보호를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자유주의 철학에서 보면 SPC 불매운동은 심각한 ‘불의’가 된다. 범죄자의 인권도 선량한 시민의 인권만큼 보호되고 존중돼야 한다는 게 자유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나 미국 판사들이 흉악범 형량을 기대이하로 선고하는 것도 자유주의 법철학의 산물이다.
그런데 SPC 불매운동은 가맹점주, 한국노총 소속 제빵기사, SPC 임직원이 더 나은 수익과 윤택한 삶을 추구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 불매운동이라는 행위가 타자에 대한 심각한 권리 침해를 동반하는 것이다.
셋째, 공동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도 정의가 아니다. 이 관점의 핵심은 ‘마땅한 자기 몫’을 받는 게 정의이다. 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그 역할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을 때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논리를 확장하면, 미덕을 가진 자는 보상을 받고 악덕을 발현하는 자는 처벌을 받는 게 정의로운 일이다.
소위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는 이런 관점에서 불거진 사건이다. 지난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이었던 보안검색요원 19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청년층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뼈 빠지게 노력해도 입사가 어려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보안검색요원들이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많은 노력'이라는 미덕을 가진 사람들만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입사라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공동체주의 법철학의 인식이 깔려있다.
결국 보안검색요원들은 인국공 자회사의 무기계약직인 청원경찰로 직고용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안정성은 정규직에 준하지만 보수조건이 낮은 고용형태이다. 문재인 정부는 인국공 사태를 계기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 전환의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SPC본사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해달라는 민노총 파리바게뜨 지회의 요구가 다수 국민의 정서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인국공 사태와 동일하다.
파리바게뜨 지회가 볼 때, SPC그룹의 사회적 합의 이행 수준은 미흡할 수 있다. 하지만 불매운동은 정의롭지 않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민주노총이 스스로를 ‘정의’로, 상대방은 ‘불의’로 여기는 인식오류에서 탈피해 진정한 공감능력을 회복하기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