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 LNG를 친환경 에너지로 규정한 EU 최종안은 ‘위선적’ 현실타협 미국과 중국에 이어 EU까지 '원전'이 친환경이라고 우겨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왕따 위기’를 맞았다. 환경부가 K택소노미(Taxonomy:녹색분류체계)에서 원자력 발전을 배제했는데, 유럽연합(EU)발 역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EU집행위원회(EC)는 지난 2일(현지시간) 원자력 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친화적인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로 분류하는 ‘EU택소노미’를 확정, 발의했다. 최종안은 앞으로 4개월 동안 EU 회원국 및 EU의회의 논의과정을 거쳐야 된다. 최종 승인되면 2023년 1월부터 시행된다.
이는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EU의 탈탄소 투자 대상에 원자력과 LNG가 공식포함됨을 뜻한다.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도 원자력 및 LNG발전을 위해 활발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는 게 EU의 설명이다.
이번 최종안은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원전국가가 주도했다. 독일 등 탈원전 국가들이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고 꼬집으면서 반대했지만 관철됐다. 논란은 많겠지만 이변이 없는 한 결국 태양력과 풍력뿐만 아니라 원전과 LNG발전소가 EU시장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공인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솔직히 평가하면, 원전과 LNG를 친환경 에너지로 규정한 EU 최종안은 위선적이다. 가증스러울 정도이다. 원전은 친환경이 아니라는 우리 정부의 판단이 맞다. 원전이 탄소배출량이 적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원전폐기물을 화학적으로 소멸시키는 안전한 처리는 현재의 과학기술로 불가능하다. 인체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지역으로 숨겨두는 게 최상의 방법이다.
LNG발전소도 마찬가지이다. 탄소배출량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친환경에너지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탄소중립을 큰 목소리로 외쳤지만 아무리 봐도 불가능한 것 같으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셈이다. 즉 현실타협이다.
■ EU가 내세운 2가지 원전 투자조건, 완벽한 '정경유착'에 불과
EU집행위도 민망했던 것 같다. 원전에 대한 투자사업이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기 위한 까다로운 2가지 조건을 달았다. 첫째, 투자계획과 이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전제돼야 한다. 둘째, 원전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곳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조건마저도 우스꽝스럽다.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내용들이다. 오히려 원전투자사업이 완벽한 정경유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준다.
즉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자본과 방사성 폐기물을 버릴 장소를 제공해줄 정치권력이 협력할 때, 신규 원전 건설이 가능하다는 게 EU집행위가 제시한 택소노미 규칙이다. 원전 폐기물을 지구 어딘가에 투척한다면, 탄소보다 훨씬 치명적인 환경오염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2050탄소중립이라는 괴물이 ‘원죄’, 원전이 친환경이라는 궤변 생산해
그렇다면 EU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까. ‘원죄’ 때문이다. 2050년 탄소중립(탄소 배출량 제로)이라는 1차 목표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이는 애당초 실현불가능 목표였다. 친환경산업이라는 새로운 투자 먹잇감을 키워내려는 금융자본가들의 욕망과, 그 욕망이 표현하는 도덕적 가치를 정치에 활용하려는 EU 정치인들의 야심이 결합해 생산해낸 ‘괴물’에 불과하다.
EU집행위의 최종안 명칭이 ‘지속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라는 점만 봐도 주류 금융자본의 입김이 지배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핵심은 ‘금융’과 ‘택소노미’인 것이다. 금융자본은 앞으로 어떤 산업분야에 투자할테니, 행정부는 그 분야에 각종 세제지원 등을 아끼지 말라는 합의서가 EU의 택소노미이다.
이런 괴물의 탄생이 가능해진 것은 2050탄소중립이 절대권력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석유와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가 태워지면서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고, 그로 인해 인류는 더 이상 후손에게 녹색지구를 물려주기 힘들어졌다는 메시지의 상징적 위력은 막강하다. 맞서는 놈이 나쁜 놈이다.
그러나 불과 20여년전만해도 지구 온난화 현상에 대해서 양론이 세력균형을 이뤘다. 지구온난화는 산업화가 빚어낸 참상이 아니라 자연주기에 따른 현상이라는 주장도 나름 눈길을 끌었다. 자연주기설에 따르면, 지구는 1500년을 주기로 온난기와 소빙하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산업활동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지구와 태양흑점과의 거리 변동이 온난기와 소빙하기의 교체를 주도한다.
지금은 인간을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환경론자, 정치가, 금융자본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지구온난화 위기론’은 대항할 수 없는 진리의 반열에 올랐다.
■ 도치된 ‘침묵의 나선이론', 탈원전이 눈치봐야 하는 소수의견으로 전락
지구온난화 위기론이 다수의견으로 굳어지고, 소수의견으로 전락한 자연주기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요컨대 ‘침묵의 나선이론 (The spiral of silence theory)’이 지배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은 “소수의견은 고립감에 대한 공포로 인해 다수의견 앞에서 위축된다”고 주장했다. 다수의견은 나선의 외곽으로 커져나가고 소수의견은 맨 안쪽의 점으로 소멸되는 듯한 모양이 그려진다는 의미로 ‘침묵의 나선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 자체를 다투는 경우 이런 현상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자가 강하게 주장할 때, 윤리적 가치를 앞세워 사실관계를 왜곡시킬 때, 등등의 경우에만 침묵의 나선이론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출현하게 된다.
EU에서도 그랬다. 2050탄소중립은 그 윤리적 우월함으로 인해 아무런 저항 없이 다수의견으로 군림하게 됐다. 하지만 딜레마가 뒤따랐다. 실현이 불가능해졌다. 오랜 세월동안 석유와 석탄을 때면서 사치스럽게 살던 인간들이 갑자기 햇빛과 바람만으로 전기를 만들어 에어컨을 틀고 전기차를 굴리겠다는 계획은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다.
태양광과 풍력만 사용하면서 원시인처럼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온게 EU 집행위의 최종안이다. 신규 원전이 2045년 이전까지는 한시적으로 녹색 금융의 투자대상이라는 황당무계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원전을 K택소노미에서 제외했지만, 3월 9일 대선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지 간에 ‘원전 포함’으로 선회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이라고 선언했다. 특히 중국은 원전 세일즈에 열을 올리고 있다. EU마저 원전을 친환경이라고 우긴다면 그게 다수의견이 된다. 도치된 침묵의 나선이론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
차기정부가 여전히 원전은 친환경이 아니라고 고집한다면, 국제사회의 왕따가 되는 건 시간 문제이다. 왕따를 면하고 실속을 챙기기 위한 차기정부의 대변신은 불가피하다. 그렇게 된다면 EU의 금융택소노미가 죽어가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되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