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인적쇄신 구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최근 발표된 삼성전자 인사제도 혁신과 금명 간 단행될 연말 주요 계열사 사장단 및 임원인사 전망을 통해 파악된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단계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임원 인사 쇄신을 통해 'CEO 인사혁신'을 위한 토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가 유지되고 있다. 선대회장 시절부터 중용됐던 인물들이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I 등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세칭 ‘자기 사람’이라고 할만한 인물을 아직 CEO에 기용하고 있지는 않다. 4대그룹 총수 중 최태원 SK회장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최태원 회장은 그룹 경영을 책임진 지 오래됐다. 지난 1998년 9월 고(故)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어 수장을 맡으면서 23년 동안 그룹을 키워왔다. 때문에 주요 계열사의 CEO는 누가 봐도 ‘최태원의 사람들’이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취임한 지 2년에 불과하지만 일부 사장단 인사를 통해 자기 색깔을 내고 있다는 평가이다.
■ 이재용의 사법리스크 해소 시점과 삼성전자 CEO들 연임 기간 주목돼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할 때, 이재용 부회장은 3~4년 후부터 주요 계열사 CEO에 대한 ‘발탁 인사’에 시동을 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복잡한 사법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호흡조절 중인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마무리됐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및 경영권 편법 승계 재판이 시작단계이다. 신변과 관련된 복잡한 법률 문제가 해결되려면 2,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은 이런 정치사회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인사를 해왔다. 수년 간 와병 중이었던 고(故)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경영을 책임지면서 부사장 이하 임원에 집중적으로 젊은 피를 수혈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올해도 흐름은 비슷하다. 3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도 김기남(63) 디바이스솔루션 (반도체)부문 부회장, 김현석(61) 소비자가전 부문 사장, 고동진(61) IT·모바일 부문 사장 등 대표이사 3인방은 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3월 주총에서 연임돼 4년째 CEO를 맡고 있다. 3년 뒤인 2024년 3월이면 대표이사 연임이 끝난다.
이 때가 되면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도 거의 해소됐을 가능성이 높다.
■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의 ‘패스트트랙’, 30대 사원의 CEO발탁을 가능케 해 / 이재용의 '60세 퇴진룰' 거세질 듯
지난 달 29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인사제도 혁신안’은 이 부회장의 지론으로 알려진 ‘60세 퇴진룰’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꼽힌다.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실력과 실적만을 인사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미국 실리콘밸리기업들처럼 나이와 직급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발탁한다는 게 핵심 골자이다.
40대뿐만 아니라 30대 CEO도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이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임원 체계의 경우 전무 직급을 폐지하고 '부사장'으로 통합했다. CEO 이외의 임원은 모두 부사장이 된다. 이는 실리콘밸리 방식이다. SK그룹에서도 이미 상무, 전무급에 대한 호칭이 부사장으로 통일돼 있다.
부장급 이하 직급도 직급별 표준체류기간을 폐지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직급은 4단계(CL1~CL4)이다. CL1은 고졸·전문대졸 사원 CL2는 대졸 사원, CL3은 과·차장급, CL4는 부장급이다. 한 단계 승급을 위해서는 통상 8~10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그런 필수 기간이 폐지되면 CL2가 몇 년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해진다. 4단계 직급제도가 사실상 폐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스트트랙 제도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우선 적용된다. 다른 계열사도 도입을 검토 하고 있다. 패스트트랙이 제대로 가동되면 현재 부장급 인재 중에서 부사장 승진자가 나와서 3~4년 뒤에 대표이사 CEO가 될 수 있다.
사실 이 부회장의 '60세 퇴진룰'은 변혁과 성장을 추구하다가 안정을 놓칠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을 통해 진짜 인재를 충분히 포진시켜나간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