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21)]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웃픈 애환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9.09 08:51 ㅣ 수정 : 2021.09.09 08:51

새롭게 보직되는 부대에서 1분이라도 빨리 와서 업무를 인수 받으라고 독촉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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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육군대학 졸업 전에 이미 수방사 인사처에서 연락받기를 이사짐차가 부대에 도착과 동시에 바로 아파트 입주가 가능하다고 하였고, 새롭게 부임하는 작전과에서는 1분이라도 빨리 와서 업무를 인수 받으라는 독촉이 심해서 다른 동료보다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1년동안 정들었던 진해 육군대학 아파트에서 다음 근무지인 서울로 향하는 이사짐차에 짐을 모두 싣고 출발할 때, 그때까지 이사를 못간 동기 및 선배들과 정규과정의 후배기수들이 손을 흘들며 배웅을 해주었다.

 

가정에도 변화가 있었다. 진해로 내려올 때는 둘이었는데, 떠날 때는 필자와 새로이 태어난 아들을 꼬옥 안고있는 아내와 함께 세명이 운전석 옆자리에 좁게 앉았다. 

 

차창밖에서 환송하는 지인들에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그들 중 후배기수들에게는 육군대학 과정에서 많은 교류와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를 기원했다.

 

학교 정문을 나서자 항상 등산하며 동료들과 친목을 나누었던 장복산이 보였다. 환송하는 장복산에게 작별을 하고 이사짐차가 어두컴컴한 장복터널로 들어가자 이제부터 또 바쁜 일과의 전쟁이 시작됨을 실감했다. 이후 창원시내를 거쳐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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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짐차와 군인아파트의 전형적인 모습 [사진=김희철]

 

■  운전기사, “군인아저씨 부부는 아주 좋은 부대로 발령받으셨네요..ㅋ”

 

당시의 도로 상태로는 진해에서 서울까지 최대한 빨리 달려도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특히 서울로 진입하여 수방사가 위치한 필동까지 시내를 통과하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중간 휴게소에서 점심을 같이했던 운전기사 아저씨는 군인들의 이사를 많이 해봤는지 필동으로 향하는 서울 시내에 접어들자 필자부부를 향해 “군인아저씨 부부는 아주 좋은 부대로 발령받으셨네요..”하며 수방사로 부임하는 필자에게 덕담을 보내왔다.

 

위병소에 도착하자 절차가 복잡했다. 요란한 카키색의 군복에 덩치가 산만한 헌병은 일일이 이사짐차를 점검하며 작전과에 전화로 확인하고 통과시켰다. 

 

위병근무를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왠지... 수도방위사령부의 권위를 과시하듯 위병소 헌병이 취하는 언행은 군인들의 이사를 많이 해본 운전기사를 잠깐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이사짐차를 대기시키고 아파트 관리실과 작전과 사무실을 들렸을 때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음을 알게 되었다.

 

육군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사무실에 근무하던 선배가 그렇게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며 아파트 등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는데, 확인 결과 필자가 입주하도록 배정된 아파트 호수에 전출자는 이미 출발했는데 그 가족들은 아직도 이사를 안가고 남아있었다.

 

아마도 타부대로 전출간 그 장교도 해당 부대에서 필자와 같은 상황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항의를 하거나 핀잔을 줄 수도 없었다.

 

장시간을 운전해 피곤했지만 수방사 부임을 축하주었던 운전기사와 어린 아들을 안고 힘들게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수방사 아파트에 빈집이 없었고 이사짐을 잠시 보관할 여유있는 창고도 없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난감해하는 아파트 관리인과 사무실 선임장교에게는 필자가 일단 임시 조치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시 이사짐차에 올랐다. 우선 잠실에 있던 처가로 연락하여 잠깐 신세를 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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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필동에서 남태령으로 수방사가 이동한 후, 그 자리에 조성된 남산골한옥마을 정문 [사진=김희철]

 

■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선 상의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동기생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진 자정이 다되어서 잠실에 있는 처가에 도착하자 장모님도 어쩔줄을 모르며 당황했다. 일단 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고 사정을 들은 운전기사는 본인은 차에서 잘 수 있다며 아침에 짐을 보관할 곳으로 이동하자고 배려를 해주었다.

 

군인에게 시집와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많은 이사의 애환을 겪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그 보다도 처가 식구들에게 창피했다. 

 

장모님도 아내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난감한 표정으로 필자의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이었다. 우선 이사짐을 임시로 보관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전방 생활만 줄곳 해온 터라 서울에 연고도 없었다. 혹시 주변 부대에 빈 창고가 있나 물색하기 시작했다.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선 상의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동기생들이었다. 

 

그중 불연듯 모교인 육군사관학교가 생각에 떠올랐다. 마침 육사에 근무하는 동기를 찾다 보니 육사 동기이자 고등학교 1년 선배인 김인수 소령이 육사본부에 근무하는 것을 알았다. 공수훈련시 창공에서 낙하산이 펴질 때에 불안했던 마음을 날려 보내거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기에 처갓집 전화는 몇시간 째 필자가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이 전화가 통화가 되었다. 육사에 다닐 때 타동기들과 같이 있으면 존대말도 못하고 반말도 잘 못하던 어정쩡한 관계였는데 그 때 상황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충성, 형님 김희철입니다...”라고 첫 대화부터 완전하게 고교 선후배 관계로 돌아갔다. 사정을 들은 김 선배는 “확인하고 연락해줄게”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통하고 걱정하고 있던 아내에게 안심을 시켰다. 잠시 후 김 선배의 전화가 왔다.

 

육군사관학교에 아파트 신축 관계로 모델하우스가 있는데 지금은 사용을 안하고 있어서 내일 아침 연락해서 한 채를 비워 놓을 터이니 그곳에 이사짐을 임시로 보관하라는 전달이었다.

 

다음날 새벽에 차에서 자던 운전기사와 함께 처갓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태릉 육군사관학교 아파트 모델하우스로 이사짐차는 출발했고, 한달 뒤에야 정상적으로 필동 군인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군인이기 떼문에 겪어야 하는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많은 이사의 애환을 다시 한번 더 즐기는 웃픈 추억이었다.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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